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과 영수증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몇 가지 변수가 있었다. 국내 여행이라도 신분증이 있어야 비행기를 탈 텐데 여행 며칠 전에 엄마가 신분증 분실 신고를 했다. 다행히 원래 신분증을 찾기는 했지만 이미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이 완료된 상태여서 이전 신분증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또, 늘 나보다 빠르게 걷던 엄마가 넘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던 것이다. 엄마가 원해서 시작된 가족여행이었다. 지난해에는 거의 날아다닌다 싶을 정도로 잘 걸어 다닌 엄마였는데,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엄마의 컨디션에 매우 신경을 써야 했다. 엄마를 위해 여기저기 다닐 곳들을 선정했는데 일정대로 여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남동생도 변수가 생겼는데 제주도에서 일하면서 계속 살 줄 알았는데 일도 잘 안 풀렸고 다치기까지 해서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다친 것은 여행 전에 나을 수 있었지만 백수 생활 청산하고 잘 사나 싶었는데 다시 백수라니. 제일 먼저 여행 경비에 대한 부담이 다가왔다. 설상가상으로 출발하는 당일 아침에는 비도 엄청나게 내렸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이라 기대가 컸는데 시작이 불안했다.
그러나 하늘이 우릴 도왔는지, 아니면 우리 집 조상님들이 기도 두어 번에 자손들 살필 여유가 되셨는지, 우리는 변수를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 엄마의 신분증은 유효기간이 남아 있어서 여권으로 대체했다. 엄마의 컨디션이 예전만 같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삼 남매가 크게 다투지 않고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백수이기는 해도 남동생 역시 제 몫의 경비는 책임질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가장 걱정했던 날씨는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여행 내내 최상, 최고였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나 홀로 여행도 그렇고 가족과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 홀로 여행을 꼭 해 보라고 주변에 전도하고 다닌다. 그리고 반드시 가족과도 여행을 다녀보라고 권한다. 이전에는 '가족과의 여행'이 나와 엄마 혹은 나와 동생, 이렇게 개별적으로 다니는 것을 뜻했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것도 포함한다. 성인으로 구성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 결코 쉽진 않다. 각자의 생활이 있고 스케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이라면, 그게 연중행사라면 가능하기도 하다.
연중행사로 가족여행을 하면 좋은 점들이 매우 많다. 지난해 가족 여행 때도 그랬지만 이번 여행 때도 우리 가족들은 조금씩 속내를 터놓고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보였다. 우리는 늘 싸우면서 살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에 가족 여행을 하면서 의외로 우리 가족들이 여행 메이트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몰랐던 과거의 사연들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다 보니 조금 더 나은 가족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가족 여행에서는 더욱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번 여행 중에는 남동생도 나도 백수인 상태여서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서 걱정이던 남동생이 조금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서 다행이었다. 엄마와 나는 그동안 운동을 등한시해서 받는 불이익을 여행 내내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운동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고, 실제로 엄마는 열심히, 나는 아주 약간 노력하고 있다. 엄마가 갑자기 기력을 잃고, 여동생이 여행 중에 잠깐 아프면서 가족이 아프거나 힘들 때 어떻게 대처하고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정말 의외였던 것은, 늘 티격태격인 우리 삼 남매가 정말 필요할 때는 손발이 잘 맞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점은 정말 큰일이 닥쳤을 때 우리를 단단히 결속시키고 서로 지켜주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 가족 고유의 성향인 '적당히 효율적으로 빠르게'를 발견한 것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큰 성과 중 하나였다.
여행을 하면서 계획한 일정이 약간 수정되었지만, 그래서 더욱 즐거운 일정이 되었다. 예전보다 느슨하게 일정을 짰지만 어떤 날은 예전보다 빡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두가 동참하고 즐겼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또한 일정을 따라 편성한 여행 경비는 예산보다 적게 나와서 놀라웠다. 예정한 일정에 없었던, 매일 저녁의 하나로 마트 투어와 여동생이 잡았기에 몰랐던 식당 메뉴 가격 등등의 변수도 있었고 딱히 절약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산보다 적은 경비가 나왔다. 여행이 즐겁다가도 경비가 예산초과면 약간이라도 우울했을 텐데, 여행도 만족스럽고 경비도 예산보다 적게 나오니 이보다 좋기도 힘들다. 날씨면 날씨, 일정이면 일정, 먹거리와 타이밍, 심지어 경비까지 모든 것이 갓벽했다!
엄마가 내년 여행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 중이시다. 요즘 계속 태국 관련 콘텐츠들이 나오니 다시 태국에 가고 싶다는 말씀도 자주 하신다. 나는 다음 가족 여행을 강원도 같은 국내로 가고 싶은데, 엄마는 아예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시네. 돈 많이 벌고 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작고 소소한 목표들이 오늘의 나를 바지런하고 의욕적이게 만든다. 여행을 마치고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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