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의 임무 (1)

단편소설

by Dark Back of Time

단편소설

아키의 임무 (1)



일곱 살 무렵, 나는 지구 중심에 거인이 살고 있을 거라 믿었다. 혼자 그림책이나 보던 내가 언제부터 왜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만물을 당기는 중력이란 게 진짜 있다면 그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상상 속의 거인은 지구의 핵 속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지구 위의 모든 사람을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기느라 무척 바쁠 거라고 믿었다. 그 시절 어린 내게 ‘중력’이란 그 거인이 발휘하는, 보이지 않는 웅장한 마음의 힘이었다.


나의 상상은 날마다 커지고 구체화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늘 거인이 병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다. 거인이 아프면 그가 발휘하는 마음의 힘도 거품처럼 약해질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지구의 모든 사람이 허공으로 둥둥 떠다니게 되겠지. 당연히 비상사태가 벌어질 테고.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져 깜깜한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되고, 간신히 낯선 별에 내린다 해도 혼자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할 거라고. 허공에 떠오르게 된다면 나는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손을 놓치면 아빠와 점점 멀어지고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테니까. 우주는 끝없이 넓고 아주 어둡기에 한 번 멀어진 사람들은 영영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 당시, 나는 말을 못 하는 병에 걸려 있었다. 당연히 친구도 없었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늘 혼자였다. 리본이 달린 노란 가방이 마음에 들었던 유치원도 한 달쯤 가다 말았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본 아빠가 결국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일곱 살에는 이미 수준 높은 독서가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언니들이 보는 교과서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의 선물은 언제나 책이었는데, 유독 과학 책이 많았다. 지구와 중력에 대한 설명도 그런 책 중 하나에서 처음 읽었다.


말을 못 하는 대신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나 자신과 대화하곤 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중력은 신기해. 하지만 이 책의 설명은 만족스럽지 못한 구석이 많아. 여기 적힌 중력에 대한 설명은 참 이상하지. 지구는 둥글고 항상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다. 지구 위에 사는 우리들은 우주로 떨어지지 않는다. 중력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뭐랄까, 알맹이가 없는 것 같아. 중력이 왜 우리를 끌어당기는 건지, 지구가 왜 둥근지, 쉬지 않고 팽팽 도는 이유는 또 뭔지 알 수가 없잖아. 나는 나의 이런 궁금증에 제대로 답해주는 책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문득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곤 했다. 아빠는 내게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좋은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좋은 질문을 던져 올바른 답을 얻는 방법은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가 아빠에게 일러주었고, 아빠가 다시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아빠는 내가 입을 열어서 좋은 질문을 많이 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말을 못 하는 병 때문에 아빠에게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력을 만드는 거인은 땅속에서 친구도 없이 어떻게 지내지?


질문은 엉뚱한 상상을 더 키웠다. 그래, 땅속 거인은 세상 사람들을 전부 기억해야 하니 무척 바쁠 거야.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며 이리저리 바라보겠지. 거인이 한순간 방심해서 나를 소홀히 대하면, 그러니까, 잠시라도 나를 잊어버리면 내게 오는 중력이 약해질 거야. 새털같이 가벼운 나는 풍선처럼 하늘로 둥둥 떠올라 날아가게 되겠지. 순식간에 혼자 지구로부터 멀어질 거야. 우주 저 멀리!


그런 좋은 질문은 때때로 나를 두려움에 빠지게도 했다. 그러면 나는 베란다로 달려가 창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아빠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거리는 어두웠다.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입을 벙긋벙긋 벌려 노래했다. 그렇게 울리지 않는 노래를 다섯 곡쯤 부르고 나면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달려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아빠 품에 안겼다. 아빠는 구두도 벗지 못하고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나는 아빠 목에 매달려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잠자리에서도 베개를 단단히 껴안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아빠 책상에 있는 두꺼운 책도 한 권 가져와 가슴 위에 올렸다. 방문과 창문도 꼭 잠갔다. 중력이 약해져 몸이 붕 떠오르는 일이 생겨도, 창문과 천장이 막아주면 집 밖으로 날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나는 잠에 빠져들면서도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밤하늘 별들은 아름답지만, 아무도 없는 별에 가서 혼자 사는 건 싫어. 물론 운이 좋으면 엄마가 있는 별에 가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아직 말을 못 하고, 또 엄마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걸. 엄마도 내가 불쑥 나타나면 무척 난처할 거야. 일곱 살이 된 나를 엄마가 어떻게 알아보겠어.



(다음 주 일요일에 (2) 편이 이어집니다)


이 단편소설은 문예지 문학의 오늘 2016년 가을호에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7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브런치북 [녹색고양이와 판도라의 상자]에서 연재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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