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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뮈 Oct 20. 2024

7. 저녁 황금시간대 주방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수제 그릭요거트를 만들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답지 않게 다급하게 아빠를 불러 세웠다. 

이마에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라라팰리스....그거...고모집 맞지? 한달에 60 실화야?"

-".............."


아빠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푹하고 쉬었다. 

뒷모습이 많이 여윈 모습에 순간 놀라긴 했지만 나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헛된 희망은 품지 마라. 고모 요양하느라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그 동안에 월세라도 받아서 네 고모 요양비용에 보탤 생각이야. 봐서 집 사겠다는 사람있으면 팔 생각도 있고. 그러니까 고모가 너한테 와서 내려와서 지내라느니 그런 헛바람같은 쓸떼없는 소리하면 그냥 무시해. 네 고모도 지금 힘들어"


-"그래도...아빠 한 달에 60이면...거기 내가 1년만 살면 안 될까? 내가 돈 낼께. 나 회사다니면서 모아둔 돈 있어. 괜히 남에게 월세 주고 이것저것 신경쓰느니 내가 들어가서 사는게 낫잖아"


아빠는 내 말을 듣더니 '버럭'하고 화를 냈다. 


"어른들 일에 네가 끼어드는거 아니야!! 괜히 네가 고모일까지 신경쓸 필요도 없고, 친척어른들 싸움에 끼어들 필요도 없고. 그냥 좀 가만히 있어!!!!"


짜증이 잔뜩 섞인 아빠의 호통에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서러워졌다. 30 후반가까이 됐어도 혼자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독립이 무서웠다. 직장도 대중교통으로 다닐 정도의 거리였기에 독립의 계기가 없었다. 또한 작은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모아둔 돈이 넉넉치 않았기에 독립을 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기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백수신세이기에 구직활동을 할 동안은 부모님과 한 집에서 지내며 무조건 버텨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나이 든 부모님과 한 집에서 하루종일 부딪히며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고 닫는 문제부터 머리를 감고 뒷정리를 하는 방식까지. 부모님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위생관념도 달랐다. 나는 부모님과는 별개로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성인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섭리라면, 나는 지금쯤 결혼해서 어떤 다른 인격체인 한 남성과 이런 삶의 차이점과 다른 가치관들을 조율하고 타협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안 되니 부모님과 조율하고 타협해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문제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때문에 그저 수긍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어서 답답할 참이었다. 


특히나 우리집에서 주방의 주인은 엄마였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나 샐러드를 해 먹고 싶을 때는 엄마의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식사시간이 가까운  황금시간대의 주방의 주인은 무조건 엄마일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엄마의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입맛이 달라지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30년이 넘는 나이 차이 만큼이나, 음식에서도 경험과 미식에 대한 관점의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그릭요거트를 만들어보려고 했다가, 엄마는 너저분한 주방 꼴을 보고는 "왜 멀쩡한 요거트를 이상하게 해 먹는거냐?"고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곧 식사시간이 다가오니 밥을 해야 한다면서 빨리 정리하라고 했다. 


사실 엄마의 반응도 이해를 한다. 치즈인지 요거트인지도 모를 꾸덕한 질감의 그릭요거트를 나이 70이 가까운 엄마에게는 너무 생소한 것이었다. 아직도 엄마의 음식만을 보채는 아빠때문인지 식사시간이 가까워지면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도 느껴졌다. 


게다가 하얀 쌀밥만을 고집하는 아빠덕분에 잡곡밥은 구경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이어트가 일상인 나같은 현대여성에게는 현미밥은 필수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엄마가 주방에 없는 시간대에 주방에 들어가 따로 잡곡밥을 짓고, 비닐백에 소분해 냉동고에 넣어놓는 작업을 하곤했다. 


그렇다. 어쨌든 우리집 주방의 주인은 우리 엄마인 것이었다. 그녀가 원해서 주방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타인을 위해서 주로 요리를 하는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주방의 안주인 노릇을 하느라 힘들었겠지. 혼자 있을 때는 그냥 남아있는 반찬 한 두가지로 떼우고 마니까. 



어느 순간, 내가 매일 먹는 밥과 반찬 요리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주방의 주인이 '나'라면 아마 식사의 형태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쌀밥대신에 현미밥을. 밥대신에 요거트를. 요거트대신에 맥주를. 뭐 이런 형태로 달라졌겠지. 



현실은 맥주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여 빈 맥주캔을 책상서랍 속에 꿍쳐넣는 신세지만 말이다. 






희승과 잠시나마 뜨거웠을 때, 그와 손을 잡고 도망쳐나와 우리 둘만의  집에서 동거를 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렇게 개성이 강하고 자아가 강한 남성인데도 그도 부모님과 함께 거주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농담삼아 '우리 도망가자!'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나는 농담이라고 해도 사실 진심도 섞인 그런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틈도 주지 않는 남자였다. 나만 뜨거웠었나. 정신차리고 보니 나만 뜨거웠었네. 





2번씩이나 수고를 들여 유청을 깔끔하게 분리하고 만들어낸 꾸덕한 수제 그릭요거트. 냉장고에 남아 있는 건망고와 함께 넣어 먹으면 꿀맛인데 오늘은 만들지 못할 것 같다. 주방에서는 엄마의 된장찌개 끓이는 소리가 요란하고 나는 엄마가 주인공인 그 공간에 들어갈 틈이 없다. 저녁 황금시간대에 주방의 주인이 떠난 자리는 너무 늦은 밤시간이다. 나만의 요리를 하기엔 눈치가 보이는 시간이다. 생각보다 그릇을 꺼내는 '달그락' 소리는 잠을 깨울만큼 크게 들리니까. 

.........



그냥 좋게 생각하자. 나는 복에 겨운 백수다. 아직까지 엄마의 된장찌개는 눈치 없이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설겆이나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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