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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Zarephath

내일이 두렵다. 오늘과 똑같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공포스런 인생의 악순환에 걸려든 건 언제 부터였을까? 거슬러 생각해 보면 태어날 때부터 였던 것 같다. 단지 어릴 적엔 그 고통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사춘기가 오고 어른이 되어도 젊을 때는 그 똑같음에서 어느 정도 탈출할 여지를 갖고 있었고, 이제 늙어서는 그것 조차 불가능해져 매일 매일의 똑같음을 오롯이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오늘이 어제와 똑같을 때에는 하지 않거나 약간 다르게 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약간 주변에서 욕을 먹어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짤리거나 하진 않았으니깐. 너무 심하게 어제와 같은 오늘이 강요되어 오면 좀 아쉽지만 그만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쌓은 공이 좀 아깝거나 큰 손실이 일어날 지언정 죽어도 못할 것 같으면 언제건 때려쳐 버리면 그만이고, 언제든 어디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걸 꾹 참고 해내는 사람들이 일찍 성공하고 인정받고 그런게 세상이지만, 그 따위 것 일찌감치 개나 줘버린 나같은 사람들은 항상 1년을 못 채우고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아 욕먹기 딱이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도 그만 해야할 때가 온다. 결혼을 하고 애들이 생기면 책임감이란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에 쉽게 뭔가를 그만 두거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철옹성 같이 내 주변을 겹겹이 둘러쌓아 있어도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살아 내야만 한다. 불안해 죽을 것 같고, 숨이 가빠 미칠 것 같아도 그 똑같은 삶을 살아 내야만 한다. 젊어서 부터 그런 것이 훈련된 훌륭한 사람이라면 활기차게 그것들을 해낼 것이지만, 맨날 관두기를 밥먹듯 하던 나같은 사람은 그게 갑자기 적응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내가 찾아 낸 한가지 묘수가 있다. 바로 직업을 두가지 이상 갖는 것이다. 한가지 직업만 있다면 그것이 주는 매일의 반복에 얽매어야 하겠지만 직업이 두가지 세가지가 있으면 얘기가 다르다. 이것 좀 하다가 지루하면 또 저거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나에게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도저히 병원 일, 똑같은 그 일만 매일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 이었다. 뭐,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충 손님 없으면 일찍 문 닫고 집에 온다. 와서 한 숨 잔다. 자고 일어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자야할 시간이다. 그럼 난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졸작이건 걸작이건, 뭐 글 쓰는 목적이 희대의 걸작을 남기겠다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쓴다. 아무 글이나 이렇게 저렇게 쓰다 보면 그게 소설도 되고 수필도 되고, 시도 되고 그러더라.

이게 작가가 되고자 하는 내 작은 이유이다.

뭐, 어때? 누구는 배가 고파서 죽지 않을려고 밥을 먹기도 하고 누구는 입의 미각을 자극하여 쾌감을 얻기 위해 먹기도 하는 것.

난 나만의 이유로 부지런히 글을 써나갈 것이다. 혹시 아는가? 그러다 나도 모르게 희대의 걸작이 튀어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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