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한 지우개

다르게 보면 희극일 수도

by 나늬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짜증 나거나 화난 나의 감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유독 월요일이 더 그렇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꿈에서 깬 아침이 더 그렇고, 미묘하게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더 그렇다.

일은 항상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는 관계를 수반한다. 그 관계에서 적절하게 매듭짓고 풀어나가면서 일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웃음이 나에게(by 나늬)

나는 관계에 있어 ’ 이해‘가 중요하다. 이해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이해의 시작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었다(역시 인생은 그다음의 허들이 늘 존재한다). 이해라는 의미를 던져 관계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려고 했으나,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 나는 마치 고장 난 것처럼 멈춰 서고, 당혹스럽다.


“엠마뉘엘 레비나스는 자아는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아 중심의 문화로 포섭하려 하는데, 자아와 절대적으로 다른 타자를 ‘자아’로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결국 타자는 소외된다고 하였다.”라는 문구를 책에서 보고, ‘이해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던 나의 방식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이해를 통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너그러이 맺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의 기준에서의 이해일 뿐이라는 반성을 하고, 그럼 이제 관계에서 나는 무엇을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 고민은 나에게 중요하다. 나의 모든 것은 관계로 둘러싸여 있고, 나는 건강하게 풀어가고 싶기 때문이다(스트레스로 인해 위궤양이 만연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분명 무겁게 들고 있던 말인데, 그 사람에게 털어놓는 순간, 그 무게를 가볍게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유머’였다. 호탕하게 웃어넘기며 분위기를 말랑하게 할 뿐이었다.


나는 진지하다.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고, 진지하게 해결하려고 애쓴다. 가끔 이런 나의 태도가 분위기를 무겁게 가라앉힐 때가 있다. 그럴 때 호탕하게 웃어넘기면 분위기가 말랑해질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나에게도 유머러스한 지우개가 필요한 건 확실하다. 최소한 그 지우개가 무언가를 가볍게 해 줄 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