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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Apr 07. 2024

아빠를 죽인 여자와의 대화

살인자와 유족, 가해자와 피해자, 상간녀와 배우자, 그리고...

아빠가 탄 음주운전 차량의 운전자이자 아빠의 내연녀였던 B의 번호를 받았다. 변호사님은 B를 만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앞으로의 재판과는 무관하지만, 그와 별개로 재판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몇 번 정도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어차피 봐야 할 얼굴이면 스치는 대신 제대로 직면하고 싶었다. 그 사람에 대한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 한편으로 B 본인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B와 아빠가 탔던 차의 또 다른 동승자 2명 중 하나이자, 병원에서 도주한 S와 마찬가지로 비겁한 태도를 보일까? 엄마가 울고 웃으며 내뱉은 '개죽음'이라는 단어에 설득력을 실어주는 천박한 사람일까?


나는 침착한 어조로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B는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면 맞춰 나가겠다고 답했고, 나는 카페를 대관하고 B에게 장소를 보냈다. 계속 고민했으나 B를 마주 보게 되면 대체 그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빠 살려내!

더러운 상간녀!


그런 마음이 먼저가 아니었다. 


아빠의 죽음 이후 괴로움에 잠 못 드는 밤이면 B를 칼로 찌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B에게 모든 잘못을 환원하면 불필요한 고민에 허덕이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와 내가 서로를 보며 괴로워하듯, B를 괴롭게 하기 위해서는 B가 아니라 B의 자식들에게 복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인자의 자식. 상간녀의 자식. 


하지만 B에 대한 분노에 버금가는 것들이 부정할 수 없이 크게 내게 들어앉아 있었다.


우리 아빠는 음주 운전 차량에 자발적으로 탄 게 아니에요! 또 다른 동승자가 증언하기로, B가 운전하겠다며 막무가내를 피웠대요. 아빠는 중간에 차를 멈췄을 때 내려서 그중 유일하게 계속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부른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빠, 그걸 누가 알아줘? 이 세상에서 대체 누가 알아줘? 왜 외도를 했어? 왜 하나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개로 마음을 갈라 썼어? 끝까지 버티지 평소에 그렇게 싫어하던 음주운전에 왜 방조하다 못해 동참했어? 나랑 엄마에게 잔소리 듣기 싫어 빨리 돌아오는 게 중요했다면, 왜 돌아오는 길에 조심할 생각은 못 했어? 아빠의 억울함은 누가 알아줘? 나랑 엄마 말고 누가 알아줘? 누가 진실에, 아빠의 상황에 관심 같은 걸 가진대?


그래. 나는 B가 죽었으면 바랬지만, 그 이전에 아빠에게 불같이 화가 났던 것 같다. 이제 책임을 물을 수도, 변명을 들을 수도 없는 사람에게.




만나기로 한 카페에 가니 B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본 화려한 사진과는 달리 수수하고 수척한 몰골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엄마, 나, B. 그 자리에서 '말을 할 권한'이 주어진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B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생명과 삶의 무게에 대한 이해가 가장 떨어지는 어린애 주제에, 나도 놀랄 만큼 점잖고 차분하게 말이 나왔다. 


나는 B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B는 대부분의 것들을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자신은 이혼한 상황이고, 아빠와는 S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사고 당일은 어떤 상황이었고, 현재 자신의 경제상황은 어떤지.


그러다 B에게 나와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하니 울고 불고 난리를 쳤었다고 B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B의 구속영장은 발부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만약 우리가 형사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B는 아주 짧게라도 징역형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아빠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는 B에게 먼저 외도를 언급했다.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죄책감이 없냐고 물었다. B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저도 사람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어요.'


나는 B의 딸의 인생을 망치는 생각을 했었다. 부끄러운 엄마의 딸이라는 낙인을 사방팔방 찍어버리는 상상을 했었다. 그들의 마음이 죽었으면 했다. 과연 B의 딸은 나나 엄마에게 가책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엄마가 저지른 것이니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느낄까? 아니면 쌍방의 과오이니 이혼한 자신의 엄마만 상간녀로 모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낄까? 만약 내가 B의 딸이었다면, 외도를 한 것이 우리 엄마이고 엄마의 과실로 상대 남자가 죽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엄마를 경멸할까? 아니면 도덕이고 인륜이고를 떠나 당장 눈이 뒤집혀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변호하게 될까? 혹시 B는 내 입장에 대해 생각해 봤을까? 


나는 아빠를 죽인 여자의 입장에서 분노로만 소거되지 않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정상인지 고민했다. 나는 지금 유족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모든 것을 저 여자의 탓으로 돌릴 수 없게 일조한 아빠의 과실과 아빠에 대한 양가감정이 과연 아빠의 딸로서 합당한 감정인가. 엄마와, 저 여자와, 저 여자의 딸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는 게 과연 정상인가.


단 한 번도 나의 입장이나 감정에만 충실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 아빠의 묫자리에는 찾아가 볼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B는 자신에게 감히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는 B가 남편이자, 아들이자, 아빠를 영원히 앗아간 것에 대해 과연 실감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본인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영원히 박살 냈는지 알고 있을까. B는 대답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웨딩 행진곡이 들렸어요.'

'...'

'그때 실감했던 것 같아요. 내가 빼앗았구나. 저런 순간들을.'


B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B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많은 영혼을 파괴했는지, 그 영구적인 손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했다. 


'B씨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어요. 저도, 엄마도, 할머니도, 다른 사람들도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거예요. 가족을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감히 상상도 못 할 거예요. 평생, 단 한순간도 잊지 말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세요. 평생을 걸쳐 갚는다는 마음으로 사세요. 그리고, 아빠에게도 찾아가 무릎 꿇고 속죄하세요. 죽을 때까지 속죄하며 사세요.'


B가 울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속죄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용서할 사람은 여기 없고,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텐데.


나는 내내 자신의 손을 새하얘지도록 쥐어뜯던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호사가 미리 일러준 대로 B와는 소송 마주치게 일이 잦았다. B 측 법무법인의 담당 변호사는 로스쿨을 졸업한 '새끼' 변호사라고 했다. 겁이 나 대형 로펌을 선임한 건 B가 아니라 S였다. 형사 소송을 거치고 공증 사무실에서 도장을 찍게 되는 순간까지 B 측 변호사는 B에게 아주 깍듯하고 정중했다. B를 '선생님'이라 칭하며 상전 모시듯 대했다. 과할 정도로. 나는 그게 못마땅하고 메스꺼웠다. 누구라도 변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때문이 아니라, 돈이라면 죄도 면하게 하는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족에 대한 도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찾아볼 없었기 때문이다. 


첫 재판 날. 나는 기가 찬 채로 B를 변론하는 그 변호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잠시 놀란 듯하다 나를 마주 노려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와 나는 누구도 먼저 피하지 않고 눈에 힘을 줬다. 재판이 끝난 후 우리 측 변호사와 대화하던 중, 법원을 나가려던 B가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했다. 그 옆에 있던 변호사가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와 말했다.


'근데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네?'

'저한테 할 말 있으시냐고요. 계속 쳐다보셔서.'

'제가 그쪽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요?'


B와 우리 측 변호사가 우리를 말렸다. B가 그에게 '하지 마', 하자 그가 씩씩대며 뒤를 돌았다. 대체 이 사람이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길래 유족인 내게 이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법조인들에게 의뢰인이나 사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실감했으나 그때 내 분노는 정말 선명했다.


감히

살인자를 변호하는 주제에

감히


B와 그의 변호사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리 앞에서 B의 태도는 모두 연기였을까? 아니면 저 변호사의 태도는 B와는 별개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 저 변호사는 나와 엄마가 선임한 사람이 아니니 우리에게 예의를 지키고 정중하게 굴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나는 저 변호사의 태도를 B의 진의에 비춰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당시 가졌던 감정 중 하나는.... 배신감이었다. 불안이었다.


저 여자, 우리에게 속죄하는 걸 연기한 건 아닐까?




몇 번째인지 기억나지 않는 형사 재판날. 법정에 앉아있는데 모르는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엄마나 B보다는 어려 보이는 나잇대의 여성이었다.


'죄송해요, 어머, 죄송해요.'

'... 누구세요?'


말하는 동시에 직감했다. 이 여자가 네 번째 동승자구나. 나는 당신이 동승자가 맞냐고 물었고, 그 여자는 기가 죽어 그렇다고 답했다. 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


'어떻게 단 한순간도, 단 한 번도 연락조차 없을 수가 있어요? 당신이 사람이에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나오세요. 나와서 얘기해요.'


나는 그 사람의 팔을 붙잡고 나가려고 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정말 죄송하다고 반복했고, 나는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이렇게 비겁할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소란해지자 다가온 법원 직원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끌어냈다. 나를 법원 밖으로 끌고 나가 눈을 부릅뜨고 날 위아래로 훑으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뭐라고요?'

'씁!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 소리야! 이 사람이.'

'저기요. 제가 유족이고요, 저 사람이 잘못한,'

'어허!'


나는 기가 막혀 웃었다. 하하하. 세상이 온통 거짓말 같았다.




형사 재판이 완전히 끝나고 얼마 뒤, B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요트를 탄 사진. 크루즈 여행을 간 사진이었다. 우리에게 보였던 추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메이크업과 머리를 한 처음 그 화려한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로,

내가 그랬지. 

아빠, 누가 알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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