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여행-해안 도로 일주
이번 가족여행을 기획하면서 내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이동과 휴식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었다. 전체 일정에서 운전을 담당하게 될 남동생은 흡연자이고, 불면증이 심한 편이다. 최대 1시간 이내로 운전을 하도록 해서 넉넉한 휴식과 흡연 시간도 충분히 주어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엄마는 허리가 안 좋으시기 때문에 역시 오래 차에 앉아 이동하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이동 시간은 3일 차 코스 하나만 제외하고는 모두 10~40분 이내 차로 이동하도록 했다.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는 카페에서 보내는 것으로 했다. 여동생이 소위 핫플 카페를 좋아하면서 엄마와 나도 점점 카페에서 휴식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고 맛난 아침을 배불리 먹은 후에는 휴식을 위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카페는 몇 곳 없어서 그냥 식당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아무 데나 찍은 것치고는 주차 공간도 있고 3층이지만 엘리베이터도 있어서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카페였다. 하지만, 내부가 바다 뷰가 멋진 곳이긴 하나 동쪽을 바라보는 창으로 강렬한 햇살이 들이쳐서 눈이 너무 부셨다. 나름 타로 점도 보는 곳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떤 콘셉트인지는 모호했다. 또, 음료들도 별 맛이 없고, 주차 공간이라고 주차했는데 중간에 차 빼달라는 전화도 오고 해서 길게 쉬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막간을 이용해서 전 일정에 대해 리뷰와 다음 일정에 대한 점검을 하고 일어서야 했다.
차 뺀다고 먼저 나간 우리의 기사님이 길에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게 보였다. 카페 맞은편에 가게가 있었던 것이 기억나서 아마도 거기 주인과의 스몰토크인가 싶었다. 그런데 스몰토크가 아니었는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십년지기 친구처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 남동생은 밖에서 보면 꽤나 부드러운 남성으로 보인다. 우리끼리는 티격태격하지만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는 선이라면 적당히 헛소리도 받아줄 줄 알았다. 문제는 스몰토크가 너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행인 우리가 나와서 차에 타는데도 주인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혹시 남동생이 제주도에서 일할 당시의 지인인가 잠깐 생각도 해 봤다. 그랬으면 우리를 소개해 줬을 것인데 오직 남동생과 주인아주머니 둘만 이야기를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계속해서 홍보 멘트를 하시는 것으로 보아 초면은 맞는 듯했다. 결국은 내가 재촉해서 간신히(?) 차에 시동을 걸고 움직였다. 알고 보니 해녀 출신의 주인아주머니가 오늘 우도 들어가기 좋은 날씨니 우도 다녀와서 자기네 가게 꼭 들리라고 그렇게 홍보를 하신 거였다. 과연 전직 해녀 분의 말씀은 옳았다. 일단 하늘이 미쳤다! 간간히 구름이 떠다녔지만, 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지는 모양이라 오히려 더 예뻤다.
성산포항 여객터미널 앞 주차장은 한산한 편이었다. 매표소 앞에 놓은 테이블에서 승선신고서를 먼저 작성해야 했다. 혹시 몰라 가족들 신분증을 모두 가져온 게 정답이었다. 렌터카 번호까지 엄마에게 카톡으로 받아서 승선신고서를 작성한 후에 왕복요금으로 매표를 했다. 원래 우도는 숙박을 하지 않는 한 렌터카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했지만, 교통약자가 있는 경우에도 렌터카를 가져갈 수 있다. 우리 가족 중엔 엄마가 교통약자기 때문에 렌터카까지 승선하게 되었다. 나는 배 멀미가 걱정되어 살짝 긴장했지만, 처음으로 차량까지 배에 실어보는 경험을 해서 재미있었다. 9대의 차량이 들어찼는데 곧 기름 냄새랑 차냄새가 나는 바람에 1층에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출항 전에는 3층 갑판까지 올라가서 사진도 찍고 즐겁게 시작했지만, 역시나 나의 배 멀미! 구름이 흘러간다는 것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이고, 그러면 파도도 많이 출렁인다는 것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엄마는 춥다 하시고, 파도가 출렁대는 정도가 딱 내가 멀미를 할 정도라서 호기롭게 3층까지 올라갔다가 인증 샷만 찍고 바로 2층 객실로 내려왔다. 여객선과 달리 우도 페리는 객실 내부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좌식 바닥이었다. 이런 객실은 처음 봤기 때문에 마냥 신기했는데, 내가 앉은 맞은편에 이제 막 기어 다닐까 싶은 아가도 나와 같아 보였다. 멀미를 가시게 하기 위해 앉아서 있다 보니 열선이 있는 부분은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누워서 가면 좋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꾹 참고 앉았다. 15분 정도면 도착하니까 멀미도 참을만했다.
예상 시간보다 이르게 우도에 입도했기 때문에 원래의 계획을 수정했다. 계획대로라면 우도 북쪽은 빼고 절반만 돌려고 했는데, 남아도는 게 시간인지라 우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닿은 곳은 하얀 백사장, 서빈백사였다. 바다로부터 밀려온 산호로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홍조단괴'라는 석회조류라고 한다. 사전 정보가 부족했던 우리 가족은 유료 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1분만 더 갔으면 무료 주차장도 있다. 1분 차이로 주차료를 물어야 했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었으니 그냥 풍경값이라 여기기로 했다.
서빈백사를 떠나서는 그야말로 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으면 내려서 인증 샷을 찍었다. 군데군데 조형물이나 벽화로 포토존을 만들어 놨기에 가능했다. 아니, 날씨가 미치도록 아름다웠으니 어디든 포토존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시간도 넘치게 많았다. 사실은 점심 즈음 입도해서 대충 섬의 왼편을 돌다가 오른편으로 건너와서 식사를 하고 나올 예정이었다. 대략 2시간 정도만 잡았기 때문에 우도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다. 내가 우도 여행을 기획한 것은 그동안 제주 여행을 다니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여동생은 반대했지만, 남동생과 내가 찬성했기에 우격다짐으로 실행한 코스였다. 정작 입도한 뒤로 우도에 푹 빠진 것은 여동생과 엄마 쪽이었다.
잠에서 깰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던 막둥이 여동생이 사진 찍을 때만 반짝 살아나는 게 신기할 무렵, 갑자기 감귤 모자를 갖고 싶다고 떼를 썼다. 성산포항 여객터미널에서 비싸게 팔고 있더라고 말해 두었기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우도의 햇빛이 강렬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눈이 부셨다. 하필 제주도까지 가져온 양우산 두 개는 숙소에 고이 모셔 놓은 상태. 마침 기념품 가게가 보였고 여동생의 칭얼댐은 극에 달했고, 우리는 감귤모자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이왕 기념품 가게에 들어간 김에 구경도 실컷 하고 가족들끼리 놀러 온 기념으로 예쁜 고래 모양 핀도 색깔별로 하나씩 구매해서 모자나 옷에 달았다. 나름 4인 단체 관광이라는 티를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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