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Sep 01. 2022

민원실 공무원, 추석 기차표를 팔러 새벽 첫차를 타다

민원실 면 서기의 남다른 추가 업무

22. 8. 26.

< 사진 임자 = 글임자 >


때는 바야흐로 2013년 추석을 며칠 앞둔 평일이었고, 나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곳에서는 '기차표까지' 민원실에서 팔았다.


보통의 다른 민원실 직원의 사무 분장표에서는 볼 수 없는 '철도업무'(거창하게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단순 업무)까지 추가돼 있었다.

무슨 면사무소에서 기차표까지 파나.

그곳의 일을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민원실 직원들은 맨날 노는 줄 안다.

나도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기 전까지는, 내가 민원실로 발령을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단단히 오해를 했었다.

진심으로 반성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러니까 20년 정도 전쯤에는 어쩌다가 민원실에 가서 등본이라도 뗄라치면 정말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점심 메뉴 고르기'나, 주민 복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에 심각하게 열을 올리며 토론 중이던 직원들을 많이 보았고, 지금처럼 이렇게 민원인을 친절히 대해 주지도 않았다. 사람이 들어가도(어린 학생이라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쳐다도 안 봤다,는 기억이 많다. 요즘 같으면 당장 국민 신문고감이다.


특히 어린 학생 신분일수록 더욱 그런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주민등록증을 처음 만들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아갔을 때만 해도 당시 담당자는 무뚝뚝하다 못해 무성의하기까지 했었다.

요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절히 한다고 해도 뭔가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불친절하다.'라고 불만을 표출하며 단체장부터 찾아대는, 요지경 세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철도 업무는 다른 읍, 면에서는 하지 않는 업무였다.

기차표를 파는 곳은 내가 근무했던 그 면사무소와 군청 민원실 두 군데였다.

"도대체 면사무소에서 왜 기차표까지 파는 거예요?"

불만을 제기한다고 해서 그 업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생뚱맞은 철도 업무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근처에 대학교가 있잖아. 그래서 옛날에 학생들한테 기차표 팔기 시작했어."

이 대답을 듣고 어느 정도 수긍은 갔지만 '애증의 기차표'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먼 당신이기만을 바랐다.

그래, 시골에서 기차표 한 번 사러 나가려면 우리 부모님만 하더라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되는데 면사무소에서 팔면 좋긴 하겠지.

그래, 민원인 입장에선 편하고 좋지.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선 결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기차표 발급기란 것이 걸핏하면 말썽을 일으키고 오작동이 났으며 같이 쓰는 컴퓨터도 2000년도와는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관할인 'OO역'은 면사무소에 위임사무(?)만 줘 놓고 손을 뗐고, 그저 그날 판매한 기차표 금액만 정확히 입금하기를 기다렸으며 민원실 직원의 애로사항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평소에는 어쩌다가 자식들 집에 가시는 어르신들이 표를 끊으러 들르시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한다' 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자주 애용하시는 분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맡겨 두신 것처럼) 표를 끊기도 하신다.

표를 샀다가 곧바로 취소하는 일도 잦았고 날짜와 시간과 좌석 번호를 변경하기 일쑤였으며 유공자인지 경로자인지 할인율이 달라지는 금액에 서로 민감했으며, 심지어는 기차표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이 모자라서 내 사비로 천 원 이천 원 정도는 보태서 끊어주기도 했었다.

언젠가 갚으러 오시긴 오신다.

찐 고구마라도 서너 개 들고서.

그래, 이 맛에 시골 면서기 하는 거지 뭐.

보람이란 걸 느끼는 순간도 종종 있다.

다 우리 부모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다 생각하고 일하면 나름 할 만하다.


문제는 명절이 다가올 때다.

명절 때는 표를 예매할 때 뉴스에서 새벽부터 자리 잡고 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을 많이 보았었는데 내가 면사무소 앞에서 두 눈으로 그 풍경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전임자에게 어떤 식으로 명절 기차표를 팔았는지 조언을 구했다.

보통 4시에서 5시부터 사람들이
면사무소 앞에서 기다리니까 참고해요.
근데 서로 먼저 왔다고
자리싸움도 나고 하니까
좀 시끄러울 수 있어요.
- 족집게 강의 -

고3 때도 그 시간에는 안 일어났다.

누구, 누구 항상 표를 사는 리스트가 있는데 그 사람들이 '좀 하는 사람들'이라 잘못하면 말 나오고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라는 것이었다.

새벽 4시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일찍 온 사람들은 면사무소 문 열 때까지 계속 못 기다리니까 중간에 밥 먹으러 가면서 자리 맡아 놓고 그래요. 근데 그러다가 또 자리싸움 나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사람들이 일찍 와서 기다리면 우린 더 빨리 출근해야 되는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어차피 그 사람들끼리 누가 먼저 왔는지 다 아니까. 그냥 평소보다는 조금 더 빨리 오면 될 거예요."

그 '조금 더 빨리'라는 말의 의미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어 나는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보통 출근 시간은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이다.

당시 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는데 추석표 자리 쟁탈전 이야기를 듣고 첫 차 시간부터 확인했다.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일찍 와서 기다릴 터였다.

국민의 성실한 봉사자인 면 서기는 사무실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민원인을 한없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가을에 접어들 무렵이라 아침저녁으론 꽤나 쌀쌀했다.

새벽이 더욱 그랬다.

당장 표 파는 건 둘째치고 일단 사람들을 안으로 모셔야 했다.

그게 내 의무라고 여겼다.


어쨌거나  새벽 첫차를 탔다.

전날 심혈을 기울여 '수기 번호 대기표'도 만들어 두었다.

넉넉잡아 30번까지 번호를 적고 내 결재 도장까지 찍어 위조의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했다.


다음과 같이 안내문도 한 장 유리문 앞에 붙였다.

도착한 순서대로 번호표를 한 장씩 가져가세요. - 나이롱 기차표 판매원의 영업 방식


내가 도착하자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겼다.

저마다 자신이 집은 번호표를 들이밀며 당장 표를 끊어 달라고 성화였다.


발급 가능 시간이 아직 닥치기도 전에 아우성이다.

발급 개시 시간이 따로 있었다.

전국에서 동시에 발매되는 표인지라 접속도 원활하지 않았고 표도 금방 동났다.

내 능력의 한계를 보았다.

그나마 발 빠르게 움직인 앞 번호의 사람들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는 표를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수는 적었다.


그날은 정말 하루가 너무나도 길었다.

몸은 피곤했다.

업무 시간 내내 직원들이 전화와 메일로 '표를 구해달라'라며 연락을 해 왔다.

반칙은 나한테 안 통한다.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린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말 한마디로 표를 사겠다는 겁니까? 직접 와서 사세요. 아니 공무원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저는 학연, 혈연, 지연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표는 컴퓨터 전원을 켠 지 10분도 안 돼 아침 일찍 다 팔리고 없어서 다행히 저런 말을 하는 수고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직원들과 의가 상할 뻔했는데 일찍 동난 표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아침 바람이 상쾌하다.

그러고 보니, 9월 1일, 13년 전에는 처음 임명장을 받고 첫 출근을 했고,

오늘은 집에서 그날을 추억한다.


군대 간 남자친구는 없지만, 논산이라도 들러 보고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은 가을날이다.

이전 01화 만만한 게 공무원이더라. 과연 그러하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