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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동 유목민의 필라테스 정착기

나는 어쩌다 필라테스에 정착하게 되었나?



운동하는 사람이냐고요?


“운동을 계속하시던 분인가 봐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난생처음 이 말을 들었다.
내 몸이 꾸준히 운동한 몸으로 보인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살면서 단 한 번도 어떤 운동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3개월이 고비였던 운동 유목민의 운동사


학창 시절 체육이란 과목은 점수가 매겨지는 또 다른 평가의 잣대였을 뿐, 재미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국어나 수학을 더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그렇다, 난 모범생이었다;;) 게다가 체육실기 점수는 항상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내가 운동 감각이 있고, 운동을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운동은 항상 내 인생의 뒷전이었다.


내가 운동을 할 때는 항상 무슨 일이 터지고 나서였다.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느라 책상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자, 척추 전문병원에 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추천한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 학교 헬스장을 찾았다. 그렇게 2개월간 러닝머신 위를 열심히 달렸지만, 몸이 좀 좋아진 듯 하니 이내 그만두었다.


입사해서는 회사 동기들을 따라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3개월 뒤, 해외파견을 가게 되어 포핸드 기법을 약간 배우다 말았다. 해외 파견을 가서 백핸드 기법을 살짝 배우고 2~3번 랠리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으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또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업무 스트레스를 풀고자 시작한 운동인데, 원하는 만큼의 실력이 나오지 않으니 더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요리조리 날 피해만 가는 테니스공이 얄밉기만 했다.


그러다 파견지에서 만난 동료들과 게임으로 시작한 볼링에 재미를 붙여 3개월간 매주 볼링장을 찾았다. 매주 볼링을 치니 금방 147점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지만, 고작 2주 쉬었다고 이내 점수가 60점대로 바닥을 쳤다.


"에잇, 안 해!"


그렇게 난 볼링도 놓아버렸다.

다음은 수영이었다. 수영은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 운동이었다. 오로지 일주일에 한 번 빠지지 않고, 수영장에 가는 나의 끈기와 인내심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간헐적으로 수영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온 후에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요가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니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운동하는 곳에 가야 한다는 부담도 덜었다. 하지만, 동료가 '오늘 회사식당 메뉴 별로인데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하면 난 어김없이 맛난 점심을 택했다.


이렇게 나는 언제나 필요할 때만, 그리고 아플 때만 운동을 찾았고, 그러다 몸이 좋아지면 '에이, 지금 건강한데 운동 안 해도 되겠지’하는 겸손과 자만의 시소를 탔다. 때문에 회사 복지 포인트를 소진하려고 등록한 PT도 40회 중 7회를 못 채우고 그만뒀다.



내 운동의 새 역사를 쓴 필라테스


그러다 아는 사람도, 할 것도 별로 없는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겨 왔다. '무엇을 하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다 필라테스를 찾았다. 마침 전임자가 추천한 필라테스 학원이 근거리에 있었다. 게다가 허리 디스크가 터져 6개월간 와식생활을 한 회사 동료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터였다. 이젠 더 이상 운동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섰다. 그리고는 당장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시작한 필라테스에는 낯선 것들이 참 많았다.  월유닛, 체어, 바렐, 리포머, 캐딜락 등. 필라테스에 쓰이는 기구의 이름부터가 생소했다. 등척하게 버틴다는 말은 또 무언가?! 분명 한국어지만 외국어 같은 말들이 범람했다.(‘등척’은 ‘정지한 상태에서 근육의 길이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근육의 긴장만 일으키는 것’으로 한 마디로, 절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멈추라! 는 뜻이다.) 또 새 운동을 하려면 왜 이렇게 필요한 것은 많은지! 근육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레깅스와 브라탑을 입어야 하고, 발가락의 힘을 골고루 쓰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필라테스용 발가락 양말도 따로 사야 했다.(초기비용이 많이 든다는 건 어떤 운동에도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가장 생경한 것은 호흡하는 법이었다. 필라테스를 할 땐 등으로 숨을 마시고, 갈비뼈를 닫으면서 숨을 내쉬어야 한다. 날개뼈도 아래로 끌어내려야 한다.


“회원님, 호흡 깊게 내쉬면서 갈비뼈 닫으세요.”
“어깨 끌어내리세요.”


이 말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그 덕에 그간 내 갈비뼈가 얼마나 열려있었는지, 내 어깨가 어찌나 긴장되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필라테스를 한 지 6개월 가량이 됐다. 나에게도 드디어 3개월을 넘겨 꾸준히 하는 운동이, “무슨 운동해요?”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무엇이 생긴 것이다!



필라테스하는 기쁨


필라테스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 몸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일’이었다. 치골, 장요근, 횡격막, 복사근 등 '어디에 있었더라?' 했던 내 몸의 근육을더듬더듬 찾아가며, 생전 인지하지 못했던 느낌을 깨우쳤다.


‘아 이런 곳에도 근육이 붙어 있었구나.’
‘이 동작을 할 때는 이 근육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사실 필라테스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운동이다. 동작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집중해서 설명을 들어야 하고, 그 동작이 내 몸에서 구현되는지를 예민하게 살펴야 한다. 잠깐이라도 놓치면 운동 효과가 반감된다. “부정확한 자세로 열 번 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자세로 한 번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렇게 내 몸과 정신을 한 곳에 열중하는 일, 필라테스를 한다는 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었다.


처음 만난 몸의 자극을 인지하는 기쁨한 동작이라도 또박또박 해내려는 정성스러운 마음에, 지난달부터는 연달아 수업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한 번의 수업만으로는 동작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수업을 두 번 들으면서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를 내 몸에 완전히 인지시키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2시간 내내 운동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피로감보다는 내 머리와 몸이 확실하게 이해한 후 동작을 또렷하게 해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운동으로 맛본 행복은 아마 지금이 생애 처음일 거다.



필라테스하는 슬픔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질 거라 믿었다. 살을 뺄 만큼 체중이 많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부위의 살은 좀 빠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때로는 굶고 2시간 연속으로 운동했지만 살은 하나도 안 빠졌다.(-_-) 그래서 선생님께 물었다.


나 : "선생님, 왜 필라테스해도 살이 안 빠지나요?"
선생님 : “먹는 열량을 줄이거나, 아니면 열량을 소비할 만큼 동작을 정확하게 해야 해요. 하지만 보통 그룹 필라테스에서는 기력을 다 쓸 만큼 운동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렇다, 나에게는 노력이 조금 더 필요하다. 어깨와 귀 사이의 거리는 좀 더 멀어지게 해야 하고, 복부의 힘도 길러야 한다. 동작을 올바르게 해내기 위해 정밀도는 높이고, 속근육은 더욱 단련해야 한다.


필라테스를 하는 또 다른 슬픔은 돈이 많이 든다는 거다. 이벤트 가격으로 할인을 받았어도 적어도 회당 2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일주일에 여러 번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으니, 월단위로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이것도 꽤 지출이 크다. 그래서 난 아직 5:1 그룹 필라테스만 하고 있다. 하지만 필라테스로 인한 기쁨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장벽쯤은 곧 야들야들해진다.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원픽 운동, 필라테스


살은 빠지지 않았지만, 돈은 좀 들어가지만, 그래도 레깅스 입은 내 모습을 보면 운동을 하기 전보다 확실히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졌다는 걸 느낀다. 승모근이 울퉁부퉁 튀어나왔던 어깨라인이 매끈해지고,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옆라인의 군살이 사라졌으며, 특히 척추부터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은 육안으로 봐도 변화가 있을 만큼 예뻐졌다.


그래서 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필라테스를 해볼 생각이다. 지금을 "내 인생에서 이때보다 운동을 열심히 한 적은 없어!" 하는 시기로 만들어볼 작정이다. 앞으로도 내 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깨어난 몸의 느낌을 잃지 않고, 계속 간직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를 통해 내 몸의 자극을 깨닫는 경험을 매일 선물하며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보듬어 주고 싶다.


그렇게 촘촘한 몸의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난 필라테스를 하러 간다.





대문 이미지 출처 :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69959 기사 첨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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