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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by 은빛지원 Mar 11. 2025

함민복시, (긍정적인 밥)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공에 비해 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매일 아침 필사를 하면서 나는 작가의 글 속에서 잠시나마 주인공이 된다. 오늘은 유독 함민복 시인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시집 한 권의 값과 국밥 한 그릇을 비교하며, 자신의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인의 마음이 내 장사하는 삶과 겹쳐 보였다.

12년 전 나는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런치 뷔페도 함께 운영했다.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식탁이 되었다. 매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마치 구내식당처럼 오던 단골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던 인연들. 그중에서도 연세가 있으신  교수님 부부가 떠오른다. 처음 오셨을 때부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매일 점심을 드시고 갈 때면 꼭 한마디를 남기셨다. “맛있고 건강한 밥을 해줘서 고마워요. 사장님, 오늘도 맛있게 먹고 갑니다.”엄지 척 손을 흔들어 주셨다. "사장님,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장사하세요. 기도할게요."그분들 이외에 많은 손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뷔페를 운영할 때는 항상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래서 때때로 고민이 들 때도 많았었다.

"이게 돈을 벌려고 하는 장사인지, 그냥 퍼주고 칭찬 듣기 위한 장사인지."

하지만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고민은 사라지고 감사함만 남게 된다.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고.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손님들과의 유대 관계 속에서 나는 솜씨 좋은 반찬가게 사장, 인심 좋은 밥집 사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유방암을 진단받고 10년간 운영해 온 런치 뷔페를 접어야 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단골손님 중에 은퇴하고 두 분이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생 밥상을 차려줄 거라 나만 믿고 있던 분들을 어쩌면 좋아."가족들은 건강을 위해 멈추라고 했지만, 나는 귀를 닫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수술이 임박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지금은 반찬 매장만 운영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한 식탁에 둘러앉아 정을 나누던 순간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교수님 부부는  여전히 지나는 길에  가게를 찾아와 내 건강을 걱정하며 십자 성호를 그어 기도해 주신다.

"사장님, 복 많이 받아요. 이거 책갈피에 넣어요. 행운을 줄 거예요."

오픈 초기에 교수님 할머니가 쥐여 주신 것은 다섯 이파리 클로버였다.

그날의 따뜻한 손길은 아직도 생생하며  나의 책갈피 속에  모셔져있다.

다섯 잎 클로버다섯 잎 클로버


시인은 국밥 한 그릇의 온기를 생각하며 자신의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나 역시 장사를 하면서 같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밥 한 그릇, 반찬 한 통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 끼가 되었고, 그 진심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았다는 것을. 국밥 한 그릇처럼, 내 음식도 사람들의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나와 손님들 사이에  끈끈한 정이 함께 했던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나누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내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전하고 있다. 언젠가 가게를 접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오늘도 내 반찬을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국밥 한 그릇 같은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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