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니?
간밤에 마신 커피탓을 해보지만, 그것은 디카페인이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나는 잠시나마 세상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재즈음악을 머리맡에 틀어놓았다.
창가의 커텐은 나부끼고 창밖의 보름달은 환히 방 안으로 비춰왔다. 잠시지만 행복하다고 느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덕분일까.
이대로라면 달콤한 잠에 빠질 수 있을 듯 했다.
그러나 나의 달콤한 캔디같은 밤을 단 번에 깨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똑"
어찌나 선명하고 또릿하게 들리던지, 오던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급히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그 때 받아본 단 두 글자.
"자니?"
.
.
.
오싹했다. 나는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서설...설마"
보낸이는 희승이었다. 내 바로 직전의 연인.
이별 뒤 시원하게 눈물바람을 일으킨 이후로 생각나지 않았던 전 연인의 서프라이즈 카톡이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이...이제와서 왜?"
그는 밀당의 고수였다. 내가 어디서 아쉬워하는지, 미련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잘 아는, 내 약점을 잘 아는 남자였다.
내가 그의 손아귀에 있었던 적도, 놀아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콩깍지가 벗겨졌는지 그의 다양한 수들 중 하나, 둘 정도는 읽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예전보다 조금은 성숙해져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드디어 미쳤구나"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내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내 몸도 침대에 내던졌다.
뜬금없는 희승의 까똑때문에 오던 잠이 다 달아버렸고, 왠지 아까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때문인지 더 이상 잠을 자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디카페인이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채.
나는 그날 밤, 창문에 흩날리는 레이스 커텐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하며 밤을 꼴딱새었다.
간 밤에 마신 커피 탓을 해보지만, 커피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디카페인이었으니까. 디카페인 커피에 잠을 못이룰만큼 예민한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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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느때처럼 아침산책을 하고, 구인사이트의 구인광고란을 뒤져보며,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백수의 불안한 여정을 보내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싸게파는 야채가게'에 들려서 간식으로 먹을 야채와 과일들을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공인중개사무소의 유리벽면에 붙은 수많은 원룸, 투룸의 월세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독립을 하고 싶은데...아직은 무리인걸까"
원룸의 월세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나에게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집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얼굴이라도 예쁘게 태어나서, 혹은 성형이라도 해서, 호구같은 남자라도 꼬셔 결혼했어야 했나"
나는 외모도 능력도 그저그러니 내가 그저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호구같은 남자라니. 희승을 만나서 호구같은 여자로 살았으면서 누가 누굴 탓하고 평가하는거야"
나는 쓸떼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집에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공인중개사무소 한 켠에 붙은 한 월세 안내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라라 패리스'
서울 인근 경기도 위치
25평, 1년 계약
보증금 1000
월세 60 남향, 조망좋음. 전원 분위기
1년 단기계약이라 저렴하게 내놓습니다.
"라라패리스 1층??"
이름이 범상치 않았던 빌라이름 덕분에 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고모의 집이었다는 것을.
"한...한달에 60만 원이면......"
나는 순간 깊이 고민을 해보았다. 내 통장잔고와 화가 난 아버지의 얼굴까지.
하지만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