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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돈키호테

by 시온


세상이 나를 비웃어도, 내게는 그 비웃음이 박수처럼 들린다.-돈키호테


무심코 올려다본 TV 화면에는 SNS에서 화제가 된 지하철 할아버지에 대한 취재가 비춰지고 있었다. 꽃무늬 셔츠에 커다란 백팩, 자신의 덩치만 한 깃발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따리까지—


그는 거리 위를 활보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그리고 쉼 없이 외친다.


“Happy Day!”


그는 일면식 없는 낯선 이들에게 거침없이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스스로를 깡패라 칭하며 배짱을 강조하는 그 남자는 이상하리만치 다정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직접 글을 쓰고, 시를 만들고, 자신이 삶 속에서 깨달은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온몸을 던진다.


그의 낡고 무거운 가방 속에는

몇십 권의 시집과 수많은 자격증이 들어 있다.

지식을 깨닫는 건 한순간이라고,

그 순간 시가 되어버린다고 말하는 그.

하지만 그 보따리 안에는 깡패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다정함도 함께 담겨 있다.


사람이 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말을 아끼던 그의 눈은 마치 투명한 물통 속에 검은 붓을 담갔을 때처럼 잠깐 탁해져있었다. 곧바로 다시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깃발을 펄럭인다. 그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알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비밀을 품은 돈키호테는 오늘도 거리를 누빈다.

때로는 조롱 섞인 비웃음을, 때로는 순수한 관심을 받으며 스스로를 멈추지 않는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그의 여행은

끝이 없을 것이다.


미쳐버린 이 현실 속에서, 내가 되고 싶었던

진짜 돈키호테를 잠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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