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고 싶은 순간>

by 스타맨

<축하받고싶은 순간>

그 날은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던 8월 초순의 토요일이었다.내가 정확히 그 날을 기억하는 건,드디어 목표하던 몸무게를 달성한 날이기 때문이다.기념할 만한 날이었다.아침에 저울 위에 올라가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입을 틀어막은채 나지막이 감격의 환호성을 올렸다.



꺄- 아-.

37.2

키 164에 37.2kg.


내 인생에서 절정의 기량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기쁨의 순간.운동선수라면 금메달따고 환희의 눈물을 뚝뚝 흘릴만큼 축하받고 싶은 그런 순간.사랑받을 준비가 된 순간.


강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이 날만큼은 산책시간이 아님에도 왠지 바깥세상이 궁금했다.검은모자는 쓴 채였지만 늘 입던 검정 트레이닝복 대신 베이지색 바람막이를 걸쳤다.한낮임에도 어두침침한 계단을 내려가 빌라의 정문을 열자 옅은 비냄새가 났다.아침에 잠시 소나기가 퍼부은 후 해가 숨어서인지,견딜만한 더위였다.문 옆엔 터질 듯이 꽉찬 쓰레기봉투 서너개가 비에 젖은채 나뒹굴고 있었다.


토요일답게 다른때보단 조금 북적거리는 공기가 날 설레게 했을까,남들 다 누리는 비슷한 수준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에 들떠서였을까.

나는 동네 사람들이 듬성 듬성 오르내리는 내리막길을 아무렇지 않은척 걸어 내려갔는데,횡단보도 앞에 서자 갑자기 길건너 활기에 차있는 맥도날드의 풍경속으로 빨려 들어가 햄버거를 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지금이라면,칼로리 폭탄을 맞은들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코를 뚫고 장까지 폭주할 기세로 밀려오는 기름진 고기 냄새,그 매혹적인 냄새를 원없이 맡고싶었다.마침내 입가에 흘러내리는 소스를 혀로 핥으며 두꺼운 패티를 씹고싶었다.검은 초콜렛빛을 띤,겸허히 인간의 위장에 도달한 준비를 마친 단백질덩어리 그 자체를.

난 생각했다.‘난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 길로 난 뭔가에 홀린 듯 맥도날드 문을 열어버렸다.

밖에선 생각에 사로잡혀 눈여겨 보지 못했는데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를 쫓는 시선의 주인은 바로 A였다.

A는 검정 반팔 티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늘 신는듯한 검정색 컨버스차림이었다.A가 날 알아보는게 분명했다.

‘밤마다 맥도날드 창밖에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같이 어둡고 볼품없는 여자...’라고 그의 뇌에 각인돼있을게 분명하다.


문득 정신을 차린 난 곧장 주문대로 직진했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5화<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