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이 편지가 닿으면 좋겠습니다.

by 아무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 삶을 전면으로 수정하고 싶어질 때 말입니다. 이 현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더듬어 가다 보면 너무 오래전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두 지우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그러면 나는 사라지고 없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니까요. 과거는 박제되어 나를 따라오고 있을 뿐, 현실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들어가 깊은 우울과 지독한 고독을 마주하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찮습니다.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숱한 일과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몇몇의 사람들 앞에서 나의 하찮음과 무용함을 느낍니다. 하루의 그 작은 점은 아마도 며칠의 나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극복이 아닌 체념을 하게 만들겠죠. 제가 너무 나약한가요?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니 부디,


누가 나의 손을 잡아주시길!

이 약하고 하찮은 손을 힘 있게 잡아 주시길!

나를 강한 팔로 일으켜 세워 주시길!

살고 싶습니다. 진정 살고 싶습니다.

매일 삶 앞에서 두려워 떨어도 나는 오늘도 살고 싶습니다.

살아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나의 손을 잡아주시길!

겁 많은 작은 여인을 알아주시길!

잘 살 수 있다 말해주시길!

모두가 오늘 같은 날을 견디고 일어났다고 외쳐주시길!


나는 여기 바람이 닿지 않는 곳, 깊은 구덩이에서 기다립니다.

그러니, 불러 주시길! 손을 잡아주시길!


명치끝에 걸려있는 가시가 나를 찌릅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았다면 부디 나에게 답장 한번 해 주시길!



웅크리고 보호색을 띠고 있는 것들은 모두 슬프다.

잠잠히, 발견되지 않기를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들

사라졌기를, 사라졌기를

다만 바란 채

바닥보다 더 간절히 엎드리는 것들

-박연준 <웅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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