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던져둔 미래가 죽어 장례식에 참석했다. 사인은 아사였다. 미래도 밥을 먹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주식은 꿈이라고 했다. 대체 얼마나 꿈을 꾸지 않았길래 미래가 죽은 거냐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조문객은 과거, 현재, 나 셋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오열했다. 나는 슬프지 않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미래도 없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현재에게 물었다. 현재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젊다며, 기회가 많다며 방관한 네 잘못이 크다고. 네 것을 네 것이 아닌 척 외면한 결과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늘 현재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끈질긴 과거에 붙들려 왔다. 미래를 돌볼 틈이 없었다. 미래 따위 내 알바 아니었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는 필요 없었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나는 나를 미워한 과거를 지우고 싶었다.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현재와 결별하고 싶었다. 나는 나와 세상에서 가장 먼 사이였다. 내가 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래가 많이 괴로워했다며 현재가 말해주었다.
현재에게 너는 뭐를 먹고 사냐고 물었다. 살아 숨 쉬는 일상, 그거 하나면 된다고 했다. 이런 일상도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중얼거리는데 현재가 말했다. 넌 항상 미래가 없는 사람처럼 살았으니 따지고 보면 달라진 게 없다고. 달라진 게 없다니. 미래는 죽으면서 희망도 데리고 갔는데. 슬퍼졌다. 이제 와서 꿈을 꾼다 한들, 죽은 미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재, 이런 일상이라니, 멀리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은 데 갈 곳이 없어서 눈물이 나왔다.
엉엉 울면서 걷다가 앞을 못 보고 벽에 머리를 박았다. 벽을 세게 차면서 화풀이했다. 벽이 무너졌다. 이렇게 쉽게 내려앉는 벽이라니. 너도 참 쓸모가 없구나. 벽 너머에는 문이 있었다. 살짝 열린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봤다. 내가 있다. 맹렬하게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글을 주야장천 쓰고 있다. 하는 일은 책 읽고, 영화 보고, 글 쓰는 게 전부다. 나는 ‘문 안의 나’에게 다가가 뒤통수를 친다. 정신 차려! 한가하게 글 쓰고 있을 때가 아니야! 뭐 해서 돈 벌 거야! ‘문 안의 내’가 어찌해야 하냐고 묻는다.
나는 안쪽으로 들어가 또 다른 문을 연다. 또 다른 내가 있다. ‘문 안의 문 안의 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인생 바꾸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문 안의 문 안의 내’가 말한다. 영어를 잘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문 안의 문 안의 내’가 영어책을 던지며 말한다. 죽은 미래도 살릴 수 있는 게 영어야! 글 쓸 시간에 영어공부 하라고! 돈 안 벌 거야? 내가 말한다. 요즘 영어 잘하는 사람 널렸어. 나 하나쯤 영어 못해도 돼. ‘문 안의 문 안의 내’가 말한다. 둘러봐. 다른 문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