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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연 Nov 15. 2023

제주도 가족여행 4일 차 ②

가을에 그리는 가족 동화

아름답고, 신기하고, 행복했던 유람선 관광을 끝내고 주차장에 가보니 차가 너무 많았다.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화장실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빠른 판단을 자랑하는 우리 가족들은 더 밀리기 전에 바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마침 남동생이 근처에서 살았던 때의 노하우를 살려서 많은 차들이 빠져나가려 대기하는 길 말고 조금 한가한 다른 길로 빠지니 여유까지 느껴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느새 제주도는 우리에게 '잘 아는 동네'가 된 것 같다. 그런 잘 아는 동네에서 낯선 곳을 찾기 위해 우리가 찾아간 다음 일정은 '서귀포 유람선'과 번들로 묶여서 할인받은 '카멜리아 힐'이었다. 


서귀포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려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 '카멜리아 힐'까지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도 들를 겸 요기도 간단히 할 겸 길가의 편의점에서 잠시 정차했다. 원래는 어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남동생은 편의점용 식사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아침에 사 온 빵을 시식했다. 여기 편의점에서는 매운맛이 나는 치즈를 사 먹어봤는데 입맛에 제법 맞아서 내 최애 치즈가 되었다. 최애 치즈가 되는 신상품도 있고, 친절한 사장님이 화장실도 빌려주시고, 비닐로 바람막이도 해 놓은 편의점 옆 테이블도 있고 해서 다음에도 또 가고 싶은 편의점이다. 누군가는 식사를 하고 누군가는 디저트를 먹으면서 여유를 부리니 이것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싶었다. 


꽃을 좋아하셨던 외할머니 영향으로 나도 식물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엄마도 마이너스의 손만 아니라면 식물을 여럿 키우셨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식물들이 엄마 손에 들어가면 시들어가서 엄마 손은 마이너스의 손이 되어버렸지만. 가족들이 식물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도 눈여겨보는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강퍅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피곤하겠지만 길가의 생명조차 어여뻐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나누기 좋지 아니한가. 지난해 가족여행에서도 식물원과 꽃이 가득한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가을 정원에서 좋은 시간을 가질 차례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이제 계속 걸어야 할 텐데 엄마의 컨디션이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 무리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다짐했다. 


'카멜리아 힐'을 선정한 것은 나였지만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갔기에 우리가 보고 싶은 '가을 정원'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비슷하게 관람을 시작한 한 무리의 학생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그 친구들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동백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볼 동백꽃을 여기서 다 보고 나니 이제 동백꽃은 질린다고 싶을 무렵 '덴마크 무궁화'를 만났다. 특정 장소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덴마크 무궁화는 내가 이전에 살았던 부천시에서 몇 번 보았던 꽃이라서 반가웠다. 재미있는 것은 '덴마크 무궁화'를 보러 오는 사람마다 "이게 덴마크 무궁화래"라는 말을 무조건 했다는 것이다. 


국화도 만나고, 핼러윈 장식들과 연출 사진도 찍고, 소원 구슬 나무에 소원도 빌면서 즐겁게 다녔지만, 우리가 찾는 '가을 정원'은 아직이었다. 이제 슬슬 해는 저물어가 다리에 피로도 느낄 무렵, 그러니까 '카멜리아 힐'의 넓은 부지를 다 돌아보고 나올 무렵 드디어 '가을 정원'을 만났다. 내가 여행 중에 장담했던 대로 수많은 억새를 엄마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곳, 우리 가족이 그리는 가을 동화가 완성되는 곳에 다다른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정원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각자의 가을 동화를 그려갔다.  


2023 카멜리아 힐-가을 정원


남동생 말에 의하면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으면 이 아름다운 '가을 정원'에 조금 더 머물다 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보았다면 우리 가족은 분명 딱 '가을 정원'만 보고 나왔겠다 싶었다. 그랬다면 늦은 오후의 나른하고 여유로운 빛으로 물든 한가로운 정원을 못 봤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도착했을 때는 '가을 정원'에 사람들이 다 몰렸나 보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단체 관광객이었는지 잠시 뒤 시간되었다며 우르르 출구로 몰려 나갔다. 그래서 내가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정원 풍경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홍보 촬영을 하기 위해 연기자 몇 명만 한가로이 걷는 모습이랄까. 




늦은 시작이었지만 4일 차 여행은 하루 종일 맑은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 여유로움과 행복함이 공존했다. 이 하루가 아쉬웠던 우리는 중간에 놓친 '관음사'를 대신해서 숙소와 가까운 '선운정사'라는 사찰에 잠깐 방문하기로 했다. 중간에 예기치 못하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서 따로 일몰 명소를 찾지 않아도 되니 한껏 여유로운 마음이 되었다. 사실, 여동생은 여행지에서의 일출과 일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리 4일 차에 일몰 명소에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늦어진 일정으로 일몰 시간에 맞출 수 없어서 포기하기로 했는데, 어딘지도 모르는 길 위에서 렌즈에는 다 담지 못할 아름다운 하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도착한 '선운정사'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야경 대신 어둠이 감돌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서는데 어디선가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서 뭐라 뭐라 말하시는데 발음이 분명하지 않았다. 대충 해석해 보니 사찰에 계신 분들이 외출 중이라 아직 안 오셨으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 같았다. 절에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이때 처음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사찰이었고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주차한 곳의 공터에는 사찰의 다른 건물이 공사 중에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찰 이름만 쓰여 있고 종파 이름이 안 보이니 뭔가 사찰 자체가 수상해 보이기도 해서 우리는 그냥 인증 샷만 남기고 되돌아 나왔다. 나중에 불교 신자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절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사찰에 따라서는 종파 이름을 안 쓰기도 한다고. 


길 위의 노을과 선운정사




일몰과 함께 이상한 체험도 하게 되었으니 맛난 저녁으로 하루를 잘 마무리할 일만 남았다. 점심을 건너뛰고 빵으로 대충 요기를 한 정도였으니 이번에는 배가 좀 고팠다. 오늘의 저녁은 <경성수산>이라는 횟집에서 회를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싱싱한 회에는 반주를 곁들여야 하는데 밖에서 먹으면 우리의 기사님인 남동생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포장이란 방법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육고기파인 나는 회를 그렇게 찾아 먹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까지 왔는데 고등어회는 꼭 한 번 먹고 싶었다. 그동안의 제주여행은 나 홀로 배낭을 메고 다녔기에 회 같은 음식은 먹을 기회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이렇게 식사 때에도 유리한 면이 많았다. 


<경성수산>은 길가에 있어서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주차할 공간을 찾던 중 하나로 마트가 바로 근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우리 가족이 찾은 네 번째 하나로 마트가 되겠다. 일단은 엄마와 남동생은 차에서 대기하고 여동생과 내가 <경성 수산>으로 걸어가서 고등어회와 딱새우회를 주문했다. 여기에 사이드 메뉴로 날치알밥과 묵은지, 야채를 추가했다. 장사가 잘되는 집인지, 홀에도 손님이 있었고 우리처럼 포장을 하는 손님도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해서 우리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들리기로 했다. 운명처럼 만난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경성수산>으로 가니 포장이 다 되어 있었고 날치알밥은 서비스로 넣어 주셨단다. 사장님이 친절하고 센스가 있는 분인 거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이자 안주가 될 회와 마트에서 사 온 김치전, 라면을 맥주와 함께 먹었다. 고등어회는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맛났다. 혹시 모자랄까 봐 추가한 묵은지는 회만 먹었다면 남았을 테지만 라면과 함께 먹으니 양도 맞고 궁합도 잘 맞았다. 후다닥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야식과 함께 술 한 잔을 했던 지난 3일과 달리 여행 마지막 밤은 아예 숙소에서 저녁과 반주를 함께하니 여유가 넘쳤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술이 모자랐다. 피곤한 엄마에게는 먼저 주무시라고 하고 엄마 몰래 전날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남동생과 둘 뿐이던 전날과 달리 오늘은 삼 남매가 함께 나섰다. 그렇게 추가로 구매한 맥주와 약간의 안주를 챙겨서 숙소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 남매들의 전형적인 술자리를 가졌다. 


<경성수산>



카멜리아힐-가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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