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개가 양반 아침 해장'이란 속담도 있는귀티 나고 뭔가 있어 보이는 대추는 어릴 적엔 가을날 얼룩 덜룩 익어가며 나의 입안을 달콤하게 해주는 친구였고, 밤 새 은빛 서리를 맞아기운을 잃고 떨어져 마당 구석에 수북하게 떨어진 대추나무 이파리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앙상한 가지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던 빨간 대추알들은사각사각한 식감 대신 툭 하고 바람 빠지는 느낌에 특이한 향이 나긴 했지만 물컹한 누래진 속을 갉아먹는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만난 특별한 대추는 결혼식을 끝내고 폐백상에서 어른들이 던져 주셨던 대추였다. 신혼여행 첫날밤 숙소에 짐을 풀면서 가방속에 욱여 넣었던 찌그러진 복주머니를 꺼내 그 속에 담겨 있는 밤과 대추를 보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이 쪼꼬만치 있는 밤 하고 대추를 어찌해야는지 알아? 오늘 밤에다 먹어야 하는 거야?아님 두고두고 모셔 놓으라는 거야? "
"글쎄..."
결국 나는 여행 내내 대추와 밤이담긴 단내가 풀풀 나는 가방을 끌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남편과 사귀면서 시댁에 인사를 갔을 때 시댁은 배 과수원 집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이십 대 중반이 넘도록 배 과수원을 실물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나름의 상상을 하며 과수원에 들어섰는데 초록색 나무에 황금색을 띤 커다란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초록색 나무엔 회색과 흰색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그 포장 종이는 배나무의 품종을 표시하는 구별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몇 년 뒤 아버님의 친구분은 지역 군수로 당선 되셨고 지역 특색 작물 부활을 건 사업을 펴신다는 소문과 함께 시댁 배밭엔 어느 날 어마 무시하게 큰 굴착기가 들어섰고 엄마 배나무 를 없애고 대신 작은 묘목들이 심어졌는데 그것은 아기 대추나무였다.
우리 아이들의 자라는 속도에 맞춰 아기 대추나무도 쑥쑥 크기 시작했고 열매도 맺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출산했을 무렵 온 동네가 환하게 피어 있던 배꽃의 정취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누르스름 쪼꼬만 대추꽃이 시시하게 보였고 매해 봄이 오기 전 대추나무 전지질을 하셔야 하는 시부모님의 수고를 덜려고 주말마다 시골행을 택한 남편 덕분에 자연스레 동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사실 그당시엔 그상황이 썩 맘에 들진 않았었다.
같은 사다리를 타도 배 수확은 뭔가 상자가 채워지는 기분도 들고 일한 수고가 눈으로도 확연하게 보여 보람도 컸는데 가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대추 이파리 뒤에 꽁꽁 숨어 나와 숨바꼭질을 하는 대추알들은 얄밉기까지 했고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는 순간 가시에 찔리면 그 통증이 어찌나 쎈지 사다리가 휘청할 정도로 깜짝 놀랐는데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알 수 없는 용암 같은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 대추밭에서 제일 젊은 나는 십 리는 튀어나온 주댕이를 들킬세라 묵묵히 대추를 땄고 그나마 높다란 사다리 위에서 느끼는, 이마를 시원하게 해주는 가을바람 덕분에 그 지루한 시간을 이겨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추 수확이 끝이 아니었다. 대추알 사이즈에 따라 선별기를 돌려 박스에 담고 무게를 재고 포장을 하고 그리고 지인들에게 대추 홍보며 대추를 파는 일도 추가 업무였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질 좋고 값이 저렴한 대추를 직장동료들과 이웃들이 많이 찾아 주셨고 나중엔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대추 농사를 그만둔 지 8년이 지난 올해도 지역 대추 축제 무렵이었을까? 대추 파는 사람 아니냐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할머이 뭐해?"
"뭐하긴 대추차 끼릴라 그라지"
"근데 왜 대추를 다 뿌시?"
"이래 배를 가르고 씨를 빼고 끼리믄 국물이 더 잘 나와"
"대추차가 몸에 좋아?"
"그라믄 좋고말고. 느 언니 손발 찬데도 좋고, 니 똥 잘 싸는데도 좋고, 감기도 안 걸리고 내 잠도 잘 오게 하고 무릎도 안 아프게 하지."
"에이 대추차가 뭔 산삼이여"
"산삼보다 낫지. 내말이 거짓뿔인지 아인지 이따 다 끼리믄 무봐라"
빨간 대추
2022년의 어느 가을날.
나는 대추차를 끓이려고 대추를 씻었다.
나의 대추차 레시피는 할머니가 끓이셨던 방법대로 끓이는데 대추를 반으로 쪼개 씨를 꺼내고 파뿌리와 생강을 몇 조각 넣고 오랜 시간 은근한 불로 끓인다. 그러면 차가 얼마나 진하게 우러나는지 끓인 차를 뎁혀 먹는 기간 동안은 현관문을 넘어 엘리베이터 앞 까지 단내가 진동을 하는데 내가 좀 더 풋풋한 엄마였을 때 대추차를 처음 끓이던 날. 물은 진작부터 보글보글 끓다 못해 주전자 뚜껑이 연신 하품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냄새만 요란하고 누런 물만 보이는 상황에 엄청 당황을 했었다. 그런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니 사골이 고와지듯이 푹 끓여져 할머니의 대추차처럼 걸쭉한 대추차를 마주하고 엄청 뿌듯했던 기억이 남아 있고 지금도 그렇게 끓여 마시고 있다.
남편과 나누는 대추차 한 잔
다 끓여진 대추차를 남편과 마시며
"대추가 귀하긴 했나 봐. 제사상에도 올라가고 왕한테도 받치고, 우리 결혼할 때도 밤 하고 던져주셨잖아"
"내가 알기론 폐백에서 밤 하고 대추는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의미일걸. 밤은 딸, 대추는 아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른들을 잘 모시고 경사스러운 날을 축복하는 그런 말이라고 들었던 거 같애. "
"아쉽다. 대추나 밤을 던져 주는 대신 금이나 보석을 던져줬으면 좋았을 텐데"
"혹시 잊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너도 머지않아 시어머니 될 거다."
"헉. 맞네. 그걸 잊고 있었네"
돌아가신 아버님은 당신 아들도 아닌 어린 손자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드신 도장이라며 왕의 옥새같이 멋진 도장을 남겨 주셨는데 손자의 이름을 직접 지으셨으니 더 특별히 제작해 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잊혀졌던 도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툭 튀어 나왔다.
큰아이가 고등학생 시절 영어 수행평가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란 주제를 가지고 소감 발표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도장으로 발표를 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소재도 특이했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과 그리움을 적절한 단어로 잘 표현했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아이를 울컥하게 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얘기를 하면서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 부부도 함께 울컥해 지면서 그간 잊고 있던 아들의 도장을 꺼내 다시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알았다. 남편이 내심 아들의 도장을 부러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린 손자에게만 도장을 선물한 할아버지 그리고 십 년이 넘도록 아무말 않은 그 할아버지의 아들. 그러니 서운했던 감정을 그 누구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까진 아니지만 좋은 목재로 된 인감 도장을 선물해 주면서 은밀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