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의 임무 (3)

단편소설

by Dark Back of Time

단편소설


아키의 임무 (3)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왔다. 언제나 씩씩한 할머니는 집안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나를 번쩍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을고. 이 할머니랑 함께 청소하자.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현관문부터 활짝 열었다. 베란다 창문도 열고, 내 방의 창문과 아빠 서재의 창문도 모두 열었다. 안방 문도 열고 장롱문도 열었다. 신발장 문도 열었다. 할머니는 기운이 넘쳤고, 그래서 나도 할머니를 볼 때마다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환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청소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아빠 방의 침대보를 들고, 나는 나의 꽃베개를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가 나란히 먼지를 털었다. 먼지들은 하늘로 훌훌 날아갔다. 할머니는 밀린 빨래도 했다.


세탁기도 할머니가 오면 신나게 춤을 추었다. 낡은 세탁기는 며칠 동안 잠잠하게 지낸 탓에 온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린 듯, 빨래를 담고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몸통을 덜덜 떨었다. 할머니는 아빠와 내가 먹을 반찬도 만들었다. 물김치도 담그고, 간장조림도 만들고, 김치찌개도 끓였다. 할머니 덕분에 주방도 활기에 넘쳤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면, 아빠가 올 때까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할머니의 일이었다.


그토록 다정한 할머니가 언제부터인가 아빠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죽은 사람 못 잊고 살려는 거냐! 다연이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법이야. 엄마가 없으니, 애가 말을 잃어버리지.


할머니가 언성을 높여도 아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처한 얼굴로 거실 바닥만 바라보았다. 아빠의 침묵 때문에 할머니는 더 크게 화를 냈다. 할머니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목청을 높였다.


내가 이 집에 다시는 안 올 테다, 너희 살림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


할머니는 현관문을 소리 나게 닫고 가버렸다. 나는 할머니에게 아키를 소개할 기회가 없어서 서운했다. 아빠는 할머니가 치워버린 엄마 사진을 서랍에서 찾아냈다. 사진 속 엄마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조용히 사진을 서랍 속에다 다시 넣었다. 아빠의 슬픈 모습을 보니 괜히 나마저 할머니가 미워졌다. 나는 다음날 아빠가 출근한 뒤에 그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엄마 사진을 꺼내 보았다. 사진 속에서 엄마는 아빠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하얀 면사포를 쓴 엄마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백 번도 더 본 엄마의 사진이지만 엄마 얼굴은 언제나 낯설었다.


할머니는 다음 주에 다시 또 왔다. 영원히 안 올 것처럼 버럭 화를 내고 갔지만, 수요일 오전이 되면 어김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데, 그런 이유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할머니의 씩씩한 얼굴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할머니 품에 안겼다. 아이고,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심심했을까. 할머니랑 함께 청소하자. 할머니는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그날은 할머니가 아빠가 오기도 전에 먼저 일어났다. 가기 전에 내 작은 두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할미도 네 엄마가 보고 싶구나. 그러곤 나의 엄마가 이제 살아있는 사람을, 그러니까 아빠를 놓아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죽은 엄마가 살아있는 아빠를 아직도 붙잡고 있다는 게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어쩌면 중력과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가 마음의 힘으로 아빠를 잡고 있는 것일지도. 어쨌든 나는 아빠 대신 할머니의 넋두리를 들어야만 했다. 할머니의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게 화내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할머니, 나는 괜찮아. 새엄마가 와도 괜찮아. 정말이야. 할머니도 알겠지만, 난 엄마 얼굴도 기억나질 않는걸. 그리고 나한테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아. 이제 곧 나도 학교에 가야 하는데, 뭐, 그때쯤 엄마가 있었으면 해.


하지만 내 뜻이 할머니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 등을 쓰다듬고 말했다. 다연아, 이 할미를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다 너와 아빠를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할머니는 가방에서 하얀 봉투 한 장을 꺼내어 식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다연아, 이건 할머니가 두고 간 것이라고, 아빠에게 전해 주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내 볼을 두어 번 쓰다듬어주고,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더니 어느새 바람처럼 가버렸다. 나는, 할머니에게 아키를 소개할 기회를 또 놓쳤기에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할머니가 남기고 간 식탁 위의 봉투를 슬그머니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여자 사진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아줌마였다. 사진 뒤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이름을 읽지 않고, 사진을 원래대로 봉투에 넣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날 저녁에 비가 내렸다.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수화기를 귀에 대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연아, 아빠가 일이 생겨 늦을 것 같다. 먼저 밥 먹고 있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수화기를 톡톡, 하고 쳤다. 전화를 끊자 갑자기 몸이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겉옷을 하나 꺼내어 입었지만 열이 나고 자꾸만 추웠다. 나는 아빠의 서랍을 열고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있는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 엄마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환히 웃고 있었지만, 여전히 엄마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 얼굴은 전날처럼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문득, 엄마의 눈이 현아 이모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현아 이모가 보고 싶어졌다. 아빠는 현아 이모를 처제라고 불렀는데, 이모는 자기가 세상에 나가면 다른 별명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모 말에 따르면 ‘검은 망토의 여자’ 또는 ‘집시 여인’이라고 불린다는 거였다. 영어로는 ‘다크 레이디’라고 했는데, 왠지 그게 이모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처럼 느껴졌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하고 미스터리 한 이국적인 느낌. 하지만 이모는 그런 별명들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건 그저 점성술 카페에서 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브랜드 같은 거라고 했다.




다음 주 일요일에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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