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둘째의 이마를 짚어보고 열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손을 당겨와 손가락의 지압점을 눌러주었다.
"엄마 이 지압이 효과가 있긴 해?"
"당근. 증조할머니가 해주셨던 처방법이야. 그리고 할머니는 처방약으로 국화차도 주셨었어"
"국화차? 우리가 아는 그 국화?"
"응 할머니 집에 가면 주변에 흔하게 보는 그 노란 국화"
"엄마 얘기 들어보면 외갓집 주변의 모든 풀들은 못 먹는 게 없는 거 같아. 좀 수상해"
"너는 쑥이랑 마늘을 좀 더 먹어봐. 아주 큰 도움이 될 겨"
손에 좀 더 힘을 주며 지압을 하자 아이가 손을 빼며 눈을 흘겼다.
"할머이 나 머리 아픈 거 같애"
"마한 것 우째 또 머리가 아프나?"
"몰라 자고 일나니 골이 흔들리"
"골이 흔들린다고? 이리와보래이"
할머니는 내 이마를 작은 손으로 짚어 보신 뒤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꾹꾹 눌러 주셨다.
"여 잘 봐 뒀다가 니도 꾹꾹 눌러 그라믄 좀 나을 기여"
"할머이는 별거별거 다 아는 거 같애.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
"뭘 어찌 알어 내도 살믄서 알았지"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머리로 학교엘 갔다.
"야야 핵교 댕기 왔나?"
"어 할머이 나 여 있다"
쌓여 있는 낙엽 위로 빼꼼 하고 버섯이 고개를 내미는 가을이 되면 할머니는 하루에 두번도 산에 다녀오셨다. 어른들 말씀으론 버섯이 금새 녹아서라고 하셨는데 송이도 능이도 영지 그리고 다른 잡버섯도 딱 따야할 적기가 있어 딱 요맘 때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끌고 외로움 더하기 무수움을 극복하며 어디메에 어떤 버섯이 났는지를, 며칠 전 보고 오셨던 덜 큰 송이를 따러 기억을 더듬어 산에 다녀오셨다. 그날도 산에
다녀오신 할머니 목소리에 마당으로 나갔다.
"할머이 오늘도 버섯 마이 땄어?"
"그래 마이 땄다. 그리고 또 뭐 따왔나 볼래?"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다래끼 안에 들어 있는 버섯 사이로 가만가만 뭔가를 꺼내셨다.
"엥? 할머이 국화꽃은 왜?"
"니 약할라고"
"내 약?"
"니 골아프댔자네. 이 감국을 빠싹 말리서 차로 마시믄 머리가 시원해진대이"
"에이 할머이 무슨 국화꽃이 약이 된다고. 걍 집에 있는 약 먹을게. 맛도 없을 거 같구먼"
"이잉 누가 약을 맛으로 묵나? 안 아플라 묵지"
동동 국화차
추석 무렵 직장 동료가 한살림에 장을 보러 갔다가 잦은 두통을 달고 있는 내가 생각났다며 국화차를 선물해 줬었다. 나는 큰 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설명서에 있는 대로 꽃잎을 넣고 지켜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생기 있게 살아나는 꽃잎과 우러나는 향기에 상막했던 사무실까지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국화차의 효염을 몸소 체험해 보자며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고 국화차를 맛본 나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길을 통해 마셨던 국화차의 맛을 떠올리면서 그때의 차맛과 지금의 차맛이 다르 다는 것을 알아채곤 맘 한편이 씁쓸해지면서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는 나의 두통을 염려해 주는 동료의 고마움에 이렇게 감동 더하기 호들갑 떨며 호로록호로록 마시지만 그 시절 버섯을 따기에도 바쁜 철, 아픈 다리를 이끌고 관절염으로 마디가 굽은 손가락으로 따서 만들어 주신 할머니의 감국차는 쓰고 맛없다며 투정을 부렸던 마한 내가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체국에서 만난 가을 요정들
지난 금요일.
군 복무 중인 아들 녀석이 보내 달라 부탁한 책을 보내려 우체국에 갔다가 계단에서 환하게 맞아주는 국화꽃들을 만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체국은 국화 화분을 계단에 놓아 가을이 더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었고 낮에 마신 국화차 때문이었을까? 노란 국화를 보니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나서 가슴이 또 울컥해졌다.
똥고집에 말 안 듣는 사고뭉치 손녀딸의 머리 아프다는 말에 일부러 감국이 많이 핀 산으로 가셔서 쥐콩만한 작은 꽃을 한 개 한 개 정성을 들여 한 대접 따오셨던 것도 생각나고, 택배 박스에 무얼 더 채워 보낼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해준비하고 포장을 마치고서도 미련이 남아 박스를 쳐다보던 내 모습과 우체국에 가는 내내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왔다가 화단에서 국화꽃까지 만 난 나는 소포 접수기에 군부대 주소를 입력하다 말고 눈물이 툭 터져 버렸다.
국화차를 마셔서 마음이 정화되었을까? 주책같이 눈물을 다 흘리고. 이것은 누구를 향한 미안함일까? 그리움일까? 고마움일까?
높아진 파란 가을 하늘과 따뜻한 햇살과 딱 좋은 바람을 느끼며, 국화꽃까지 만난 우체국에서 돌아오며나는 살아있음에 새삼 감사하다는 맘이 들었다. 할머니를 떠올리고 기억하면서 그리움만큼 짙어지는 죄송함을 넘어 나에게 점점 더 세겨지는 마음은 고마움과 감사인 것 같다. 할머니를 살게한 그 영양분이었던 자연의 선물들과 가족.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