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장편소설_문학동네_북클럽 문학동네
좋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책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이번 독서 모임의 책은 ‘희랍어 시간’이었다. 사실 그 어떤 배경지식도 없었고, 잘 몰랐던 책이었지만, 한강 작가님의 책이라고 하니, 얼른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북클럽 문학동네’에서도 이달책으로 한강 작가님의 ‘희랍어 시간’이 선정되었다고 하니, 잘 되었다는 마음이 컸다. 책을 주문하고는 기분이 좋아 한참을 설렜다.
막상 책을 읽으니, 그 슬픔의 강도가 깊어 책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시적인 표현의 글보다 서사 위주의 글을 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보다 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을 더 좋아하기에, 등장인물의 깊은 상처와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힘이 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찌릿찌릿하는 감정의 아픔을 나는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슬픔의 순간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피하기 바빴다. 그게 참 좋지 않은 행동인 줄 알면서도 당장 나의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나는 도망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런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다. 묘사의 힘인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덮을 무렵에는 여자의 침묵과 남자의 실명에 감정을 이입하여 가슴속 통증이 심해져 계속 소설 장면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수 있는 책, 그리고 한가닥 희망을 붙잡는 책.
1. 그것이 일순간 찾아왔을 때.
마침내 그것이 온 것은 그녀가 막 열일곱 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분명히 두 귀로 언어를 들었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의 어딘가를 틀어막아주었다. 발음을 위해 쓰였던 혀와 입술, 단단히 연필을 쥔 손의 기억 역시 그 먹먹한 침묵에 싸여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없이 움직였고 언어 없이 이해했다. 말을 배우기 전, 아니, 생명을 얻기 전 같은, 뭉클뭉클한 솜처럼 시간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침묵이 안팎으로 그녀의 몸을 에워쌌다. (15쪽)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여자.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찾아온 침묵, 그런 비자발적 침묵이 찾아온다면 어떤 마음일까?
언어의 여자의 삶에서 바늘로 짠 옷 같았다. 그런 언어가 사라졌다. 그랬더니 언어로 생각하는 마음마저 없어졌다. 가만 생각해 보면, 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생각들이 있다. 언어 없이 움직이는 삶, 침묵이 안팎으로 에워싸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오랫동안 말을 잃어 예민한 육체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는 것. 말도 들어오지 않고 새어나가지도 않는 시간이 되어 간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 부분이다.
여자가 다시 말을 잃었을 때는, 어머니의 죽음, 자신의 이혼, 양육권을 빼앗겨 아이와의 이별 시간을 겪은 이후였다. 정신적 고통은 때론 어떤 모습으로든 표현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일을 겪었지만 침묵의 원인을 그런 일들로 표현하는 의사에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한다. 맞다. 간단하지가 않다. 정신적 고통의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바늘로 만든 옷 같던 언어가 사라진 여자의 삶도 단순한 불편과 슬픔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이다.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일대일의 인과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단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삶. 단순하지 않은 삶.
침묵이 여자에게 다시 찾아왔을 때, 여자는 희랍어 강의를 듣는다. 첫 번째 침묵이 여자의 삶에서 태어나기 전의 시간과 같은 침묵이었다면, 두 번째 침묵은 죽음 이후의 시간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여자가 첫 번째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불어 한 단어 때문이었다. 여자는 스스로의 의지로 두 번째 침묵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랍어 강의를 듣는다.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폐활량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삶에서 어떤 장애가 일순간에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그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있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가 목소리가 넓게 퍼지는 것을 싫어했듯, 나는 그냥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기를 바라던 때도 있었다. 사실 바라지 않아도 그 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침묵, 그때 사용했던 방법이 침묵이었다. 말하지 않는 것,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 그 침묵으로 나는 나를 숨겼다. 하지만 필요한 어떤 순간에 말을 하지 못한다면, 침묵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날카로운 언어가 여자의 삶에서는 힘듦과 고통이었지만, 말이 사라진 여자의 삶이 고통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2. 서로를 사랑하는 일.
몇 주가 지난 뒤 갑자기 쌀쌀해진 휴일 오후, 일을 쉬며 차를 끓이던 당신에게 나는 물었습니다. 어떤 위험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아니, 백치처럼 순진하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무슨 말이든 나에게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은 주의 깊게 내 입술을 들여다보았고, 멍한 시선으로 내 눈을 마주 보았습니다. 나는 찬찬히 더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47쪽)
어리석음이 그 시절을 파괴하며 자신 역시 파괴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함께 살게 되었다면, 내 눈이 멀게 된 뒤 당신의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보이는 세계가 서서히 밀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48쪽)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했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남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사랑의 균열이 생겼을 때, 그 균열로 자신의 어리석음도 함께 부서졌다고 생각한다. 희랍어의 중간태. 우리 문법에는 없는 말. 그래서 명확하게 상황을 표현해 주는 말, 현재는 쓰이지 않은 언어. 어쩌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남자에게 필요한 시간. 희랍어 시간.
남자는 보지 못하게 될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들을 수 없는 여자와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들을 수 없는 여자는 남자의 입술에서 그 말을 읽어내고, 그리고는 남자를 때린다. 슬픔의 온전한 표현. 말로 전할 수 없는 표현은 거친 몸짓으로 표현되어 둘을 할퀸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는 헤어졌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 남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더 이상 남자가 세상을 시각으로 보지 못하게 될 때, 말하지 못하는 여자의 침묵 또한 익숙해져 갈 것임을, 그래서 서서히 온전해질 것임을 남자는 그땐 알지 못했다.
여자를 향한 남자의 절절한 시적 고백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되겠냐고 묻는 남자의 고백에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어리석음으로 균열이 생기고, 남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진실함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3. 정리
열린 결말의 책이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설명에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도 참 많았다.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남자의 상황과 여자의 상황, 두려움과 불안, 자책의 감정을 묘사로 많이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그 감정의 깊이가 더 잘 전해졌다. 하지만 많이 어려웠다. 책의 표지에 쓰인 문구처럼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라는 것으로 온전히 설명되는 책. 그럼에도 철학의 사유와 생각의 전환과 온전히 겪어보지 못한 상실에서의 아픔과 두려움을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어떤 먹먹한 슬픔에 휩싸여 지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삶’에서 ‘어리석음’으로 인해 균열이 생겼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순간의 선택이었으며, 왜 그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는지, 그 선택으로 인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이 책의 제목 ‘희랍어 시간’은 어떤 시간을 의미할까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