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일진 냥이를 가리기 위해

고양이들도 싸우면서 큰다

내가 밥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노라면

우리 집 큰 아이 '온이'가 조용히 책상의 한켠을 자리한다. 온이는 이런 분위기가 좋은지 기분 좋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누워있곤 한다. 그런 온이를 보면서 나도 차를 마시며 힐링을 한다. 이때 나는 기분이 안정되고 에너지가 몸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온이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면 온이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10분이 채 안가 검정 그림자로 인해 사라진다. 그 검정 그림자는 바로 깨발랄 막내 '흑미'다.

흑미가 테이블에 올라오면 그야말로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치우고 흑미를 내려놓기 바쁘다. 그렇지 않으면 흑미가 좋아할 만한 양모 공이나 리본들을 바닥에 내려주면 그것으로 또 당분간은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흑미는 내 옆에서 기분 좋게 누워있는 온이의 살랑거리는 꼬리도 자신의 장난감으로 보이는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간다.


그에 눈치를 챈 온이는 벌써부터 눈꼬리가 올라가며 살랑거리는 꼬리의 속도와 힘이 달라진다.




"어허... 너 또 건들기만 해 봐.. 가만히 안 둔다.. "라는 얼굴로 흑미를 올려다보고 있는 온이..

다행스럽게도 온이가 거의 4년은 형이기 때문에 몸짓이나 힘이 온이에 비해 매우 쎄다. 물론 스피드는 흑미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흑미를 제압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여기서 다행스럽다고 하는 이유는 누가 봐도 얌전한 귀염둥이 온이이기에 똥꼬 발랄한 흑미를 제압만 하지 상처를 입히지 않기 때문이다. 온이의 평소 성격을 보면 배려심도 있고, 양보도 잘한다. 그러니 자신이 먹던 사료를 흑미가 다 먹어 치워도 크게 화를 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속으로는 쌓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흑미는 온이를 건들기 시작한다. 스트릿출신인 흑미는 싸우는 법도 남다르다. 먼저 꼬리를 살짝 건들며 온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다가 온이가 고개를 들면 목부분으로 달려든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이를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와락...

온이가 제일 싫어하는 방법이다. 이젠 알 법도 한데 흑미는 절대 빼지 않는다. 꼭 껴안고 목에 얼굴을 박는다. 깨무는 건지 어쩐 건지.. 온이는 처음에는 그저 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거나 하악질로 위협을 하지만 흑미의 그 큰 귀는 까딱도 하지 않는다. 온이의 반응이 그저 재미있을 뿐이다.



결국은 한 대씩 쥐어박으며 그야말로 이 구역의 일인자를 가리는 듯한 싸움을 한다. 처음에는 얌전한 온이가 당하기만 할까 봐 겁이 나서 흑미의 손톱을 다 깎아주고, 다른 방에 분리를 해 두기도 하고 하면서 둘 사이를 중재해 주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없을 때 혹시 또 이런 상황이 된다면 흑미든 온이든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


그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자주 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양이 두 마리는 자녀 두 명이랑 같아서 그들이 서로가 이해를 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흑미에 비해 팔다리도 두꺼운 온이는 흑미에게 손톱을 세우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동생임을 아는 것 같다.


문득 아주 어릴 적 나도 동생과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나도 동생과 4살 차이로 동생을 싫어하지는 않았자 미나 귀찮아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성격이 많이 달랐는데, 나는 친구들을 많이 만드는 편은 아니었기에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지 않는 타입이었고, 동생은 지금도 가족보다 자신의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때때로 그런 나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몰라서 친구에 둘러싸여 있는 동생이 질투가 났고, 또 동생이 내 친구들 사이에 끼려고 하면 귀찮아서 짜증을 부렸다.


온이도 그런 걸까..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즐기는 편이다. 혼자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하거나.. 이렇게 글로 생각을 옮기거나...


생각해 보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힘이 나고, 어떻게 하면 되려 힘을 쓰는지 자신을 알아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바깥에 있는 것들을 배우고 습득하고 받아들이려고만 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이리도 치열하게 싸우는 흑미와 온이도 어떻게 하면 서로 공존하며 서로 좋아하는 대로 시간과 장소를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파이트로 대화 나누는 것은 아닐까..


이 아이들은 늘 이렇게 맹렬하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녁 무렵 이 시간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아이, 흑미는 이불 위에,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 온이는 피아노 위에 길게 누워있다.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이 두 고양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귀찮게 하면 과감히 손을 들어 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그루밍하며 애정표현을 한다. 어찌 보면 사람인 나보다 표현력이 좋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싸우는 것은 옳지 않지만, 상대가 싫어할 만한 것, 상대가 귀찮아할 만한 것은 서로 피해 가며 원하는 것을 서로 공유하며 그렇게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트러블 없이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싸우겠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 즐겁게 뛰어다니는 시간들도 계속 쌓여나갈 것이다. 그러한 시간들은 이 아이들에게 묘생을 심심하게 살지 않았다는 작은 추억거리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5년 후 10년 후 15년 후 이들과 함께하면서 이 날을 추억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을 것 같다.


쑥쑥 자라라..

싸우면서 다치지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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