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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Nov 15. 2023

제주 앞으로!

공항에서 4시간

나의 여행 준비 중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인터넷 일시 정지 신청이었다. 안 그래도 신통치 않은 통신사의 통신비를 많이 내고 있는 중이다. 5일이나 집을 비우면서 쓸데없이 통신비를 더 내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 일시 정지 신청은 간단하게 통신사 앱을 통해서 며칠 전에 미리 신청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해야 하는 여행 준비로는 빨래와 청소도 있다. 빨래 바구니를 비워둬야 여행 후 빨래를 빠르게 해치울 수 있을 테니까. 빨래 건조대를 치울 거기 때문에 약간의 빨랫감은 어쩔 수 없지만 최소화한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대신 쓰레기를 몽땅 버리고 바닥청소를 열심히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냉장고 내부도 정리해서 버릴 것은 다 버렸다. 5일 동안 집에 없을 거니까 혹시라도 도중에 상할 것 같은 것은 냉동실로 이동하거나 미련 없이 버렸다.


가장 중요하면서 잊기 쉬운 여행 준비 중의 하나로는 가스 밸브 잠그기가 있다. 나는 아예 하루 전에 가스가 필요 없는 식사를 하면서 가스 밸브를 열지 않았다. 또한 마지막 식사를 마침과 동시에 전자레인지와 커피 포트 전원도 차단했다. 작년에 뜻밖의 수해를 입었기에, 뜻밖의 화재를 미리 예방하는 셈이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요즘은 사건사고도 많으니 문단속뿐만 아니라 도어록 번호도 바꿨다. 도어록의 건전지는 바꾼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패스.


 이 모든 것을 뒤로한 후에야 비로소 내 캐리어가 채워졌다.


내가 캐리어를 사용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원래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나 홀로 여행을 했기에 짐은 적을수록 좋았다. 마흔 전에는 여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선크림 정도만 챙길 뿐 화장품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오죽하면 여동생이 짐 싸는데 10분이면 되냐고 물을 정도였다. 사실은 5분 컷도 가능한데 말이다.


이번엔 캐리어를 챙기는데 조금 오래 걸렸다. 출장을 위해 샀던 캐리어 세트(18인치 캐리어 + 레디백)가 맘에 들어서 가져가려는데 노트북도 챙기고 싶었다. 혹시라도 좋은 자리가 나오면 여행 중이라도 시강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그런데 내 노트북이 들어가기에는 캐리어가 아쉬운 사이즈인지라 노트북용 백팩을 가져가기로 했다. 짐은 다 합쳐봤자 12킬로도 안 나올 텐데, 가방이 세 개였다. 아니 네 개. 캐리어 안에 작은 핸드백이 하나 더 들어갔다. 캐리어를 다 챙기고도 나는 캐리어를 잠그지 않고 출발 전까지 펼쳐 놓은 상태로 내버려 뒀다. 마지막까지도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2023 김포공항




아니나 다를까, 여행 출발 아침에 비가 내렸다. 전날 미리 여동생과 약속한 대로 택시를 타고 여동생 집까지 이동한 다음, 엄마네 갈 예정이었다. 택시를 불러도 우리 집에서 택시까지는 지붕이 없으므로 우산이 필요했다. 미리 챙겨둔 양우산을 꺼내고 캐리어를 잠갔다. 지난해 수해 이후로 내가 집에 있을 동안에 늘 켜 두는 공기 청정기와 내가 없을 때도 돌아가는 제습기 전원도 잊지 않고 껐다. 코드까지 알뜰하게 뺐다. 수해 때 바닥의 코드가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간발의 차이로 감전사를 면했다. 그 이후에는 코드도 빼야 안심이 되었다.


친절한 택시 기사님께는 죄송하게도 주소가 잘못 전달되었는지 조금 헤맨 후에 여동생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여동생네는 1층이 실내 주차장이었기에 여동생은 비를 맞지 않고 택시에 바로 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엄마네로 향하는 동안 비는 그쳤고, 젖은 양우산은 엄마네서 잘 말린 다음 도로 캐리어에 넣었다. 성질 급한 가족들 덕분에 콜밴 예약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각자 짐을 점검하고 커피를 마시는 등 여유를 부렸다. 이제는 가족 모두 여행 배테랑이 되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기다림이 지루해질 즈음, 예약한 콜밴이 왔다. 한쪽 팔만 있는 기사님이 오셨는데 여동생은 미처 눈치채지 못할 만큼 짐도 트렁크에 능숙하게 넣어 주시고 운전도 잘해 주셨다. 장애가 있으신 분도 운전을 잘하는데 나는 그동안 뭘 했나 반성이 들었다. 여행을 출발하면서 갑자기 자기반성과 함께 앞으로는 장롱 면허도 해방시켜 줘야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공항 내에서 점심을 먹기로 해서 우리는 비행시간보다 무려 4시간이나 일찍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비는 완전히 그쳐서 지연 출발될 일은 없어 보였다. 키오스크가 보이자 체크인부터 하기로 했다. 처음엔 미리 모바일 체크인을 하면 되지 왜 키오스크인가 했다. 그런데 키오스크에서 오류가 나는 것을 보고 티켓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아! 엄마가 얼마 전에 신분증이 든 카드 지갑을 분실해서 재발급 신청을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몇 그룹이 앞에 있었지만, 비교적 매우 한산한 편인 이스타 항공 수속 카운터에서 키오스크 오류에 대해 문의하니 밝은 미소와 함께 친절한 설명이 돌아왔다. 여동생이 장애인 할인으로 엄마 티켓을 구매해서 증빙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등록증이면 되었는데, 신분증과 함께 잃어버린 상태였다. 카운터 직원분은 다른 증빙이 될만한 게 있는지 확인해 주었지만, 여권과 신분증 재발급 확인서만 가지고 온 터라 다른 증빙 자료는 없었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직원분은 할인된 만큼 추가 결제하면 되는데, 사실 할인은 2천 원 밖에 안된다고도 해 주었다. 비록 혜택은 못 받았지만 2천 원 할인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직원에게 친절함을 느꼈다.


수화물 수속도 빠르게 마칠 수 있었는데, 직원분은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수속이 가능한지 먼저 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카운터 직원 분은 혹시 모르니 검색대에서 우선 검색할 수 있도록 문의해 보라고 절차도 알뜰히 알려 주었다. 이전에 이용할 때도 느꼈지만 이스타 항공은 항상 기분 좋게 친절한 것 같다. 티 나지 않는 장애 3급의 엄마가 혹시라도 불편할까 봐 알려주시는 친절은 CS강사로서는 100점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탑승 수속이 끝나고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동안 여러 번 김포공항을 이용했지만 식당을 이용한 적이 없었던 터라 식당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어벤저스 팀이라, 평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이럴 때는 손발이 잘 맞았다. 한 사람이 <플레이팅 라운지>라는 식당가 위치를 찾고, 다른 사람이 기내용 짐이 실린 카트를 버리지 않도록 숨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잦았다. 행동파인 우리 가족들은 당연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생각보다 식당가는 넓지 않았다. 종류도 많지 않았고. 아침을 먹지 않는 나에게는 식사하기 이른 시간이었지만, 브런치 타임이라선지 사람들은 많이 보였다. 엄마와 남동생이 중식을 원해서 우리는  <티엔루>라는 중식집을 선택했다. 나와 남동생은 무조건 한 메뉴를 다 못 먹을 거니까 메뉴는 세 가지만 시키기로 했다. 대신 하나는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로 하고 단품은 옛날 짜장면, 짬뽕으로 주문했다. 나는 소스가 묻지 않은 탕수육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입맛 까다로운 울 가족들은 맛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했다. 특히 옛날 짜장면을 택한 남동생은 3분 짜장 맛이라며 투덜대다가 결국 다 못 먹고 남겼다. 공항 식당에 큰 기대를 하는 게 무리지 않을까 싶은데. 


식사를 하고도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도 아득히 멀었다. 마침 중식당 바로 옆 매장이 <illy coffee>라는 카페여서 우리는 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장식용 찻잔이 예뻐서 사진도 찍고 스콘이랑 음료도 마셨다. 카페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며 각자 화장실도 다녀오고 전망대도 다녀왔다. 전망대 바로 옆에도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어서 이쪽으로 자리 잡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했다. 


비가 오락가락한 시간대였는데, 아주 어린 아가가 전망대 있는 곳에서 비를 맞으면서 뛰어다녔다.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엄마랑 한참 그 아이를 보고 자리에 돌아와서 여동생에게 얘기해 주었더니, 우리보다 앞서 전망대 다녀온 여동생이 나갔을 때부터 뛰어다녔다고 한다. 역시 아이들은 체력이 너무 좋은 것 같다. 


2023 김포공항 전망대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수다 떨고 셀카 찍으며 놀 수 있는 여동생과 나와는 달리, 엄마와 남동생은 음료를 다 마시면 일어나야 했다. 결국 우리는 너무도 이르게 공항 검색대로 향했다. 아침 바이오 인증 등록대에 사람이 몇 없었다. 나는 출장 때 등록을 완료했고, 남동생 역시 제주생활 접고 서울로 올라올 때 등록을 마쳤다고 했다. 그래서 남동생은 카트를 지키고 있기로 했고, 나는 여동생과 엄마의 바이오 인증 등록을 도왔다. 여동생의 정맥 인증이 잘 되지 않아 조금 애를 먹었지만 큰 탈 없이 무사히 두 사람 모두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바이오 인증 등록 전용 검색대로 가니까 줄이 거의 없었다. 우선 검색대는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앞사람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검색대 입구에서부터 벌써 겉옷이랑 가방을 벗어 들고 있던 터라 우리 가족 중에 미적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력이 떨어진다 걱정했던 엄마조차 빠르게 행동하셔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짧은 시간 내에 검색대를 통과하고는 항공편이 배정된 9번 게이트로 향했다. 처음엔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던 검색대를 3분 컷 해서 괜히 일찍 왔나 싶었다. 그런데 9번 게이트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역시 일찍 도착하길 잘한 것 같았다. 


전망대보다 활주로가 잘 보이는 게이트 앞 통창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지연출발 알림 방송이 나왔다. 공항에서 4시간을 보냈는데, 또 얼마나 보내야 하는 겨? 다행히 20분 정도 지연되는 것이었다. 출장 때 1시간 30분 지연된 것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해당 게이트는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비행기에 탑승해야 했는데, 무릎이 좋지 않은 나와 엄마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투덜대며 게이트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는데 바로 우리 앞에서 버스 탑승이 마감됐다. 나는 오히려 다음 버스에 처음으로 탑승하니 앉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힘들게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탑승 후 멀리 가지 않고 맨 앞 좌석에 앉고 보니 아무려면 어떠한들 싶었다. 신체가 작은 편이라 어느 좌석이든 불편은 없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 본다는 측면에서 맨 앞 좌석 자리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앉는다는 편리성 측면에서도 좋았고. 아무튼 이제 즐겁게 여행할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자, 얼른 떠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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