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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Aug 07. 2024

STOP

아무 곳이나 붙으라고 빌었지. 아무나 다니는 곳이 아닌 건 알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어, 너무 답답해. 어딘가 가고 싶은데 어딘지는 모르겠고, 목적지가 없는데도 가야 할 곳이 생긴 사람처럼 무작정 버스를 탄다.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곳. 앉아서 가고 싶은데 이미 모든 자리에는 임자가 있네. 기울어지는 몸을 흔들리는 손잡이에 의지하려면 뒤꿈치에 힘을 줘야 해. 온전히 서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마른 가지처럼 뻗어나간 팔은 얼기설기 얽혀 울창한 의지가 되지. 점과 점 사이, 정해진 선 따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그럴싸하게 소모될 수 있을까. 신호를 무시하고 갑자기 뛰어든 트럭. 충돌 직전에 급브레이크가 작동했어. 몇몇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지. 누군가 괜찮냐고 물었는데 누군가 괜찮다고 대답했다. 우리 잠깐 왈츠를 추었다 생각하자. 딛고 미끄러지고 다시 딛는. 소란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평화.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눈에 띄게 느려지는 바퀴.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는 한눈을 팔다가 빈 눈이 된 걸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바깥세상은 훤한데. 꽉 막힌 도로 위, 여기저기서 울리는 경적이 심장을 누르면 자책하지 않을 용기가 없어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다 경로를 이탈한 사람은 방향 없는 자유로 가득해서 출구에서 서성거리기만 할 뿐,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종착지까지 가고 말았어. 오늘도 빗금이 그였네. 펄펄 내리던 비가 펄펄 날리고, 펄펄 날아간 몸이 펄펄 끓어서 손끝에 닿는 모든 것이 녹아내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기분은 혼난 적 없는데도 웅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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