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 시절이 쌓여 연륜이 된다.
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에 있다. 어린 시절 월남하여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평생 그리워만 하셨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38선을 넘었던 꼬마는 이제 산수를 훌쩍 넘겨 미수를 바라보고 계신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은 꿈속에서도 찾기 힘든 노스탤지어로 남았다. 아버지와 평생을 함께하신 어머니는 덩굴장미가 담장을 수놓은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붉은 장미는 여인의 마을을 설레게 하는 법이다. 소녀 감성 같던 그 소원은 젊은 시절 꿈으로만 남아버렸다. 이제 두 분은 삶의 형태를 바꾸기 힘든 연세가 되셨다. 그리운 시절은 켜켜이 쌓여 인생이 되었다.
송해공원의 튤립도 한 개체의 생애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늦가을 심은 알뿌리가 이른 봄 작은 잎을 내밀었고, 4월 화려한 꽃을 피웠다. 이제 화단의 튤립은 초록빛마저 잃어버리고 시들었다. 튤립에서 화려했던 시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송해공원의 계절은 이제 신록의 계절로 넘어가고 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삶에서 생명의 시간은 가혹하다.
2023년 5월 2일 화요일
송해공원 주변에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다. 5월 첫 주 월요일이 노동절이었던 이유로 배스 낚시 허가일이 하루 미뤄진 것이다. 낚시꾼이 낚아 올린 배스는 4월에 비해 씨알은 조금 작아 보였다. 꿈나무 사계정원에는 다양한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피어나고 있었다. 화단 사이로 고개를 숙였던 할미꽃의 꽃잎은 떨어지고 씨앗이 영글고 있었다. 할미꽃의 화려한 시절도 가고 있었다.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송해공원 한켠에는 주말 농장이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빛이 강해지면서 다양한 농작물이 빠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이제 농부가 바빠지는 시절이 되었다. 옥연지 잉어들이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수면 위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특히 나무가 물속에 잠겨 있어 숨을 곳이 많은 물가에는 팔뚝만 한 잉어가 물을 힘차게 차고 있었다. 요란한 산란기를 보내고 있었다.
2023년 5월 4일 목요일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낮게 내려앉았다. 송해공원에는 고속도로 작업차량이라고 적힌 살수차가 또 들어왔다. 살수차는 주로 사계공원의 맞은편에 주차했다. 굵고 긴 호스를 내려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송해 기념관 쪽에는 가끔 작은 트럭이 물통을 싣고 와 호숫물을 담아가기도 했다. 옥연지가 많은 것을 품고 있기에 아낌없이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2023년 5월 5일 금요일
어린이날이다. 비가 많이 내렸다. 오래간 만의 긴 연휴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한 집도 많았을 것인데 이날 많은 어린이가 아쉬움에 눈물까지 흘렸을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호사로움을 누릴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아쉽게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긴 가뭄으로 하늘만 쳐다보던 농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시 <오데즈(Odes)>에 나오는 구절인 카르페 디엠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 유럽에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유행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거두라' 는 존 키팅 선생님의 대사처럼 우리는 미래와 함께 현재도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그 순간이 모여 생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