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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짱ㅣ원시인 Jun 16. 2023

여행지에서 만드는 발자국

그래서 나는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달리기 기록을 남기며 말이다.

#여행지에서만드는발자국


여행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마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몇 골수분자 집콕 마니아 빼고 말이다.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거창한 목적보다는 일상을 떠나고 싶은 욕망, 쉼의 갈급함,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떠나는 것이 아닐까?


가치의 중요성은 희소성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꼭 가봐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든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있다. 낯선 곳에서의 어색함을 줄일 수는 있지만 어디에 가서도 먹을 수 있는 아메리카노가 여행지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햄버거와 커피는 여행의 익숙함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함을 느끼러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쉼을 위해 익숙한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소성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행을 떠난다. 희소성은 경제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경제학에서 희소성이란이란 인간이 갖고자 하는 재화의 한정으로 인해 공급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 나타난다.


이것처럼 우리는 제한된 환경(직장, 학교, 일상 등)으로 인해 시간의 희소성을 갖게 되고 상대적으로 시간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휴가는 소중하다. 장소의 희소성으로 인해 여행지에 대한 가치와 그곳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희열은 극대화된다. 우리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스타벅스보다 센트럴파크에 열광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뉴욕에만 있다. 에펠탑 진품은 파리에만 있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희소성이다.


이런 희소성 넘치는 장소에서 달리며 그곳을 느낀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나만의 발자취를 애플리케이션에 남기며 그곳의 추억을 GPS를 연필 삼아 그곳에 담는다. 그곳의 감동을 완벽하게 담기 위해 사진까지 함께 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나의 삶을 마음껏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고 라이킷으로 피드백을 받는 것은 운동을 향한 또 다른 자극이 된다. 나는 어디를 가든 달리며 나의 발자취를 남긴다. 그곳에서 숙박하고 머물면서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그곳을 가쁜 숨결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달리기 기록을 애클리케이션에 남기며 말이다.


나는 여행할 때 꼭 하는 버릇이 있다. 희소성에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다. 나만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도장 찍기다. 동물들이 자신의 영역에 채취를 남겨 영역을 표시하거나 짝짓기 상대에게 '나 여기 있소'라고 알리 듯 나만의 숨결을 남긴다.


우선 여행지나 출장지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뛸 수 있는 코스를 지도 앱을 보며 검색을 한다. 제일 먼저 강이나 하천이 있는지 본다. 대체로 하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와 함께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찻길이 있으면 달리기의 흐림이 끊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끊기지 않은 길을 찾아본다. 그리고 코스가 머릿속에 그려지면 그대로 달린다. 지도 이미지를 회상하며 머리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의 지도를 그리며 나는 그렇게 긴장하며 달린다. 그리고 그곳의 풍광과 숨결을 느끼다 보면 내가 달리는 이곳에서 나의 기억을 남기는 육체적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말고도 세계 주요 도시를 달리는 것도 꾀 의미가 있다. 상당히 열정적인 마라토너 라면 세계 5대 마라톤에 대한 로망은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은 이미 보스턴 찰스강을 따라 달리고 있으며, 뉴욕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런던의 템즈강을 따라 빅벤을 쳐다보며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달리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달리며 보는 것은 그곳의 삶과 문화를 투영해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세계 마라톤대회는 언젠가 내가 꼭 해내야 할 길이다. 나는 느리게 뛰는 발걸음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그렇게 달리다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너무 빨라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말이다.



*버킷리스트-5대 마라톤 달리기:

 보스턴, 뉴욕, 시카고, 런던, 베를린 마라톤 대회가 5대 메이저 마라톤 대회 플러스 도쿄마라톤대회까지 섭렵



#1


독일 베를린을 간 적이 있다. 호텔을 나와 무작정 달렸다. 거친 숨결로 독일 베를린의 공기를 다 마셔보자라는 심정으로  무작정 달렸다. 달리다 낯선 곳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목격했다. 달리다 보니 공원에 상의 탈의 하고 커다란 회색빛 교각을 보고 한 줄로 서 있는 이상한 자세의 사람들을 보고 달리기를 멈췄다. 나는 무엇에 끌리듯 그곳으로 터벅터벅 빠르게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은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휘향 찬란한 그래피티로 펼쳐진 회색빛 교각을 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이상 야릇한 자세를 반복적으로 취하는 것이다. 지금 뭐 하냐고 물으니 머리카락을 뒤로 한껏 묶은 잘생긴 구릿빛 남자가 나를 쳐보며 영어로 말했다.


"Do it together"  뭐 하냐고 묻는 나에게 그가 꺼낸 거친 영어 한마디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벽을 보고 소변보는 자세로 엉거주춤 위아래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알고 보니 스쾃를 하며 하체 맨몸 운동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릿빛 가슴 남자의 구령에 맞춰 거기에 있는 사람과 함께 맨몸운동의 맛을 보았다. 그 이후 나는 맨몸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다. 그렇게 난 지금도 머슬업을 하겠다고 철봉과 사투 중이다. 이다음에는 플란체다. 과연 내가 할 플란체를 할 수 있을까?


#2

북경에 갔다. 자금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중국 역사의 빨간 심장을 보았다. 서울의 경복궁과 비교해서 역시 대륙의 스케일은  다르다. 미국 LA다저스 구장 주차장 뺨 칠 정도로 컸다. 끝없는 야구장 주차장 지평선을 보았는가?

청나라가 세계 황제국으로 굴림했던 영광은 자금성의 크기를 보면 여실히 느껴진다. 이곳에서 마지막 황제 푸이가 세상모르게 뛰어다녔을 것을 상상하니 나도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자금성 주변 호텔에서 벗어나 자금성을 향해 달렸다. 새빨갛게 높이 솟은 담벼락을 한쪽에 두고 한 바퀴를 달렸다. 대륙을 호령했던 황제의 거쳐를 달리다 보니 중국 역사 속 한가운데로 빠져드는 듯했다. 거침없이 들려오는 중국어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그렇게 달렸다. 마음껏 중국을 내 가슴에 품으며 약 4km를 달렸다. 나는 그렇게 중국 자금성에 내 발자취를 남겼다. 바로 폰을 꺼내 구글 지도에 별풍선을 표시하며 나만의 흔적을 담았다. 달리며 보는 풍경과 사람들 모습은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나만의 삶이 된다. 달리면서만 볼 수 있는 삶의 한 자락이다.


#3

미국 LA를 갔었다. LA에 가게 된 것은 종로 프레스센터에서 내게 보내준 선물이었다. NIE활용교육대회(나에게 이런 일이...)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대회 수상 받은 선생님들과 함께 미국 미디어기관과 학교를 탐방하게 되었다. 미디어리터러시의 대왕 교수팀도 만난 후 말리부해안을 갔다. 그곳에서 맛있는 시푸드를 먹으며 아름다운 해안 내달릴 상상을 했다. 내가 태어난 곳 태평양 반대편에 있는 뜨거운 모래를 밟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일행에서 잠깐 벗어나 그곳을 달렸다. 푹푹 빠진 모래를 넘어 달리며 내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호텔 주변을 3km가량 달렸다. 달리다 우연히 스타벅스에서 홈리스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주는 모습을 보았다. 이 또한 달리면서 볼 수 있던 나만의 풍경인 것이다.


#4

동해안 하면 강릉 아닌가? 강릉에 대표적인 관광지는 경포대이다. 경포호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호(潟湖)다. 학창 시절 지리 선생님이 우리나라 동해안의 특징인 석호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놈이 바로 이놈이었던 것이다. 이놈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고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3바퀴를 돌면 13km 정도 된다. 인근 리조트에 전기차를 충전하고 경포호를 3바퀴 돌고 나면 완충이 되었다고 알림이 울린다. 일석이조, 금상첨화, 일타쌍피(?)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빗대어 만들어진 사자성어인 것 같다. 그렇게 경포호를 접수하고 나면 동해안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만큼 정말 가슴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은 없다. 가끔 불어오는 바닷가의 짠내는 땀으로 부족한 염분을 보충해 주는 것 같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태닝 할 겸 윗 옷을 벗고 뛰는 것도 꽤 낭만적이다. 미국의 하와이나 프랑스의 니스를 느낀다. 가지 못하니 상상이나 해본다. 그렇게 나는 구릿빛 피부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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