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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Feb 20. 2024

참을 수 없는 생명의 가벼움

응급실은 죽음이 익숙하고, 보호자는 한순간 특별할 것 없는 유족이 된다

병원에 속속들이 사람들이 도착했다. 아빠의 동생인 막내 삼촌이 할머니를 모시고 오셨고, 같은 동네에 사는 이모 내외도 오셨다. 병원 내 보호자 대기실은 너무 추워서 우리는 야외에 마련된 임시 컨테이너 안에서 난로를 쬐며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동할 엠뷸런스를 기다렸다. 가톨릭 신자인 엄마와 나는 원불교 신자인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갖 신에 빌었다. 


열한 살 무렵 우리 집에서 약 1년간 함께 사셨던 할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힘이 세고 주장이 강하셨는데, 지금의 할머니는 그때의 버거운 기운이 모두 쇠하신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삼 형제 중 장남인 아빠는 할머니의 영원한 부채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3명의 손자, 손녀 중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첫 아이였지만, 그것은 아빠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던 할머니가 스스로 속죄하는 방식임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나와 엄마를 포함해 이 작은 컨테이너 안에 모인 친가 식구들은 모두 저마다 아빠와 풀지 못한 응어리들이 있었다. 누워있는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 중 어느 하나 마냥 투명하고 깨끗한 걱정은 없고, 어둡고 진득한 죄책감이 저마다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이것이 가족일까. 모든 가족이 이럴까.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가족은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엠뷸런스가 도착한 후 아빠는 그 안으로 옮겨지고, 남은 사람들은 이모부와 막내 삼촌의 타에 나눠 타 엠뷸런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텅 빈 도로, 새벽, 우리가 탄 차는 앞서는 엠뷸런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엄청난 속도로 달렸지만 그보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랐다. 




병원에 도착해 서류를 작성하고 또 야외에 마련된 천막에서 대기했다. 이 병원의 응급실은 이동 전 대학병원의 응급실과는 달리 사람으로 번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답답함에 몇 번이고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안내받고자 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많은 것이 제한되었다. 의료진은 아빠의 다친 장기들 중 어떤 것을 가장 시급히 수술해야 하는지, 그래서 당장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하필 유사한 수술을 많이 하는 의사가 오늘 오프라고 했다. "아, 그럼 오시라고 할 수는 없는 건가요?" 늘 욕했던 이기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이기적인 건가? 이기적이래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불가능했고, 다른 의사가 배정되었다. 그는 사진을 가리키며 어딘가 문제니 어떻게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가, 몇 분 후 다시 우리를 불러 다른 방식으로 수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예후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다. 이 병원 이송까지 따라와 준 레지던트들이 그를 두고 유능한 의사라며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 사람 역시 아빠에 대해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나 보다. 


계속 불려 가 다른 안내를 받다 보니 그래서 어디가 문제고 어떤 수술을 하기로 했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계속 구두와 서류로 보호자 동의를 받는데, 아빠의 몸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가 이 종이 몇 장의 무게를 어떻게 이해하고 동의를 해야 하는 거지? 무섭고 버거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무지한 탓에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일을 그르치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이런 책임을 내게 안겨주면 어떡해요? 어른인 척 일어나 있어도 나는 아는 것 하나 없는 어린애인데. 뒤를 돌아보면 겁먹은 눈을 한 엄마가 있었다. 나를 의지하는 얼굴. 회피성에 수동적, 방어적인 겁쟁이, 그렇지만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 여기부터는 내가 어른이구나. 나는 뭐든 좋으니 제발 아빠를 살려만 달라고 사인했다. 모두가 조용하게 비관하는 가운데,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손에 의해서.


아빠의 수술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았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살아도 성하지 않을 테니 기저귀 등을 준비하라고 했다. 또 병원 내 편의점으로 달려와 그것들을 사 왔다. 호흡은 뜨겁고, 몸에서는 열이 나는데 칼바람이 그걸 순식간에 얼려서 내가 더운지 추운 지도 알 수 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다. 엄마와 내가 아빠의 기저귀를 갈게 될까? 자존심 강한 아빠가 우리에게 아기처럼 의존하게 될까? 뭐든 좋으니 살아만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깨어나면 뭐라고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들었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지만 의식적으로 최악은 빗겨냈다. 최악은 없다. 입에 올리지도 상상도 않을 것이다.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의료진들이 뛰어다니는 응급실이 아니라 위층의 조용한 방으로 안내받았다. 엄마와 나는 여상하게 차분했다. 체념이 아니라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수술에 들어가기 불가한 상황이라고 했다. 서류 몇 개를 건너며 사인을 요청받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던 것 같다. 옆에서 엄마가 신음하는 것이 들렸다. 뭔가 더 말을 했는데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해볼 수 없는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새벽 내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전공의가 없으니 병원을 다시 한번 옮기자는 내 말에 대답하는 집안 어른들에게서, 내 눈을 피하던 의료진들에게서. 한 것도 없는데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말. 내가 힘이 없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어린애라, 세상이 나에게 칼을 들이밀면 그걸 곧이곧대로 맞고 있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어서. 생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관통했다. 몸이 쭉 흘러내려 땅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아빠였으면 이렇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나를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아빠였다면 뭐라도 했을 텐데.


감당치 못하실까 봐 아빠의 병실에도 들어가지 마시라 했던 할머니가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그 방으로 들어왔다. 내내 아이고, 아이고 하며 힘 없이 앓는 소리를 하셨는데, 무슨 힘이 있으셨던 건지 선생님 내 아들 제발 살려달라며 어린애처럼 빌기 시작하셨다. 담당 의사는 짜증을 숨기지 않고 할머니를 내보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는 이렇게 억지를 쓰는 보호자를, 아니 유족을 수백 수천 번은 보았을 것이다. 의사는 눈이 벌게지도록 우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나는 조용히 앉아있으니 말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 나는 정말, 죽었었는데.




엄마와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다. 엄마는 정신이 나가 오열했다. 


개새끼,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 개새끼야.

OO아빠, 일어나 봐.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일어나라고. 우리끼리 어떻게 살라고......


나는 그걸 지켜봤다. 엄마를 말리고 추슬러 달랠 기력도 이성도 없었고, 그렇다고 엄마와 함께 아빠에게 큰 소리로 소리치고 엉엉 울고 애원하며 매달릴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지금 여기 없었으니까. 나는 마치 육체를 떠난 영혼이 하늘 아래를 내려다보듯 그 광경을 지켜봤다. 슬픔, 분노, 상실감, 죄책감, 허망함. 내가 어떤 감정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에 압도 당해 우두커니 그것을 지켜보다,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아빠에게 소리 내서 해야 하는 확실한 말 몇 마디는 있었다.


아빠, 엄마는 걱정하지 마.

이제 엄마는 내가 책임질게.

내가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 다 하고 살게.

내가 아빠 걱정 안 하게 엄마 잘 돌볼게.

미워해서 미안해. 사랑해.


내가 그때 아빠를 정말 사랑했었나. 그렇지만 어린 자신이 늘 바라던 사랑을 내게 주려고 노력한 아빠가, 내가 아빠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줬으면 했다. 그리고, 엄마가 마음껏 떽떽댈 수 있는 세상 유일한 존재인 아빠가, 엄마를 딸처럼 귀여워하던 아빠가, 엄마에게 참 많은 상처를 준 아빠가 이제 내가 엄마를 지킬 것이라는 걸 알고 안심했으면 했다. 무엇보다...... 아빠의 탄생 당시 이 세상에 없던 우리 둘이 당신의 마지막을 지킨다는 것에 만족하고 떠났으면 했다. 우리는 다정하고 따뜻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이 가족의 품 안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면 했다.




직계 가족이 아니라도 가까운 가족 혹은 지인 2명이 아빠와 인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의 회사로 가신 작은 아빠가 병원에 없으셔서 막내 삼촌이 혼자 들어갔다 눈이 빨개져 돌아오셨다. 아빠의 가까운 지인, 아빠는 늘 친구가 많았으나 지금 병원에는 아빠 회사의 직원들 뿐이었다. 엄마는 아빠 회사의 '상무'라는 분을 안다고 했다. 아빠가 그분을 좋아하고, 늘 찾았다며 엄마는 맨 처음 이송된 응급실에서부터 S상무를 찾았다. "S상무님 계세요?" 하니 직원분들이 그분은 아빠랑만 일하는 분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K중개사'가 아빠와 가장 오래된 사이라고 했다. "오래된 사이시라면, 직원 대표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다녀오시겠어요?" 하니, 그분도 아빠를 보러 들어가셨다가 젖은 눈으로 돌아오셨다. 


기실 그 병원에 있다는 관계자들-친가, 외가 식구들, 먼 친척 어른들, 아빠의 회사 직원들-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서로가 모르는 세계에 속한 채, 각자 다른 마음으로 아빠를 애도하는 사람들. 누구도 누구에게 함부로 말을 걸거나 위로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성일뿐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빠와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충격받은 목소리로 "A대표 죽었어요?" 하는 여성도 있었다. 수상한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라 무언가 있겠구나 직감했으나 엄마에게는 티 내지 않았다. 




이제 병원에서 아빠의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은 병원이 익숙하고, 우리는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보호자에서 이제는 유족이 되었다. 마지막 서류에 사인하며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못 살 것 같은데, 저 어떡해요...."

"힘드시겠지만 앞으로도 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의사는 응급실에서부터 발인까지 나를 가장 무감하고 관성적으로 바라본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죽음에 익숙했을 것이고, 환자의 어떤 죽음도 이제는 큰 감흥이 없을지 모른다. 난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 누구도 아닌 유족 1인 채로, 나를 냉정히 내려다보는 그의 앞에서 형편없이 약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 의사의 말처럼, 나는 어쨌든 살아가고 있다. 힘들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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