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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Nov 15. 2023

제주도 가족여행 3일 차 ②

폭포만 둘, 그리고 약천사

1일 차부터 3일 차 오전까지 우리 가족은 제주도의 동쪽을 아주 알차게 돌아다녔다. 이제는 남쪽을 돌 차례. 사실 다음 숙소가 서쪽이니까 서쪽을 도는 게 맞지 않을까 싶지만, 제주도 서쪽은 딱히 연결해서 갈만한 관광지가 많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숙소는 남쪽에 잡는 게 맞았지만, 숙소 선정은 여동생이 했다. 한마디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잡았다는 말이다. 나라면 여행 코스 중간 즈음에 베이스캠프처럼 숙소 하나만 잡을 텐데 여동생은 여러 숙소에서 묵는 것을 선호했다. 서쪽을 아예 안 볼 것도 아니었지만, 3일 차 오후에는 서쪽이 아닌 남쪽으로 향했다. 




맛난 식사를 한 후 다음 일정을 쇠소깍. 원래 내 계획대로 카누나 테우를 타면 좋았을 테지만, 여행 마지막까지도 이것을 반대한 가족들 때문에 둘 다 못 타고 그냥 구경만 했다. 남동생은 어차피 수위도 내려가서 바다까지 이어지지 않으니 카누를 타든 테우를 타든 만족스럽지 않았을 거란다. 뭐, 일리 있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난 뱃멀미까지 하니까 우겨서 타기에는 나 자신에게도 위험부담이 컸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땡볕을 헤치고 가서 매표소에 문의하니 카누는 안되고 테우라면 1~2시간 정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우리 가족들은 안 되는 것에 대한 포기가 빠른 편이다. 쇠소깍에서는 인증 샷만 찍고 바로 되돌아 나왔다. 


쇠소깍 인증 샷


이렇게 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원래는 폭포 하나, 약천사 관람 후 저녁식사였는데 그 사이에 폭포를 하나 더 넣었다. 그래서 정방 폭포와 천지연 폭포를 관람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카페를 넣어서 휴식 시간을 가질까 했는데, 그러면 더 배가 불러와서 안된다고 하는 의견이 이겼다. 어느새 우리는 관광지 관람이 아니라 맛난 것을 먹기 위한 소화 운동에 초점이 맞춰졌다. 


쇠소깍에서 가까운 정방폭포는 처음부터 여동생의 주장에 의한 일정이었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왔던 곳이라 일정에서 빼려고 했는데, 엄마가 기억 하나도 안 난다고 하셔서 그대로 이번 일정에 안착되었던 곳이다.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임에는 틀림없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엔 길이 좀 험난했다. 엄마가 다리에 힘이 없으신 관계로 돌이 쌓여서 이룬 길은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었다. 다들 살짝 긴장하고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었다. 


2023 정방폭포


정방 폭포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천지연 폭포가 있었다. 남동생의 '라떼 말이'(나 때는 말이야~)는 이때부터 계속되었는데 천지연 폭포에서 가까운 곳에 몇 개월이나 지낸 숙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제주도에 있을 때 자주 다닌 곳이라며 천지연 폭포 관람은 패스하고 주차장 부근에서 쉬기로 했다. 때문에 천지연 폭포는 엄마와 나, 여동생만 다녀오기로 했다. 


입구 쪽 다리를 건너는데 새 한 마리가 여유롭게 물속을 걸어 다녔다. 다리 너머에는 여러 돌하르방이 크기별로 관광객에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었다. 되게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라 마음이 느긋해졌다. 매표소 부근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돌아보고 막 매표하려는데 우리 가족 옆으로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갔다. 지나는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인천 소재의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온 듯했다. 고등학생들은 시끌시끌하긴 했지만, 관람 매너는 좋았다. 


폭포를 관람하고 다시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뒤섞여서 나오는데 입구 쪽에서 봤던 새가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면 도도히 물속을 오갔다. 마치 모델이 된 것처럼 긴 다리로 천천히 걸어 다니며 포즈를 취하는 듯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한참을 보다가 돌아 나오려는데 물가에서 한 아저씨가 과자를 뿌리면서 청둥오리들을 꾀어냈다. 생각보다 큰 오리 몸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 역시 낯설고 신기한 모습이라 한참을 지켜보다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2023 천지연폭포




유독 일정이 많은 3일 차의 마지막 일정은 약천사였다. 이전에도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음 약천사를 방문한 것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한 일일 투어를 따라왔을 때였다. 함께 도착한 관광객들을 따라 입구로 들어오다가 나 홀로 약수터 뒤쪽 길을 올랐는데, 웬 동굴이 나왔다. 자그마한 동굴 속에는 불상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서 나도 모르게, '아픈데 신도도 아닌 제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부처님 뵙고 갑니다. 그 정성 보아서 빨리 낫게 해 주세요. ' 이러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날 컨디션이 좋지 못했지만, 여행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조금 기분이 상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동굴을 떠나 내려오는 길에 묵직했던 몸이 가벼워지고 아픈 곳이 나아서 기분도 좋아졌다. 가이드님이 마셔보라던 약수까지 착실히 마시고 시간에 맞춰 투어버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이드님에게 절 뒤편의 동굴이 뭐냐고 물었더니, "어, 제가 말씀 미처 못 드렸는데, 거기에서 스님이 100일 동안 기도를 드리고 몸이 나았대요. "라고 답해 주었다. 그러니까 나는 '진짜' 약천사를 다녀온 셈이었다. 그때는 불상이 다 같은 부처님상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약사여래를 모셨을 텐데 종교인이 아니다 보니 몰랐다. 


내 약천사 체험을 계속 들었던 엄마는 이전에도 약천사를 방문하셨고 이번에도 약천사 방문을 기대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한 약천사는 그 모습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투어 버스가 주차하던 곳 말고 대웅전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작은 주차장에 주차해서 낯설다고 여겼는데, 약수터 모양이 기억과 살짝 달랐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동굴('굴법당'이 정식 명칭임)로 올라가니 그 역시 내부가 이전과는 다르게 변했다. 좁았던 내부가 커진 것은 반가우나, 어딘지 모르게 옛 모습이 더 좋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역시 약사여래님께 엄마 좀 낫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도 약천사를 나올 때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져서 걷기 편하셨다고 한다. 


동굴-굴법당을 내려와서 바로 마주하는 건물 지하에서는 마침 전시회가 있었다. 사실 우리 가족들은 사찰 자체가 익숙하진 않아서 사철에서도 전시회가 열리는지, 그것을 일반인도 볼 수 있는 건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무작정 들어가서 전시 관람이 가능한지 문의해 보니 안내해 주시는 분께서 이러저러한 전시 설명과 관람포인트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관음보살상만 꾸준히 그려오신 분의 그림 작품이 주를 이뤘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불교적인 색채와 그림들을 꼼꼼히 시간을 들여 관람한 다음 마감 시간에 맞춰서 전시장을 나왔다. 이제 식당 예약 시간이 되었으려나?


2023 약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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