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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필 Nov 07. 2024

임신 중반의 고난: 태동

episode 11.

임신 25주가 지나가면서 배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태동을 느끼는 것은 임신 기간 중 가장 특별하면서도 복잡한 경험이었다. 그동안의 걱정, 슬픔, 분노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대신 설렘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아기가 내 배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그 순간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아기의 작은 움직임은 마치 생명의 신비로움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처음 느꼈던 부드러운 촉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강렬해졌고, 아기가 활발하게 움직일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 작은 생명이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25주가 넘는 임신의 여정을 오면서 나는 너무나도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임신 중반, 태동을 처음 느끼는 순간 정말 특별한 감정들이 다가왔고 그 경험들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벼운 떨림이나 거품이 터지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 태동을 느꼈을 때, 내 안에 작은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함이었다.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며,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태동을 느낄 때마다 아기의 존재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기가 내 몸 안에서 자라는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의 신비로움을 일깨워 주며,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과 경이로움은 태동이 가져오는 여러 감정의 시작일 뿐이다.

불안과 기쁨이 공존하는 태동

태동은 단순한 기쁨만을 동반하지 않았다. 아기가 움직일 때 느끼는 기쁨과 함께, 불안과 두려움이 뒤따르기도 했다. 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아기가 건강하다는 신호로 여겨지지만, 반대로 태동이 적거나 느껴지지 않는 날에는 큰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기가 잘 자라고 있을까?”라는 걱정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그로 인해 나는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태동이 느껴지는 순간과 느껴지지 않는 순간의 감정의 기복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태동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불안한 마음이 커졌고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자책이 내 마음속에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태동이라는 것은 ‘엄마’라는 역할을 내게 더욱 실감 나게 해주는 순간이며, 이는 나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기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기쁨이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압박했다. 과연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며, 나의 자아를 되돌아보게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나는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태동을 느끼고,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그 환상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엄마’라는 역할이 단순히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책임을 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태동이 강하게 느껴질 임신 중반은 신체적인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아기가 성장함에 따라 배가 불러오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함이 생겼다. 특히 자궁이 늘어나면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아기가 움직이는 느낌이 신체적으로는 즐거운 경험이지만, 그로 인해 느끼는 불편함은 또 다른 고난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동은 나에게 중요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태동을 느끼며 아기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움직임에 반응하는 과정은 나에게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나를 엄마로서 성장하게 만들었고, 앞으로의 육아 여정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임신 중반까지 앞으로 나를 버리는 삶이 되어 내가 사라지는 세상이 된다는 압박감에 너무나도 큰 슬픔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임신을 잘한 것이 맞는 건지 너무나도 불안했다. 하지만 태동을 겪고 그동안 나의 인생이 '나'만의 삶에서 '너와 나'의 삶으로 변형되어 가고 있는 것뿐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너와 나'의 삶으로 한 발짝 다가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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