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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Feb 20. 2024

곡소리는 영혼을 토해낸다

아빠의 사인은 낙상이 아니라 음주운전 동승 교통사고로 밝혀졌다

한밤중이 시린 새벽이 되고, 새벽은 순식간에 거짓말 같은 오후가 되고, 오후는 내 몸과 마음을 자비없이 밀쳐서 다시 새까만 밤이 되었다. 나는 그 밤이 다시 무거운 침묵을 입고 새벽이 되는 것을 무력히 지켜보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불이 꺼지고, 엄마와 나는 장례식장에 딸린 작은 방 대신 제단 앞에 대충 패딩을 덮고 누웠다. 영정 사진 속 온화한 표정으로 정장을 입은 아빠가 낯설었다. 살면서 아빠가 정장을 입은 것을 한 번은 봤을까. 빨간 골프웨어를 입은 아빠의 증명사진은 단정한 정장의 중년 남성으로 변모했다. '아빠 안 같아', 엄마가 중얼거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누운 엄마의 젖은 얼굴을 닦아주고, 배를 토닥였다. 엄마, 너무 울지 마.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엄마에게 목소리를 죽이고 되뇌었다.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에도 아직 입학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나는 때때로 이렇게 우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를 달래곤 했었다. 한 평생 엄마가 슬픈 게 무섭고 불안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불쌍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그 어린 날 기억이 죄다 되살아나는 바람에 기억나지 않는다는 엄마를 붙들고 크게 화를 낸 것도 여러 번이다. 난 늘 나보다 약한 엄마가 불쌍하고 불안했다. 유리처럼 깊게 박힌 그 기억들에서 강산을 몇 번 건넌 후에도 여즉 엄마는 울고 나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구나, 생각했다. 


아빠가 떠났는데 엄마가 걱정되는 게 먼저라면 나는 불효자식인 걸까.

대답해 줄 사람은 없지만 좋은 자식이 되는 건 양쪽 모두에게 실패했다는 건 알았다.




눈물을 그치지 못하던 엄마가 일어났다. 나는 피곤에 절어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엄마가 목놓아 울었다. 곡소리였다. 사람들은 곡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알까. 소리를 통해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엄마의 슬픔과, 분노와, 죄책감과, 애달픔과, 망연함과, 사랑과......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살라고

OO아빠, OO야, 너네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둘이서 어떻게 살라고

부모 없는 설움 알려주지 말자고 했으면서

내가 잘못했어


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몸이 굳었다. 웅크리고 누워 눈을 감은 엄마를 토닥이는 내내 엄마에게 말 없는 위로를 건네며 내가 잘해보겠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 의미 없는 얘기였다. 엄마가 참지 않고 모든 걸 토해내면 그다음에는 뭐가 남을까? 엄마는 갓난아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외삼촌 집에서 자랐고, 아빠는 부모가 부모 도리를 하지 않아 둘 다 실질적인 고아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태어나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세 명의 사람을 잃었다. 내가 엄마의 배를 찢고 나왔다 한들 엄마가 느낄 슬픔과 지금의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조문객이 식사하는 장소에서 자고 있었던, 혹은 자는 척 숨을 죽이고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큰 소리로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흐느꼈다. 외숙모들이 건너와 엄마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들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그 공간의 누구도 그랬다. 엄마는 오열하다가, 분노하다가, 아빠나 옆의 사람에게 말을 걸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 외가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이다. 다들 교회를 다니기 위해 일주일을 보내는 사람이라 천주교 신자지만 성당은 가는 둥 마는 둥 하는 나와 엄마는 가족 예배 시간에 늘 기도하다 말고 멀뚱 거리며 눈을 맞추고 키득이다 양아치 신자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엄마는 늘 하나님을 믿었다. 늘 집에는 십자가를 걸고 묵주를 소중히 여겼다. 신은 엄마에게 기복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싶은 마지막 동아줄 같은 것이었으리라. 엄마는 가족 중 가장 독실한 기독교 신자 중 한 명인 숙모에게 물었다.


"숙모. 정말 신이 있어? 신이 있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

"말해봐. 정말 신이 있어요? 천국 같은 게 있어요?"

"있어..."


숙모는 엄마를 안타깝게 쳐다보면서 신은 정말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러면서도 아빠가 좋은 곳에 갔냐는 엄마와 나의 물음에는 그건 알 수 없다며 말을 흐리셨다. 나는 숙모의 신앙심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잔뜩 취약해진 엄마와 나를 할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는 크리스천, 나도 유아세례를 받은 모태신앙, 반면 아빠는 크리스천이 아니고 종종 바람을 쐬러 간다며 절을 찾았다. 신을 만나 회개해야만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이라면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빠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날이 밝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 조문객을 받았다. 탈색모를 아래로 묶은 거울 안의 얼굴이 하루 만에 헬슥해져 있었다. 입구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엄마가 크게 화를 내고 있고, 외삼촌들이 엄마를 달래고 있었다. 왜 그래? 나는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합의를 해? 어떻게 자기 형이 죽었는데..."

"엄마, 왜 그래?"

"OO야, 아빠가 떨어진 게 아니라 교통사고가 났었대."


옆에 서 계신 어른들이 대신 대답하셨다. 역시 경찰이 한 말이 맞았다. '미상'으로 기재된 아빠의 사인은 교통사고였던 것이다. 아빠가 동승한 차량 운전자는 음주 상태였으며, 현재는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엄마는 잔뜩 흥분해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어떻게 그래, 자기 형이잖아!"

"일단 진정하고..."

"엄마, 무슨 일인데."

"작은 아빠가 아빠 그렇게 만든 사람이랑 합의하쟤. 엄마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어. 합의하자고 하잖아? 엄마는 10억을, 100억을 가져오라고 할 거야."


엄마는 분에 받쳐 다짐하듯 소리쳤다. 작은 아빠가 엄마와 나보다 먼저 교통사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모부와 사고 현장에 가서 사고 차량을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음주 운전 당사자 번호를 받아 통화를 했는데, 통화해보니 이 사람도 악의가 없는 여자고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으니 엄마에게 좋게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액수와 관련해서도 이미 얘기가 오간 것 같았다.


'형수, 나도 마음 같아서는 이 X 죽이고 싶은데, 얘기 들어보니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형이 그렇게 된 것도 몰랐다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전말은 이랬다. 한밤 중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였고 아빠는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했다. 음주운전 당사자는 여자며 지금은 입원 중이다. 그 사람은 아빠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했다고 한다. 아빠와 응급실까지 동행했다가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진 '그 남자' 또한 해당 차량에 동승했었다. 그 남자는 장례식장에 왔으나 차마 들어가지 못하겠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어떻게 자기 형이 그렇게 갔는데 이 시점에 합의 얘기를 꺼낼 수 있냐며 울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아는 파편화된 정보들을 늘어놓았다. 


너희 아빠가 조수석에 탔대, 제일 위험한 자리에. 

차에 4명이 있었대. 

사고 난 사진을 좀 찍어왔는데, 이 큰 나무가 부서질 정도로 크게 부딪혔나 봐.

병원에서 만난 그 남자를 봤는데, 내가 이렇게 붙잡았는데 도망치더라고.

근데 차를 타고 어디를 가려고 했을까?


어떤 것은 사실이었고, 어떤 것은 추측이었다. 나는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의지도 에너지도 없었다. 아빠는 평생 음주운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의뭉스러워 피가 식었다. 이모부가 찍으셨다는 사고 현장의 차량과 나무 사진을 봤다. 처참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커졌고, 세상은 빙글빙글 돌았다. 


이미 최악인데, 그 안에 또 다른 최악이 있었다.




작은 아빠는 자리를 비우신 상황이었다. 아빠의 회사에 대표자 인감과 법인 통장 및 서류를 가지러 갔다고 했다. 혼란한 틈을 타 직원 중 누군가 나쁜 짓을 할까 봐 그렇다는 거였다. 첫날 조문을 다녀간 회사 경리분은 '네, 가져가셨어요... 근데 그건 다시 재발급받기만 하면 되는데, 사실'하며 떨떠름한 목소리를 냈다. 회사 사람들이랑 척져서 좋을 게 뭐가 있냐, 누군가가 말했다. 음주운전 당사자와의 통화도, 회사에서 카드며 도장을 챙긴 것도 어느 하나 우리와 동의된 것이 없었다. 화가 나 어디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마음대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시는 거지?


엄마와 나에게는 침착한 작은엄마라면 모를까 불같은 성미의 작은 아빠는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사고 처리든, 회사 문제든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작은 아빠가 우리 모르게 자꾸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키우는 것이 매우 불안한 것 같았다. 음주운전 당사자와의 통화에서 멋대로 합의를 고려하겠다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한 것도, 회사 직원들이나 아빠의 지인들과 우리 모르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작은 아빠는 아예 몇 달이든 휴가를 내고 우리 집에 머무르실 생각이신 듯했다. 이쯤 되면 엄마는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작은 아빠와 이혼하셨지만 장례식에 가족으로 참석하신 작은 엄마를 붙잡고 어떡하니, 어떡하니, 왜 저렇게 들쑤시고 다니는거야, 하며 불안해했다.

 

작은 아빠가 다시 장례식장에 도착하신 후 엄마와 무언가 말을 나누었다. 이후로는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나는 조문객과 절을 한 후 작은 아빠가 명함을 챙기실라 치면 그것을 대신 받았고, 누군가 나서야 할 일이 있으면 무리해서라도 작은 아빠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작은 아빠는 내가 작은 아빠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을 눈치채신 것 같았지만 이를 굳이 지적하지 않으셨다. 다만 화를 참으시는 듯했다. 이 불편한 공기 누구 하나 먼저 깰 생각이 없었다.




엄마와 나는 천주교 신자이며, 외가는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다. 친가 역시 원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 작은 아빠와 삼촌 모두 개명을 하실 정도였다. 아빠는 종교가 없었고, 가끔 산을 올라 절에 가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아빠의 장례식은 엄격하게 특정 '종교식'으로 치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불교와 기독교가 산만하게 섞여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의아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아빠의 사망 선고 이후 바로 원불교 교단에 연락을 하신 것 같았다. 제의를 진행하기 위해 관계자 몇 분이 도착하셨고, 이윽고 장례식장에는 목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작은 아빠와 작은엄마, 막내 삼촌, 사촌동생들, 그리고 나와 엄마는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앉아 그 의식을 따랐다. 믿지 않는 종교 의식을 따르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동의 없이 사람을 부른 것이 피로했지만 할머니의 체면과 먼 곳까지 오신 분들의 성의를 생각해 참았다.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들이 내 안에 머물지 않고 그대로 반대쪽 귀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몇 번이고 시키는 대로 절을 했다. 모두 바닥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 주문과도 같은 언어들을 따라 하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불편한 얼굴로 입을 달싹이는 엄마를 보며 우리만 그곳에서 섬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기 싫어. 우리는 크리스천이야."

"그래도 할머니가 생각해서 부르신 거잖아. 교무님께 여쭤봐서 계좌번호 받고 입금해드려."


장례식을 진행하느라 잔뜩 지친 나는 원치 않는 제의 방식까지 감내하느라 울화가 찼다. 할머니가 교무님을 배웅하느라 나오셨고, 어색한 돈 얘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내가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래, 네가 내겠냐고 말하셨고 나는 즉시 절대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송금했다. 물론 장례식장 비용과 마찬가지로 그것 또한 아빠의 돈이 아니라 내 사비였다. 우리 아빠니까, 당연히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 외가에는 집사, 권사, 장로분들이 모두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모여서 기도를 했다. 앉아서도 했고 일어나서도 했다. 손을 붙들고 기도를 하고 있다 보면 마음이 얼마간은 괜찮아지는 듯하기도 했다. 그게 정말이든 착각이든,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질서에 의해 아빠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고 편히 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괜찮았다. 그저 부디 평화롭기를 바랐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원불교식 제의는 원불교를 믿는 친가 식구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그들 마음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아빠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나와 엄마가 하나님을 말하는 기도 안에서 안정을 찾은 것처럼. 양쪽 모두 사실 아빠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걸 알았다면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주문같은 목탁소리를 들으며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와 원불교가 차례로 소리를 내는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걸 들어도 양심에 거리끼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골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다. 대화도 서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오해와 침묵 속에서, 아빠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그의 가족들은 본격적으로 분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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