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크리스마스 특집(?)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녹색 고양이와 판도라 상자]를 포함하여 2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작품 [녹..고..판]은 오래전에 쓴 습작 소설인데 약간 수정해서 연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좀 심심하거나 어설프고 멋진 한방이 없어 보입니다만, 독자 여러분의 의견도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소통이 그립곤 합니다. 나름대로 젊었던(?) 시절에 두서없이 쓴 소설이라서 부끄럽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표지 그림 <판도라의 상자>는 이탈리아 출생의 영국 화가 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의 1893년 작품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연재하려면 왜 이런 걸 꼭 써서 제출해야 하는지? 머, 막상 쓰고 보니 좋아요 ㅎ)
- 소설을 써도 일상이 심심하신 분들
- 연말&크리스마스에 별로 할 일 없으신 분들
- 이집트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들
연재 : 월 수 금 토
녹색 고양이와 판도라 상자 (1)
미미는 스핑크스라는 이름을 가진 녹색 고양이를 키운다. 나는 음흉한 그놈이 싫다. 커다란 덩치도 징그럽고 스핑크스라는 거창한 이름도 밥맛이다. 게다가 녹색 털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스핑크스도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하다. 볼 때마다 갸르릉 하며 나를 경계한다. 내 손등을 할퀸 적도 있다. 열흘 전 일이다. 그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직장동료들은 그걸 두고 나를 놀리기까지 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에게 반항하다 얻은 상처라며 놀렸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미미를 말하는데, 미미의 콧대가 높아서라기보단 너무 예뻐서 직장동료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물론 이집트 문화를 애호하는 미미의 취향이 크게 반영된 것이다.
미미는 자신이 전생에 이집트 공주였다고 믿는다. 사실 자신은, 비밀이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아낙수나문이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 흔한 여자 이름이지만, 자신이 원조 아낙수나문이고, 초기 이집트 왕조의 공주라는 주장이다. 내가 미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말이 모두 헛소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미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그래서 미미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봐도 미미는 이집트 공주인 게 분명하다. 공주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파라오의 궁전에는 열두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털의 색이 달랐다고 한다. 그런 건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미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미미에 따르면, 총천연색 군단처럼 궁전을 거닐었던 열두 마리의 고양이 가운데 세 마리는 파라오의 것이었고 여덟 마리는 왕비의 것이었다. 오직 녹색 고양이 한 마리만 공주인 자신에게 속했다고. 스핑크스가 바로 그 시절 자신이 손수 키우던 녹색 고양이인데, 자신과 동시에 환생할 정도로 영원히 함께 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핑크스를 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미미가 사랑하는 고양이니까. 나를 무시해도, 손등을 할퀴어도 내가 참아야 한다. 나는 그놈이 스스로 미미를 떠나 주길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놈은 도무지 떠날 기색이 없다. 미미의 비호 아래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린다. 빈 그릇을 핥으며 우유를 달라고 보챌 때는 능청스럽고 뻔뻔스럽다.
그런데, 나는 전생에 뭐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미미가 나의 전생을 물어보지만 대답하지 못한다. 미미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생에서 나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기억에 없다면, 그건 아마 내가 신분이 미천한 존재였기 때문일 거라나. 하긴, 내가 생각해도 전생의 나는 평범한 노예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집트 궁전의 어두운 지하 창고를 떠돌던 불쌍한 쥐였을지도 모른다. 녹색 고양이 스핑크스와 처음 대면했을 때, 얼마나 오싹하던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스핑크스가 나의 천적이라는 직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이 난다. 첫눈에 오싹, 이라니.
(계속) 다음 편은 12/2 월요일 아침에 이어집니다.
* 대문 그림 <판도라의 상자>는 이탈리아 태생의 영국 화가 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의 1893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