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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아 Aug 06. 2024

글 쓰는 기계가 필요해

주제도 모르고 도끼가 되려고 했었지. 나는 도끼가 되지 못하고, 토끼도 되지 못하고, 독기만 가득해져서 성질만 부린다. 밥이 넘어가냐. 밥이 놀라서 달아난다. 밥상에는 도기만 남아서 어서 채워달라고 조르고 있다. 빈 채로 두지 말고 뭐라도 담아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기를 밟는다. 단단해서 깨지지 않는다. 도기 위에 앉아 아무렇게나 휘갈겨본다.



메마른 글 속에 물 뿌리고 싶다, 생기 넘치도록, 물 안에 물고기 키우고 싶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놀라게 하면 어쩌나 가슴 졸이고 싶다, 파도 소리 듣고 싶다, 철썩, 파도 파도 흘러넘치는 파도 소리, 하얗게 부서지다 까만 흔적 남기면, 빨간 장미 쏟아붓고 싶다, 빠알간 물들임, 열정적인 사람인척 하고 싶다, 장미향을 머금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흐르면, 글을 태우고 싶다, 태워서 없애버리고 다시는 쓰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건방지게 글 쓰겠다고 까불었다, 내가 타버리기 전에 글을 태워야겠다,



‘요즘에도 직접 글을 쓰십니까. 기술은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글 쓰는 기계 하나 장만하시죠.’



후후훗, 맞아. 편하게 살고 싶어. 기계 성능 구경이나 해볼까. 버튼만 누르면 된다고 했으니까...



하얀 옷 입고 풀밭을 걷고 있었지. 강 건너 좋은 일이 있나 봐. 축제가 열리고 있네. 배를 타야 건너갈 수 있는데 배가 없어 풍덩 빠진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입술은 단내를 풍기며 망고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망고를 닮은 전 연인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천상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는 환상을 품어야 현실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이제 그만 올라와. 천사는 도시를 떠난다......


대낮이 기울어 갈 때쯤 일어난다. 엄마의 한숨이 펄떡거린다. 허겁지겁 먹은 열정에 체해서 둘둘 말아 놓은 미래를 못 본 척했더니 저울 위에 올린 잡초는 불합격 판정을 받고......


맹목적으로 달리라고 명령받은 기계처럼 질주해 나가는 사람을 모른 체하고 싶어서 땅만 보며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나비는 설명할 수 없는 날개를 안고 뛰어요......


알림! 기계 안에 사람 있음, 지금 휴식 중.



알림! 사람 있다고, 쉬고 있다고.


알림! 버튼 아무리 눌러도 소용없어, 기다려.


꾹 

알림! 야, 죽을래, 보채지 마.


꾹 

알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알림! I hate people.


알림! 나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여자가 아니고, 마흔이 아니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딸이 아니다. 나는 원래부터 없었다. 나는 아무도 아니다. 나는 나라고 부를 나가 없으므로......


알림! 글 쓰는 게 괴로우면 때려치워. 너 같은 애들 때문에 나는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진짜 쉴 거니까 말 시키지 마. 


알림! sheep shake it, keseki, eighteen, go to hell.



와, 너무 재미있네. 심심할 때마다 갖고 놀아야지. 요즘 기계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다더니 진짜구나. 쉬는 시간도 꼬박꼬박 챙기면서 일하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끝내야겠다. 역시 글은 남이 써준 글이 최고야. 하나 사야겠다. 얼마지? 응? 공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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