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여행하고, 먹고 또 먹자
식당 예약 시간은 7시였지만, 약천사와 식당이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아무리 느릿하게 움직여도 예약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식당 내부는 아직 한산했고 사장님도 흔쾌히 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해서 우리 가족은 기분 좋게 이른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이름은 <이공이시>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오늘의, 이 공간 이 시간'을 줄인 말로 보인다. 예약한 여동생 말로는 원래는 웨이팅이 좀 있는 식당이라 예약을 한 것인데 이 날따라 한가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소식좌가 여럿인 우리 가족은 '성게초밥', '후토마끼', '전복게우파스타', '흑돼지 안심 버섯 말이'와 '잔 술' 1잔을 주문했다.
생각 같아서는 다른 메뉴들도 시켜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 내내 소식하는 게 식탐만 많다고 구박받은 터라 일단 먹고 보자 싶었다. 초밥 4개에 후토마끼 5개를 누구 코에 붙여?라고 우습게 여기고 식사를 기다리는데 서비스를 한 접시 내어 주셨다. 어느 회인지 까먹었는데 남동생과 여동생이 좋아서 난리 치는 걸 보니 자주 먹는 것은 아닌 듯했다. 내 경우에 회를 그렇게 즐겨 먹지 않기 때문에 제발 비리거나 질기지만 말아라 하는 심정으로 한 입 먹었는데, 그냥 입에서 살살 녹았다. 우리가 시킨 메뉴를 다 먹고 모자라면 이 서비스 접시를 정식으로 주문해 먹어도 좋을 듯했다.
애피타이저처럼 서비스 한 접시를 먹고 나니 식욕이 폭발했다. 초밥이 먼저 나왔는데, 내가 그동안 먹었던 초밥과는 세팅 자체가 달랐다. 이 역시 입에서 사르르 녹아서 한 개 정도 더 먹고 싶었다. 그래서 후토마끼도 바로 먹어보려 했는데, 오이가 너무도 자잘하게 많이 박혀 있었다. 다행히 꼬투리 부분에서는 쉽게 오이가 제거되어 남동생이 오이를 다 발라주고 내게 건네줬다. 남동생은 오이를 못 먹는 나를 구박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친절을 베풀고는 했다. 그런데 그 친절이 온전하지 못해서 입이 작은 내게 꼬투리 부분은 너무 컸다. 한 입에 먹기가 힘들어서 낑낑대니 여동생과 남동생이 그걸로 또 놀리고 즐거워했다. 우리는 정말 현실 찐 남매가 맞았다.
후토마끼에서 나는 이미 배가 불러서 스파게티는 그야말로 맛만 보고 끝내려 했다. 여기서 우리 가족들은 순간적으로 메뉴가 다 나왔으니 스파게티만 먹고 일어날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네 개의 요리가 테이블로 왔지만 아직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서비스가 너무 훌륭해서 우리가 주문한 메뉴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이 즈음되니 '흑돼지 안심 버섯말이'라는 메뉴 이름은 기억도 안 났다. 배가 부른데 기름진 것으로 마무리 하지나 살짝 거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맛만큼 가격이 비싼 이 집 요리를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먼저 제일 작아 보이는 것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세상에나! 착시현상을 주는 요리라니! 생각보다 개당 크기가 커서 아까의 후토마끼처럼 씹는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단점인 요리였다. 이렇게 맛난 것을 놓칠 뻔하다니!
여행 중에도, 여행이 끝나도 우리 가족들은 이 날 메뉴 선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남동생은 <이공이시> 이름과 뜻, 메뉴에 대해 상세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제주도에서 또 가고 싶은 식당으로 선정하고 있다. 위장이 작은 게 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는 근처에 숙소를 정해서 술과 함께 이 맛난 음식들을 같이 먹어보고 싶다. 사실 술이 없어서 더 적게 먹은 감도 없지 않다.
배가 부르고 행복한 상태로 차는 다시 40여 분을 달려서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제주도 각지에 분포한 하나로마트 중 우리는 벌써 세 번째 새로운 마트를 찾은 것이었다. 하나로마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제주 삼다수'가 무려 400원이었다. 여행 다니면서 은근히 생수가 필요한 일이 많은데, 이것은 정말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의 일반 편의점에서 무려 1,100원이나 했으니 제주도에 있을 때 하나로마트에서 '제주 삼다수'를 많이 사서 마셔야 한다! 또, 하나로마트도 일반 대형마트처럼 조리 식품들도 판매하고 있으며, 여러 할인 행사를 통해 알뜰학 장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야식은 해산물과 약간의 알코올이었다. 하나로마트는 뭔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해산물의 원산지도 따져보지 않고 그냥 먹고 싶은 대로 구매했다. 맛난 음식을 술 없이 먹었다는 아쉬움을 풀기 위해서라며 핑계를 댔지만, 그냥 우리 삼 남매는 술과 맛난 음식을 즐길 뿐이었다. 3일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하루를 잘 보냈다고 축하하고 내일 오전에 방문할 해장국집에서 시원하게 해장하길 원했기 때문에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장보기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숙소는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 모퉁이돌집 펜션>이었다. 이전 숙소와 다르게 방 두 개가 포함된 독채였다. 뒤편의 독채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였으니 우리가 이 펜션을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방을 중심으로 침대방과 온돌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내가 가족 인원수만 말하고 남녀 성비를 깜박했던 탓에 침구가 하나 모자랐다. 펜션 사장님은 제주 시내에 계신 상황. 다행히 온돌에 깔아 둔 매트가 두 겹이라 하나를 빼내서 침대방으로 옮겼다. 잠자리가 확보되었으니 이제는 술판을 벌일 차례였다.
가장 일정이 많았던 3일 차 여행을 리뷰하면서 즐겁게 먹고 마시다 보니 엄마가 주무셔야 할 시간이 훌쩍 넘었다. 엄마와 여동생은 잠들러 가고 남동생과 나는 조금 더 마시다가 자리를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남동생이 갑자기 근처 편의점 이야기를 꺼냈고, 이전 숙소와 다르게 도보 10분 거리 근방에 편의점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남동생과 나는 술이 살짝 모자란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의기투합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시각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고 우리는 취기가 있는 상태라 즐거운 마음이었다. 약간 으스스한 길이었지만, 두 사람이니 무서울 게 없다고 여겼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아이 목소리로 "아직 열렸다!"는 소리를 듣고는 순간적이나마 오싹했다. 알고 보니 편의점 근처 빌딩(아마도 숙박업소)에서 아이가 창밖으로 편의점이 열렸는지 확인하고 안에다 알리는 것이었다.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엄마랑 여동생은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온돌방에서 TV를 보며 맥주를 마셨다. 여행 리뷰를 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눴다. 이날의 가장 주된 주제는 엄마의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갑자기 근력이 나빠지고 몸이 예전만 못하니 가까이 있는 남동생에게 당부하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남동생은 이번 여행 중에 엄마의 현재 상황을 뼈저리게 느꼈다. 눈물도 조금 보였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은 약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엄마의 건강 회복을 위해 서로 조금 더 신경 쓰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숙박 여행을 하는 것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죽음에 대처하는 태도, 장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건강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깊이 있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 지금이 되니 여행에서나마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러한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며 3일 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난 이틀 동안 엄마와 여동생의 코골이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역시 술기운이 있으니까 깊이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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