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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할머니네 도라지

동장군을 품은 도라지 음식들

by 별바라기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3월의 어느 금요일.

설 이후 주말마다 이어진 행사로 친정 발걸음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여동생 가족이 친정방문의 날계획을 세웠다기에 함께 하기로 했다.


세 시간 남짓 달려 마당에 주차를 하고 현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향이 마중을 나와 주었고 거실 문을 여니 쓰나미급 향이 덮치듯 반겨 주었는데 그것은 도라지 향이었다.


"으아 이게 다 뭐대? 도라지 장사할라고?"


나의 놀람에 동생은 웃고 엄마가 대답하셨다.


"그래 도라지 장사할라 그런다."


"아이고야. 팔러 가기 전에 까다가 골병 들겄네"


엄마는 분명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들으시고 밭에서 도라지를 캐 오셨으리라. 나는 짐을 풀자마자 손을 씻고 엄마와 동생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손댈 것도 없어.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어여 쉬"


"힘들긴. 운전은 이 기사가 했는데. 근데 엄마 더 크게 냅두지 왜 다 캤대?"


"집에 들어오다가 도로포장한다고 줄 쳐 논거 못 봤나? 우리 땅이 도로로 많이 들어가게 됐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캤지"


"아~ 도로가 도라지 밭을 꿀꺽한다고?"




향긋한 봄 도라지

우리 집에서 친정을 오려면 행정구역상 경기도와 충북, 강원도를 번갈아 지나야 도착하는 고약한 지점에 친정집이 있다. 나는 구간구간 도로포장을 하느라 파헤쳐진 덜덜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지나오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고약한 냄새와 먼지를 뿜으며 신작로 공사를 하던 때가 떠올랐고 그때 대비 구불구불한 산골길이 곧게 펴지는 것에 감탄하며 중앙선도 없는 이 도로가 한 뼘이라도 넓어만 진다면야 다음번엔 나도 운전을 해서 이 길을 씽씽 달릴 수 있을 거 같다며 자신감을 내뿜었더니 남편은 본인은 태우지 말고 꼭 혼자서만 오라는 농담(농도 짙은 진담) 했다.


그런데 도착 십분 남짓 남겨 놓고 웃지 못할 일이 생겼는데 운전은 이기사가 열심히 했건만 조수석에 앉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 브레이크를 함께 밟으며 온 탓에 오른쪽 종아리에 찍찍 쥐가 방문했고 고통의 고함 소리는 가로등도 없는 조용한 산골길에 쩌렁쩌렁 울렸다.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려 쥐를 잡아준 남편과 내가 지른 고통 소리에 그나마 잠은 깨고 마당에 들어섰는데 아주 쪼꼼 남아있던 잠까지 번쩍 달아난 건 거실이 꽉 찰 큰 다라 한가득 수북하게 쌓여 있던 도라지 부대였다.




안 매운 도라지 볶음 ㅋㅋ

"엄마 도라지 어떻게 해 먹을 거야?"


"니들 먹고 싶은 대로 해 먹지"


"나는 하얗게 볶은 거 좋아"


"나도"


"그럼 아침엔 하얗게 볶아 먹고 초에 담근 건 무쳐서 가지고 가든지"


손맛 좋은 동생이 맛있게 볶은 아침 밥상에 오른 도라지 볶음은 깊은 밤이 되도록 엄마와 여동생과 우리 부부가 잠을 좇으며 웃음 양념을 더해 손질한 덕분인지 꽤나 맛이 훌륭했다.




나의 첫 담금 도라지 효소

"할머이 뭐 해?"


"뭐 하긴 약 맹글지"


"무슨 약?"


"도래지 약"


"이건 어디 아플 때 먹을 건데?"


"배 아플 때도 먹고 기침할 때도 먹고 골 아플 때도 묵지"


"할머이가 맹그는 약은 다 이상해"


"뭐시가 이상하나?"


"매번 아픈 데가 다 똑같자네"


"이잉. 내 말이 거짓뿔인가 참말인가 낭중에 먹어 보믄 알지"




아삭아삭 새콤달콤 도라지 무침

"니는 옆에서 양념을 붜 주던지 담을 통을 들어주던지 하지 뭔 사진만 계속 찍어대나?"


"엄마 눈으로 먹고 입으로도 먹는 거지. 언니야 사진보다 레시피를 기억하게 동영상을 찍는 게 낫지 않아?"


잔 심부름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진만 찍고 있는 내게 엄마가 한소리 하시자 눈치 백 단 동생이 거들어 주었다.


"한 번 보면 딱 기억을 해야지. 그래 눈썰미가 없어가지고 우째 살림을 하나?"


"엄마, 내가 요리사 할 것도 아니고 암만 봐도 어차피 엄마 손맛은 흉내도 못 낼 텐데 뭐 하러 골치 아프게 고민을 해. 나는 앞으로도 도라지는 열심히 깔 테니까 엄마가 계속 무쳐줘"


"저런 저런. 배워서 이서방도 먹이고 애들 멕일 궁리를 해야지 한다는 소리가"


"엄마, 나는 어차피 매워서 많이 먹지도 못해. 걍 하얗게만 볶아 먹을 거니 안 배워도 되지 않을까?"


엄마는 비실비실 웃으며 말대답을 하는 나를 한 번, 거실에 있는 남편 이서방의 눈치를 한 번 보시더니 소리 없이 나무라는 입모양으로 뭐라 뭐라 하시면서 내게 강력한 레이저 눈총을 발사하셨다.




엄마가 챙겨주신 도라지를 챙겨 와 효소를 만들어 보려고 설탕을 부어 놓았다. 가는 뿌리는 먹고 굵은 뿌리로 효소를 내야 는데 방법이 바뀐 거 같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묵묵히 밭을 지키고 있던 뚝심 있는 도라지 약효가 우러나길 바라며 6개월 뒤에 가족들도 먹고 필요한 분들에게도 나눠주게 잘 우러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곧 곧게 펴질 도로를 기대하며 아버지가 경운기 몰고 다니시는 그 길이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해지셨으면 좋겠다.




여름에 보라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져 나에게 풍선 터트리던 재미를 선사해 주던 집 앞의 풍선 놀이터는 이제 사라졌지만 다시 예쁘게 풍선 꽃을 피울 새로운 도라지 밭을 기대해 보며 올해도 야나할머니네 집 뒷산엔 딱따구리가 힘차게 나무를 쪼는 소리를 내며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곧 제비도 소쩍새도 뻐꾸기도 찾아오겠지? 올해 마당의 주목 나무엔 어떤 새들이 둥지를 틀까? 새 입주 가족들도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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