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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02. 2023

나도 공무원 때려치울까?남들이 쉽게 하는 말

섣부른 오해, 사실은

22. 7. 22.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도 때려치울까?"

"말은 똑바로 해라. 난 그만둔 거지. 때려치운 적 없다!"


우연히 밤마실에서 만난 전 직장 동료가 또 실없는 소리를 했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얼굴이다.

근처에 살기 때문에 이렇게 느닷없이 마주치는 일이 생긴다.

"행복해 보인다. 잘 살고 있어?"

"나야 잘 있지."


왜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대부분 '때려치웠다'라고 섣불리 오해를 할까?

때려치웠다는 말과 그만뒀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맹세코 작년에 공무원 퇴직을 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때려치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만두게 되면 그만 두면 되는 거지 도대체 때려치우기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입버릇처럼 때려치우겠다는 사람들은 고심 끝에 '그만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둘의 입장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왠지 충동적인 것 같지만 후자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나만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의원면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하는 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절대 때려치운 게 아니라 신중히 고민하고 결정해서 내린 결론인데 왜 마음대로 때려치웠다고 그래?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 말 조심해. 난 홧김에 일 그만둔 것도 아니란 말이야."

라고 일일이 대꾸하기엔 정년을 다 채우지 않고 그만둔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근거 없는 오해가 너무 억셌다.

굳이 내가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해명할 필요도 없고 그 사람들 또한 별 뜻 없이 그냥 나온 말이란 걸 아니까 크게 의미 두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만약 충동적으로 '때려치웠다면' 남편 말마따나 지금쯤 매일 밤마다 후회의 피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절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지금 나는 괜찮다.


"임자야, 잘 지내고 있어?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

"요즘 뭐 하고 살아? 쉬니까 좋아?"

하반기 인사이동이 있어서 그랬을까?

최근에 특이하게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연락을 좀 받았다.

갑자기 이렇게 불쑥 내 일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아직은 무사해."

라는 답장을 성실해 보내줬다.

현재 나는 많은 일에 만족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고, 내 할 일 하면서 그렇게 산다.

하지만, 절대 쉬고 있지는 않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쉴 틈도 없이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게다가 자그마치 지금 초등생 남매가 방학 중이기까지 하다.

월요일과 금요일 수영을 배우러 가는 그 한 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은 온통 나와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말 다했다.


물론 안다.

그들 입장에서 쉰다는 그 말의 의미는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까 쉬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네들에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

하지만 사실 그 중간쯤에 한 부류가 빠졌다.

직장은 안 다니지만 오만가지 하는 일이 많은 사람.

어떤 사람들은 직장 생활만 하지 않고 있으면 한가하고 편하고 여유롭고 무사태평한 줄 착각하는 프로 착각러가 있는 것도 같다.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을 그 착각러가 바로 우리 집 가장이라는 점을 넌지시 알리고 싶다.

설마 남들 직장 가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할 때 속없이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다가 TV나 보면서 별생각 없이 살 거라고 생각할까?

솔직히 그런 시간도 나는 너무 아까워서 함부로 쓰지도 못하겠는데 말이다.


지인들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보니 새삼 내가 빠져나온 세상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을 피눈물 흘리며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후회하기 위해 그만둔 게 아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만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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