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붉은 목도리
어린 계집은 홑코트 동여매고
설레임으로 서성였다.
차디찬 입김을 쏟아내며
역사 문 앞에 서서
혹여나 너를 놓칠까 차마
대합실에 앉지조차 못하고
찬바람 부는 문 앞을 지키던 시간
기차역 광장 가득한 노을빛은
철로 옆 육교를 길게 가르고
성기게 지나가는 사람들
반짝이는 소란함.
그리고 어린 여자아이는
그 기차역에서
홀로 길을 떠난다.
창밖을 지나던 풍경이
눈이 부셔 커튼조차 닫지 못하고
뚫어질 듯 아름다움에 취한 시간
아쉬움은 달려가는 길 뒤로 남겨두고
정신없이 닿은 이 곳은
몇번째 역이던가
마지막칸까지 서성였던 아이는
어느 새인가
그저 길따라 앉아있을 뿐
뿌옇게 스쳐가는 차창밖.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는
누군가의 시간처럼
정신없이 달려나가다가
허덕이는 피로함에
문득 아직 느릇함이 있을
고향역,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철거덩 철컹
기억 속 흔들림에 기대어
철로따라 돌아왔건만
마치 낯선 곳에 들어선 듯
적막한 역사 안은
어쩐지 노쇄한 걸음을 담고
길게-
햇살이 늘어져 있었다.
오후4시, 김천역
비록 계절은 여전히 푸르건만
길건너 시장도,
육교도 그대로, 그저
색만 바래어 고요하다.
아무리 그 풍경따라 둘러보아도
열 아홉 막 역을 떠나던
어린 계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