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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24. 2023

무형자산을 사유재산으로 확보하라 #2

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지식재산권 논의에 앞선 세 가지 전제

♬ 무형자산을 사유재산으로 확보하라   ~#6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1)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2)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3)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4)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소개글 및 상세 목차 더보기


-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부의 양극화처럼 시스템의 결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축적된 부를 더 큰 부로 일궈내는 것은 성공한 자의 몫이었다. 
- 많은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양질의 생산 수단을 확보하려 하거나 기업이 보유한 각종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골몰했지만, 동시에 기업 내의 노동자나 고객에게서도 착취 가능한 부분을 찾아내려 했다.
- 만들기만 해서 내다 놓으면 잘 팔리던 시대는 이미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예를 들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고용 불안을 통하여 통제한다거나, 노조를 분쇄하려 한다거나, 평생직장을 없애는 쉬운 해고를 추세로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재고하려고 했다. 과거에는 가난한 피식민지인을 착취하거나 낮은 계급의 노동자를 부렸지만, 점점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욕구를 건드린다. 


“기업과 싸우려다 골로 간다우. 그냥 숙이는 게 인생 편하지.”






즉 갑의 질서 안에 들어오기를 합의하는 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식으로 노동자 연대의 분열을 꾀했다. 심지어 인건비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었다. 

경쟁력 강화와 생존율 향상을 위해 기업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기업의 주장으로는 노동자에게 비대하게 둘러쳐진 보호막을 거두는 일이었다. 그 보호막 탓에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결국 노동자와 국가 전반에 피해를 본다는 식의 논리를 펴기도 했다. 기업이 경영하기 편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부도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많은 체제에서 그 체제의 기득권에 유리하도록 점진적으로 판을 짠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차츰 패배가 일상화되면서 무기력해진다. 그게 싫어 자신도 기득권과 함께 성공을 누리려면 그 규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 합의하고 만다.

노동시장은 유연화되었다지만, 기업 입장에선 노동에 관한 권리 중 일부를 기업에 유리하게 귀속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위한 노력을 했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시점에 이르면 기득권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반 여건을 마련한다. 우리나라에선 개천에서 용 났다고 일컬어지는 엘리트층이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그 뒤로는 자기 세력이 안정적으로 그 유산을 물려받도록 노력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모든 체계의 체질을 기득권 친화적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그건 그냥 사회의 생리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선 거대 기업이 사회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을 중심으로 부의 양극화는 심화된다.


“부유층은 놀아도 되지만, 노동자층은 놀 수가 없어요.”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부의 양극화처럼 시스템의 결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축적된 부를 더 큰 부로 일궈내는 것은 성공한 자의 몫이었다. 그들은 그걸 너무 잘했고, 대개 사회의 승리자, 기득권이 되었다. 그건 사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 정도만 더 심해졌을 뿐 대체로 일관된 면이 있다. 


과거에는 그저 놀랄 정도였고 부러울 정도였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져 이제는 현대판 귀족과 평민이라 불러도 무방한 수준이 되었다는 정도가 다르다면 달랐다. 시스템의 균열과 부작용이 오랜 시간 꾸준히 축적된 결과물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시스템이라면, 과연 그 체제를 이길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한 경험이 있기에 여전히 시민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만, 오래도록 부패하고 독재로 억눌린 국가의 시민이 그 나라의 미래에 부정적이듯이.

21세기인 지금 시대엔 자본주의 체제 바깥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자본주의적 법칙은 내면화되었다. 공산주의라는 대안 체제마저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비교 대상마저 없었다.


내 상상력은 암담해졌소.






많은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양질의 생산 수단을 확보하려 하거나 기업이 보유한 각종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에 골몰했지만, 동시에 기업 내의 노동자나 고객에게서도 착취 가능한 부분을 찾아내려 했다.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수준에서 은밀하게, 때로는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착취를 감행했다. 


예를 들어 충성고객을 만들려는 시도는 단기 이익을 위한 착취의 성격을 띠면서도, 기업의 장기적인 가능성을 비축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노동자를 쥐어짜려는 시도가 시작될 즈음에는 생산에 주로 집중하던 특징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서서히, 파는 것도 중요해졌다.  


만들기만 해서 내다 놓으면 잘 팔리던 시대는 이미 전설처럼 전해질 뿐이었다. 그런 게 대공황을 통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건을 사줄 소비 여력이 없는 상태로, 계속 물건이 생산되다가 기업이 도산해 버리는 시대였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대공황 전후로,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시의 호황도 누렸다. 1950년대에도 냉전 시기에 자유주의 진영의 맹주로 호황을 누렸다. 전쟁을 겪으면서 유럽은 폐허였고, 미국엔 여전히 자본과 기술과 인재가 있었다. 다 파괴된 자리에서 자본주의는 또다시 일어섰다. 

그런 시절에는 기업으로서도 호기를 부려도 괜찮았다. 시장 확보를 위해 과감히 낭비적 투자도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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