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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의 청, 청, 청

할머니가 물려주신 참 좋은 맘

by 별바라기
맛있게 맛있게 우러나기를

5월. 생각지도 않게 일터에서 매실을 얻게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매실을 얻으셨다는 아래층 팀장님은 담글 자신은 없고 담글만한 사람을 모색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또 생각나셨다며 한 포대를 들고 올라 오셔선 선물인지 숙제인지 애매한 매실을 던져주고 가셨다.

이미 과일가게에서 산 매실로 청을 담갔던 나였지만 매실이 탐스럽기도 하고 그냥 두면 버릴 수밖에 없다는 팀장님의 꼬임에 넘어가 매실 자루를 들고 집으로 왔다.


꼭지를 제거하고 밤새 매실의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려 매실과 설탕을 통에다 붓고 이번엔 특별히 인터넷에서 검색한 올리고당도 넣어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매실은 설탕과 꽁냥꽁냥 하며 촉촉하게 녹아가기 시작했고 가끔씩 나무 주걱으로 안부를 전하며 청이 우러나기를 기다려 추석 전 청을 뜨고 나눠드렸더니 팀장님은 괜히 고생만 시켰다며 고마움을 넘어선 미안함을 표현하셨고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잘 마시고 계시다며 여러 번 인사를 전하셨다.




추운 겨울산을 지키고 있던 앙상한 나뭇가지의 작은 이파리에 보슬보슬 봄비가 간질어 주면 산은 하하호호 웃으며 기지개를 켜고, 그 먼 산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른 나무들 사이로 숨바꼭질에 실패한 희끗희끗한 나무들이 보이는데 다들 벚나무일 거라고 추측을 하겠지만 산에 올라보면 대부분 개복숭아나 개살구 나무일 때가 많았다.


산을 평생 일터로 삼고 다니셨던 할머니는 해마다 어느 산 어디메에 어떤 나물이 자라는지, 어떤 열매가 열리는지, 어떤 버섯이 크는지를 기가 막히게 기억하셨고 그 계절을 따라 철에 맞는 갖가지 과일청들을 미리미리 준비하셨다가 빠르면 그해에 늦으면 이듬해에, 가족들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부지런히 항아리들과 술 담그는 병들에 채우셨고 우리 집 광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여름의 시작을 알리던 6월 중순의 어느 날 할머니는 산에서 개복숭아를 한 포대 따오셨다.

22년 6월의 복숭아

"할머이 개복상 엄청 마이 땄네"


"많나?"


"응 엄청. 이걸 깔끄러워 우뜨케 다 땄대?"


"복상낭기 키 빼기가 을매나 큰지 손이 자리 가야지, 꼬깨이로 가지를 잡아 끄서 간신히 땄대이"


"그라믄 쫌만 따오지 이래 마이 땄대?"


"느 약할라고 마이 땄지"


"나 이제 안 아파. 괜자네"


"괜잔킨 아침마다 쿨룩대믄서"


"쿨룩거린 건 할아부지였지 나 아냐"


내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자 할머니는


"마한 것"


더 이상 나의 말대꾸에 대답할 뭔가가 떠오르시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할머니는 큰 다라에 물을 가득 받고 산에서 따온 개복숭아를 포대를 거꾸로 부으면 안에 있던 개복숭아들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미끄럼을 타 듯 다라로 빠졌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면 물 위로 동동 뜨는 복숭아들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벌레가 뚫은 흔적이 있거나 실하지 않은 아이들이기에 할머니는 신중하게 녀석들을 골라 내신 뒤 빨래를 치대듯 복숭아들을 계속해서 씻으셨다.


"할머이 고만 씻어도 되지 않아? 왜 자꾸 씻어"


"복상 터라구하고 꼭다리 띨라고"


할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개복숭아 씻는 작업을 반복하셨고 다시 깨끗이 빤 자루에 복숭아를 담으셨다.


"야야 광에 드가 저울 갖고 온나"


"할머이 저울은 왜?"


"개복상이 을매나 되는지 달아 볼라고"


할머니는 지팡이 같이 생긴 나무 저울 구석에 달린 쇠고리에 포대를 푹 찔러 걸고 추를 달아 무게를 다셨고 여러 번 나누어 달아 본 복숭아 무게 합산을 나에게 시키시곤 복숭아를 큰 소쿠리에 담고 혹 벌레가 기어 나올지 모른다며 계속 뒤적이며 살펴보셨다.


목욕을 다 끝낸 개복숭아들은 물기가 빠질 때까지 소쿠리에 담겨 장독대 위에서 일광욕을 했고

깊디깊은 항아리에 개복숭아랑 설탕을 바가지로 푹푹 퍼 교대로 담으셨다.


"포리가 드가믄 안 되니 잘 지키본나"


언제나 들어도 웃긴 할머니의 '포리' 발음. 할머니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파리를 '포리'라고 하셨는데 할머니에게 중독된 나도 가끔씩 '포리'라고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었다. 나에게 항아리 입구를 잘 지키라고 당부하신 할머니는 아침부터 빨랫줄에서 눈이 부시게 널려 있던 하얀 광목천을 걷어 항아리 입구를 막고 노끈으로 동동 동여 두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이따금씩 설탕이 잘 녹고 있는지, 개복숭아가 잘 쪼그라들고 있는지를 두부 만들 때 쓰는 긴 나무주걱으로 휘저어 주셨고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니 술을 담글 때 쓰던 커다란 유리병에 갈색빛을 내는 개복숭아 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은 평소 폐가 좋지 않아 기침을 많이 하시는 옆집 할아버지와 앞이 보이지 않는 유씨 아저씨네로, 할머니의 절친인 한씨네 할머니네로, 친정에 들른 고모들도 한 병씩 챙겨갔고 아침마다 집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재채기를 하며 코를 한 사발씩 먹는 내 목구멍으로도 넘어갔는데 나는 효염도 모르고 맛도 모르고 그냥 잠결에 받아 마셨다.


개복숭아 청을 담그기보다 이르게 까맣게 오디가 익어가면 할머니는 오디즙도 담그셨는데 오디는 설탕하고 버무려져 유리병에서 예쁜 보라색을 내가며 쪼그라들었다. 오디즙은 여름에 식구들이 더위를 먹었을 때 약으로, 그리고 할머니의 무릎을 덜 아프게 하는 비상약이기도 했는데 특별히 맛이 있지도 않고 약간의 비릿한 약 냄새가 났는데 나는 소주잔에다 오디즙을 드시며 웃는 할머니가 웃겨서 그때마다 할머니를 '오디 곰지'라고 놀렸었다. 그리고 언젠가 도깨비란 드라마에 아주 고약한 오래된 귀신 박중헌이란 간신이 나왔는데 그 아저씨의 혓바닥을 보고 할머니가 오디즙을 드시고 웃으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나는 절대 웃으면 안 되는 그 무서운 시점에 "오디 곰지다"라고 혼자만 아는 얘기를 하며 낄낄거리고 웃다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다며 식구들에게 눈총을 맞았었다.




올해도 아파트 화단에 파란 친구들이 종알종알 달려 사진을 찍어 보았다.

6월의 푸른 꽃사과

우리 동네선 이렇게 달리는 쪼맨한 사과를 새끼 사과, 애기사과라고 불렀는데 고등학생 때 학교 화단에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고 친구들이 '꽃사과'라고 부르기에 모양새만큼이나 이름도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가을이 되면 이 꽃사과로도 청을 담그셨는데 담그는 법은 개복숭아나 매실하고 았다. 그리고 이 꽃 사과청도 옆집 할아버지에게 전달되었는데 할머니는 꽃 사과청을 먹으면 속병도 낫고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작년 가을. 팀장님은 약을 한 번도 치지 않은 유기농 꽃사과를 강조하시면서 한 자루를 들고 오셨다. 팀장님이 한 그루 심은 것이 첫 과실을 맺었다며 무농약을 엄청나게 강조하시며 자랑을 하시기에 들여다보니 빨갛고 노란 과실이 실해 보이기에 청을 담가도 좋을 것 같기에 얻어와 세척을 하려고 큰 다라에 담궈보니 물에 가라앉을 것 같이 딴딴해 보이던 꽃사과들이 생각보다 둥둥 떴다. '슬마'하는 마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입안에 맴도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가장 큰 놈으로 반을 쪼개 보니 거참 어찌나 야무지게 갉아먹었는지 졸지에 본인을 보호하고 있던 동그란 집이 반으로 쪼개져 퍽 당황한 통통한 애벌레가 꿈틀 하면서 포리 똥 같은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심결에 벌레와 눈이 마주친 나는 그제야 맨둥맨둥 털도 없이 꿀렁꿀렁하는 몸매로 사과를 탈출하려는 애벌레의 모습에 "으허어어" 괴상한 소리와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작년 꽃 사과청 담근 사진

가까이에 병아리라도 있으면 그 입에 넣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내 곁엔 애벌레 식탐왕은 없고 버릴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던 나는 농사를 짓고 손수 수확하신 성의를 생각하여 모든 사과를 반으로 쪼개 씨를 제거하고 멀쩡한 사과만 담았는데 챙긴 것이 버린 것의 십 분의 일 정도 되었을까?

다행히도 꿀렁거리는 애벌레와 싸우며 담근 사과청은 설탕이 녹을수록 점점 더 향긋한 냄새를 내며 진액을 뽑아내 주었고 6개월 동안 발효를 시켜 1년 이상 숙성을 시켜야 그 진가가 나타난다고 하여 보관 중에 있었는데 숙성기간이 다 되면 가족들의 피로회복제로 마실게 할 계획이다.







2022년 9월 추석날 만난 꽃사과

할머니 등 너머로 배운 갖가지 잡기들은 나의 삶에 꽤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체계적이지도 않고 과학적하고도 좀 먼 감이 있지만 우선 뭐든 일에 겁을 내지 않는 것이 큰 장점이고, 두 번째는 뭐든 활용하려 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물론 마구잡이로 움켜쥐는 욕심이 아닐까 나 스스로를 의심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가 생겼을 때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용하려 하고 또 나누려고 하는 점은 할머니가 물려주신 무형 자산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일. 어쩌면 그것이 할머니의 마음이요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따듯하고도 포근한 참 좋은 맘인 것 같다. 이 가을 할머니의 맘을 나도 꼭 닮았으면,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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