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자씨는 스스로의 표정에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세수했다. 그리곤 다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몇 년 사이 불어난 체중에 부스스하고 희끗한 파마머리, 피부는 점점 더 쳐져 그저 삶에 지친 노인의 모습이었다. 최씨의 전화를 받고 난 이후 말자씨는 설레지 않기 위해, 설레는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보통 그것은 무산되고 말았다. 최씨를 만나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아 말자씨는 그 기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일이 잦아졌고 얼굴은 눈에 띄게 생기가 있었다. 그 변화는 지희가 제일 먼저 알아챘다. 지희는 할머니가 무엇 때문에 즐거워 보이는지 알 순 없었지만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좋았다. 말자씨는 일주일 동안 적게 먹고 소영의 방에 다시 몰래 들어가 화장품을 발라보곤 했다. 지희와는 거의 하루 종일 둘이 있었기에 말자씨는 지희에게 장난스럽게 할머니가 막내 고모 방에서 하는 행동을 둘만의 비밀로 약속했다. 지희도 말자씨를 따라 소영의 립스틱이나 매니큐어를 호기심 있게 쳐다보았다. 무엇보다 지희는 말자씨가 소영의 립스틱을 몰래 바르고는 거울을 보며 싱긋이 웃는 모습을 좋아했다. 할머니와 자신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있다는 것이 어린 지희에게는 재밌고 두근거리는 일이었고, 늘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할머니가 가끔씩 웃는 모습이 좋았다. 최씨를 만나기 전날 말자씨는 지희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주며 말했다.
“할머니 친구 만나고 올 건데 혹시 혼자 있을 수 있어?”
지희가 포크로 떡을 찌르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단 한 번도 혼자 있어본 적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말자씨와 함께 가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수 있지?”
말자씨가 저희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
지희가 포크로 떡을 굴리며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 금방 다녀올게.”
말자씨가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하자 지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자씨는 지희의 대답에 만족한 듯 활짝 웃으며 지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할머니와 지희만의 비밀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희는 작게 대답하며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씨를 만나는 당일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말자씨를 소영이 의아한 듯, 하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몇 년 사이 말자씨는 말수도 적어졌고 웃는 일도 적어져 소영은 늘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최근 다시금 말자씨가 웃음을 되찾고 얼굴에도 전에 봤던 생기가 가득해 소영은 그저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최씨와의 만남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말자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소영의 아침을 차리고 소영을 배웅했다. 소영이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 전 잠시 뒤돌아 말자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요즘 좋아 보여.”
말자씨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리는 듯했으나 소영이 ‘그냥 그렇다고.’ 하며 미소 지어 보이자 자신도 수줍은 듯 미소 지었다. 소영이 다시 발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나섰다. 그것이 소영이 본 말자씨의 마지막 미소였다.
말자씨의 사고 소식에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한 기분으로 병원에 모였다. 제일 빨리 달려온 사람은 차가 있는 민영이었다. 민영은 병원에서 대략 말자씨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급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트럭에 심하게 부딪혀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에 민영이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민영과 함께 달려온 선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상황을 설명하는 병원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 근처에 아이는 없었나요?”
“아이요?”
“네, 초등학생… 아직 어린데…”
“아뇨, 아이는 없었어요.”
선희는 놀란 눈으로 민영을 바라보았다. 말자씨가 지희를 혼자 두고 외출을 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선희가 급하게 말자씨 집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지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희니?”
선희는 안도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말자씨의 사고소식도 놀랐지만 선희는 늘 말자씨와 함께 있는 지희가 다쳤을까 전전긍긍하며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주저앉는 선희를 보던 민영이 선희가 괜찮다는 눈빛을 주자 마찬가지로 옆에 놓은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민영은 혼자 있을 지희가 걱정되어 선희를 말자씨의 집으로 보냈다. 말자씨가 힘든 수술을 하는 동안 말자씨의 자식들이 한 두 명 모였다. 재영과 소영이 먼저 도착하고 지영은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찾아왔다. 말자씨가 중태라는 소식에 재영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옆에 나란히 앉아 소영이 재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함께 눈물을 흘리고 지영 또한 함께 온 남편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민영은 장남으로써 평정심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도대체 엄마는 왜…” 재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어디 간 거야?” 지영이 소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소영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어디 간다는 말 없었어?” 민영이 물었다.
“응.” 소영이 여전히 손에 얼굴을 묻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희까지 두고…” 민영이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지희가 뭘 알지 않을까?” 재영이 잠시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희가?” 민영이 재영을 보며 묻자 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뭘…” 민영은 아닐 거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은 이후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말자씨의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말자씨의 상태를 말해주자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오열했다. 말자씨는 그렇게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가늘고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가족들은 말자씨를 이 상태로 만든 트럭 운전사와 대면하고 보험처리를 하고 병원 치료비를 분담하며 심란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말자씨의 가족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으나 서로 의지하며 그 시간을 버텨가고 있었다. 말자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말자씨를 직접 간호할 자식들은 없었기에 간호인을 고용했고 말자씨의 자식들은 번갈아가며 병문안을 갔다. 말자씨가 의식을 잃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뒤 급한 일이 정리된 가족들은 다시금 의문에 빠졌다. 말자씨는 어디를 향했던 것일까? 누구를 만나려 했던 것일까? 말자씨의 사고 이후 어딘가 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진 지희가 무언가 알까 싶어 민영과 선희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희에게 묻곤 했으나 지희는 모른다고 고개를 젓거나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재영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엄마 휴대폰 어디 있지?”
“휴대폰?” 민영이 되물었다.
“엄마 가방 받았던 것 같은데…” 소영이 일어나 사고 당시 말자씨가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받은 물건 상자를 가지고 왔다. 재영이 소영이 내려놓은 박스 쪽으로 다가와 말자씨의 가방을 뒤졌다. 사고 당시의 충격으로 액정에 살짝 금이 가긴 했지만 사용에는 문제가 없어 보여 재영은 소영에게 핸드폰 충전선을 가져오도록 손짓했다. 어두운 표정을 앉아있던 민영과 선희도 다가와 앉았다. 소영이 말자씨의 서랍 몇 군데를 뒤져 충전선을 찾아 가져왔다. 서둘러 충전선을 꽂은 뒤 초조하게 몇 분 기다린 후 화면이 정상적으로 켜졌다. 그리고 가족들은 말자씨의 전화 목록과 문자 목록을 확인했다. 가장 마지막에 온 문자는 최씨가 보낸 문자였다.
“‘미안합니다.’?” 민영이 최씨의 마지막 문자를 읽었다.
“엄마 그러면 이 사람 보러 갔던 거야?” 재영이 혼잣말하듯 물었다.
“그런가 봐…” 소영이 허망한 듯 말자씨의 마지막 미소를 떠올리며 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소영이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은 재영이 캐물었다.
“무슨 소리야?”
“아니… 엄마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어. 사고 난 날… 아침… 웃고 있었어.”
“그럼 또 그 새끼를 본다고 기분 좋았다는 거야?” 민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나도 그것까진 모르겠어…” 소영이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
“한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만들고…” 민영이 악에 받쳐 읊조렸다.
“핸드폰 줘봐.” 민영이 재영의 손에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뭐 하려고 그래?” 재영이 다시 뺏으려 손을 뻗었다.
“당연히 이 새끼 만나서 따져야지.” 민영이 최씨의 번호로 통화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오빠… 이 사람 잘못도 아닌데…” 재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말자씨의 자식들은 최씨가 말자씨와 불륜관계인 것도 어떤 방식으로 헤어진 것도 몰랐기에 최씨에 대한 악감정은 없는 상태였다. 춤추다 만났다는 말에 제비 같은 느낌은 감출 수 없었으나 전직 교사라는 말자씨의 말에 놈팽이는 아닐 것으로 어렴풋이 예상할 정도였다. 말자씨의 핸드폰으로 전화하자 신호음이 한두 번 간 뒤 바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메시지가 나왔다.
“이 개새끼가…” 민영이 중얼거렸다. 그리곤 바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최씨의 번호를 빠르게 누른 후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빠. 좀 진정하고…” 소영도 재영과 같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민영이 화가 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끝난 사이에 몇 년 뒤에 불러낸 게 이상하잖아.” 민영의 말에 소영과 재영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반적이진 않은 상황이라고 무언의 동의가 오고 갔다.
“여보세요?” 민영의 수화기 너머에서 최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태연한 목소리에 민영이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 했으나 민영의 핸드폰을 재영이 채가며 웅얼거림으로 끝났다. 재영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최씨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김말자씨 딸 되는 사람입니다.”
“…”
“여보세요?”
“아, 무슨 일로 연락을 …”
“저… 한 달 전 즈음 저희 어머니 만나셨나요?”
“한 달 전이라…” 최씨는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없었으나 짐짓 모른 채하며 중얼거렸다.
“네… 저희 어머니가 사고로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예요…”
“… 저, 만나려고 한 것은 맞는데요… 제가 다른 일이 생겨 못 봤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태연한 최씨의 말투에 민영이 다시 핸드폰을 뺏어서 소리쳤다.
“당신, 똑바로 말 안 해? 다 아니까 솔직하게 말하라고.”
“저, 정말로 본 적 없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민영이 화가 나 욕설을 내뱉자 소영이 제발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민영의 팔을 잡았다. 민영이 소영을 보고는 다시 숨을 고르며 재영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저, 혹시라도 뭐 생각나는 거 있음 말씀해주세요. 이 번호로요…” 하며 재영이 애타게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었다.
“…네, 꼭 그럴게요.” 최씨가 어딘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답한 후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민영과 재영, 소영은 꺼진 핸드폰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며 말자씨의 마지막 행적을 찾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최씨와의 전화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재영의 최씨가 할 말이 있다며 조용히 혼자 나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재영이 알았다고 답한 후 최씨와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재영은 소영에게만 이 사실을 전한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둘이 같이 약속 장소로 향한 후 서로 남인 척 앉아 있기로 했다. 그렇게 재영과 최씨가 처음으로 대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