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금, 맑음
사천진해변
사천진해변은 백사장이 길고 암초 없이 평평하다. 모래톱 안쪽 길을 따라 소나무가 줄지어 섰다. 하늘에서 보면 땅에서 바다로 녹색, 모래 빛, 물빛이 차례로 띠를 이루어 나갔다.
적당한 그늘을 찾아 나무 아래 텐트 치고 캠핑 의자를 늘어놓았다.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 갈수록 짙은 푸른빛이 인상적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혼자 선 까만색 등대는 함께할 갈매기가 있어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한낮이라 해가 매우 뜨거웠으나 바다에서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했다. 간간이 짭조름한 냄새 풍겼다.
어제 영진해변과 다른 바다는 아이 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한참 높은 모래성을 짓더니 센 파도에 몸을 맡겨 몇 시간째 개구리 모양으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천진난만한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숙소가 있는 영진리는 오래된 동네라 맛집이 더러 있었다. 저녁 시골 인심이 듬뿍 담긴 풍성한 감자탕을 먹었다. 맛 또한 흠잡을 데 없다.
8.6. 토, 맑음
영진 방파제
밤새 더위에 뒤척인 아이를 따라 나도 잠을 설쳤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찬 에어컨 바람이 마뜩하지 않아 새벽에 꺼둔 탓이다. 해 뜰 무렵 잠이 들어 늦게 일어날 모양이었으나 지예 아빠와 아침 낚시를 가기로 해서 간신히 눈을 떴다. 점심때쯤 돌아오기 위해 아침도 거르고 서둘러 나갔다.
영진 방파제는 그제 오후를 보낸 해변에서 바라보인다. 방파제 밖은 고기가 많겠으나 경사지게 둘러친 테트라포드는 사고가 잦아 평평한 내항으로 갔다. 아홉 시, 우리보다 먼저 온 낚시꾼들은 많지 않았다. 연세 지긋한 사람 둘이 입구와 가장 바깥 양쪽 끝에서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고깃배와 스노클링 하는 사람들이 탄 배가 수시로 드나들어 소란스러웠으나 먹거리가 풍부해 그들 고기 통은 제법 풍성했다. 그사이에 서서 채비했다. 가져간 대는 릴이 달린 원거리 투척 대와 장대 두 개였다. 쓰기 쉬운 장대를 건네고 난 릴 대를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서울에 있는 낚시 가게 주인에게 부탁해 장비를 준비하며 주의 깊게 봐두었으니 쉬우리라 생각했으나 실제는 달랐다. 바늘에 단단히 묶은 줄이 릴을 돌려도 감기지 않아 풀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작업하는 사이 탄성 강한 줄을 고정하는 걸 잊는 바람에 마구 풀려 뒤엉키고 말았다. 허둥지둥 삼십 분 넘게 한참 씨름하다 겨우 낚시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은 얕았고 고기도 제법 많았으나 도무지 입질이 없었다. 고도를 기다리듯 인내심을 가지고 애타게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두 시간 불타는 뙤약볕에 지쳐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장비 사용법을 조금 익힌 게 소득이라면 나름의 소득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허겁지겁 점심을 먹으니 피곤이 물밀듯 밀려왔다. 낚시도 힘든 스포츠였다.
더운 오후 아이들 바람대로 첫날 있던 영진해변에 다시 갔다. 익숙해진 둘은 발 닿지 않는 깊은 물에서도 편안해 보였다. 난 경이로운 물속 풍경이 그리워 바로 앞바다로 들어갔다. 하지만 토요일 이곳에 온 많은 사람에 물이 흐렸고, 물고기도 별로 없었다. 해변을 따라 헤엄치며 드문드문 암초를 만났으나 역시 볼거리가 적어 계속 가다가 방파제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면 아래로 사람 키만큼 깊은 암초가 있었고 해초로 뒤덮여 물고기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한 마리라도 잡고 싶어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그곳은 새로운 세계였다. 암초와 그 위에 뿌리내린 해초는 커다란 나무와 나뭇가지였고, 파도는 바람이 되어 이리저리 해초를 흩날렸다. 해초 사이사이는 나무에 깃든 새들처럼 고기가 숨어있었다. 바닷속으로 스며든 빛은 맑은 날 울창한 나무 사이를 뚫고 땅으로 내리쬔 모습과 같았다. 녹색, 홍색, 갈색 조류는 햇볕이 투과된 화려한 보석같이 하나하나 빛났다. 우연히 만난 풍경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제보다 바람이 조금 서늘했다. 폐장보다 조금 이른 시간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느긋하게 저녁 먹고 쉬는 사이 창 너머 밤하늘 불꽃이 보여 모두 함께 산책을 나섰다. 큰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저마다 준비한 폭죽을 날려 터뜨리고 있었다. 가로등 밝은 곳에는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새 바지를 위로 한껏 접고 바다에 뛰어들어 놀기 시작했다. 분명 길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발은 적시지 않겠다고 했다. 낮에 모래 위에만 있던 아내도 신발을 벗어들어 물을 밟고 걸었다. 바다는 끌어들이는 마성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