brunch

[에세이]어느 개원의의 일상

by Zarephath

한 개원의가 진료실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그의 생각 속에는 온통 자살에 대한 생각 뿐이다. 드레싱 접시에 거즈와 메스. 리도타인, 씨저, 모스키토, 니들홀더 등등을 집어넣고 벌써 한 시간째 멍하니 바라 보고 있다. 먼저 리도카인으로 마취를 하고 메스로 대퇴동맥 근처에 절개를 넣은 후 주변 조직들을 살살 박리하다보면 대퇴동맥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면 가위로 그걸 끊으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 끝난다. 이 간단한 짓을 난 왜 아직도 못하고 있는 걸까?


한시간 넘게 멍하니 그는 그런 기구들을 멍하니 바라만보고 있다. 뭐가,,, 대도체 아쉬움도 집착도 애착도 뭣도 아닌 막연한 두려움이 그 실행을 막고 있다.

난 바보다. 용기도 결단력도 없는 바보다. 최소한 바보만 아니었어도 난 벌써 내 대퇴동맥을 자르고 이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난 아마 오늘도 못 해낼 것이다, 내일도, 모래도, 얼빠진 뭣처럼 가죽만 직장과 집을 오가면서 멍한 눈으로 위의 도구들을 하나씩 처다보기만 하겠지.

아침에 출근한다. 기다리던 손님에게 주사와 처방전을 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손님이 안오면 한시간도 두시간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한 명이 오면 친절이고 뭐고 그러거 생각도 안난다. 그냥 기계적으로 주사주고 처방전 주고 만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얼이 빠진다. 얼빠진 뭣같이 해서는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린다. 이젠 퇴근 시간도 없다. 내가 미치기 직전의 시간이 퇴근 시간이다.

그리고 집에 온다. 기계적으로 웃는 얼굴로 애들을 대하고 옷 갈아입고,,, 밥 먹고 침대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잠이 들때까지. 그렇데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다보면 어디선가 잠이 올 때가 있다. 안 오면 불면증으로 하루 밤을 몽땅 앉아 지세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화장실 갖다와서 밥을 먹고, 또 기계적으로 인사를 하고 의원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똑같은 것들을 반복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러다가 죽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7화[에세이]외눈박이가 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