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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Sep 20. 2022

4. 사랑(1/2)

: 더 행복해지기 위한 양념

  Don`t drink to feel better, drink to feel even better. 

  더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해야지, 행복하기 위해 사랑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결코 너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들어가며

◎사랑은 운명일까? 

◎누군가의 무엇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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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사람들이 보통 사랑을 얘기할 때 ‘핑크빛’, ‘달달한’, ‘깨가 쏟아지는’ 같은 단어들을 인용하곤 한단다. 너무 낭만적이고 행복하고 생각만 해도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거 말이야. 아빠가 이 장을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 그래도 조금이라도 사랑에 대한 기대를 남겨 두는 게 좋은가, 동심파괴라는 얘기를 듣더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주는 게 나은가 둘 사이에서 말이야.

 ‘환멸[幻滅]’이라는 단어가 있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이라고 나와. 꿈, 기대, 환상이 깨어지는 이유가 뭘까. 아마 ‘생각했던 것’과 ‘실제의 것’의 차이가 너무 큰 탓 일거야. 하와이에 가면 어디를 가든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야자수 나무 그늘 아래 해먹이 드리워져 있고 그 흔들흔들한 해먹 위에 누워있으면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이 양쪽에서 큰 부채로 덥지 않게 부채질을 해주고 뒤로는 열대과일이 넘쳐나는 맛있는 식탁이 차려져 있는데 그 주변을 하와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서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펼쳐질 것처럼 여러 영화나 만화에서 그려낸 것을 본 적이 있어. 그런데 실제 가보면 아름답고 가볼만한 곳이긴 하지만, 소위 관광지로 꾸며진 민속마을을 제외하고는 그런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번화가와 상점과 호텔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또 하나의 관광도시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곳이 너무 아름다운 곳일 것 같아서 너무 가보고 싶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나누거나, 나중에 가게 될 사람들이 자기의 얘기를 듣고 실망할까봐 여행 중 좋지 않았던 경험은 쏙 빼고 좋았던 기억만 조금 각색해서 들려주는 얘기만 듣는다면, 나중에 막상 자기가 직접 가게 되었을 때 크든 작든 분명히 기대와 현실 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매년 가는 해외여행이라면 좀 크게 실망을 하더라도 내년에 다른 곳에 가면 될 테지만, 평생 꿈이어서 오랜 기간 적금을 모으고 한참을 고대하다가 간 여행이라면 속이 많이 상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그게 기대에서 조금 빗나가는 정도라면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을지 몰라. 만약에 사막여행을 하는 사람이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신기루를 평생 찾아다닌다면 어떻게 되겠니. 고생고생해서 거기에 가보면 거기에 있지 않고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면 아주 크게 실망하고 낙담하게 될 거야. 그래서 아빠는 만약에 여행지로 예를 들자면, 아빠가 그곳 전부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녀 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좋은 점, 나쁜 점을 전부 다 빼놓지 않고 있는 사실대로 말해 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마음먹었어. 지금 미리 불편한 얘기를 듣는 편이 세상에 없는 것을 평생 찾아다니거나, 애써 도달했지만 부푼 기대가 깨지며 ‘환멸’을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 말이야. 미안해 하윤아 이해해줘.
  그리고 꼭 하나 일러두고 싶은 말은, 이 얘기는 철저히 남자인 아빠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느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서 여자인 엄마와 하윤이가 바라보는 관점과는 많이 다를 수 있고, 엉뚱하고,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을 수도 있을지 몰라. 그러니 반드시 엄마랑도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서 균형 잡힌 시각이 되도록 보충하고, 특히 아빠가 남자라서 잘 헤아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나중에 하윤이가 커서 연애를 하면서 느끼게 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하고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변화에 대해서도 놀라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엄마와 터놓고 많은 대화를 나누도록 해라.

 분명히 좋은 것이 맞는데도, 다른 것을 기대하거나 너무 과하게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어. 얻을 수 있는 것을 기대하면 오히려 생각보다 더 좋을 수도 있을 거야.  
  

◎사랑은 운명일까?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기가 말을 알아듣기 전부터 수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매일매일 뽀뽀를 할 거야. 아기가 조금 더 커서 말을 좀 알아듣게 되면 그 말이 좋은 말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고 나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말인가 보다 생각할 거야. 좀 더 커서 공주님과 왕자님이 나오는 그림 동화책을 볼 나이가 되면 그 두 사람도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는데 그 의미는 엄마아빠가 나한테 해준 말과는 좀 의미가 다른 것도 같다고 생각할 거야. 좀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어 엄마 아빠가 남녀가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실 때 옆에서 같이 앉아서 보다보면 확실히 이건 다른 종류의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고 뭔가 근사해 보이고 나도 커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 같아.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봐도 확실히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부터 중학생 언니들 중에 이미 아이돌이나 배우에 푹 빠진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잖니. 아이돌 무슨 팀의 OO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아느냐 배우 △△오빠는 미소가 기가 막힌다는 둥 하면서 말이야.

 권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여자 주인공이 바삐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쳐 짐을 떨어뜨렸는데 미안하다며 떨어진 책을 주워주는 남자주인공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띠리링~’ 배경음악이 울려 퍼지고 둘의 눈에서 불꽃 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천 년 전에 사랑하는 사이였던 무사와 공주. 자신이 지키지 못해 죽고 만 공주를 천년동안 잊지 못하고 기다리며 살아온 무사 앞에 어느 날 환생한 공주가 나타나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공주. 하지만 결국 문득문득 떠오르던 이상한 기억이 자신의 전생임을 깨닫고 무사에게 달려가 안기며 다시 사랑을 이어가게 되는 이야기. 친구의 소개로 남자를 처음 만나게 된 여자, 둘은 인연이 아니었던지 서로 엇갈리고 오해만 쌓여 가는데, 결국 한참의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난 처음부터 결국 당신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 등.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 쯤은 봤을 법한 내용일 거야. 

 아빠도 마찬가지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배우고 꿈꾸기 시작하는 것 같아. 많은 제작진 분들이 애써주시고 또 다양한 편집기술들이 가미된 덕분에 우리가 보는 사랑의 장면은 참 아름답고도 감동적이게 그 ‘운명적’ 만남의 순간을 잘 그려내는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운명적[運命的]’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나오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나의 반쪽을 만나게 되도록‘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이고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랑이 언젠가는 나에게 찾아올 테니까 나는 묵묵히 일상을 열심히 살면서 기다리고만 있으면 되는 걸까? 하느님이 면밀히 잘 살피셔서 각각에게 맞는 좋은 배필감을 알아서 잘 보내주실 테니 걱정 안 해도 될까? 그럼 헤어지는 커플, 이혼하는 부부는 왜 그런 것일까? 운명적 상대가 아닌 애먼 사람을 자기가 잠시 착각하고 잘 못 알아봐서 그런 것일 뿐이지 결국 내 운명의 상대는 결국 나에게 오게 되어 있는 것일까? 아빠 대학교 때 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 우리가 대개 할부로 구매를 해서 100만원이 넘는 큰 금액을 한 번에 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구매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따져보고 연구해서 구매선택을 하느냐. 기술적인 면에서 S사 폰은 P라는 원천기술이 앞서 있어서 최신 A방식을 응용하고 XX액정을 이용해서 화면이 또렷하고 사진이 정말 잘 나오는데 L사는 어떠하고 I사는 어떠한데, 디자인 면에서 보면 역시 I사가 앞서가고 그립감도 좋은데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는 게 흠이고, 이번에 나온 이벤트 할인혜택까지 참고하고 앞으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들일 돈 등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아빠한테 OO카드를 신규 발급 받으시도록 해서 그 카드로 L사 폰을 구매하고 아빠한테 돈을 드리는 게 제일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야. 핸드폰, 노트북은 한번 사면 길어야 5~10년(3~5년?) 정도 쓸 텐데 우리가 배우자를 한번 정하면 헤어지지 않는 한 적어도 50~60년 이상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핸드폰을 살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검토를 거쳐 더욱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이었어. 듣고 있던 많은 학생 중에 상대적으로 나이도 많고 결혼도 한 아빠를 빼고는 별로 크게 공감하는 사람이 없는 듯한 눈치였어. 아마 속으로 ‘에이 교수님도. 어디 핸드폰 사는 것과 사랑할 사람을 고르는 게 같은 가요.’ 하는 마음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어. 뭐가 다를까? ‘운명적인’ 사랑, 즉 가슴으로 해야 하는 사랑에 대해 그렇게 분석적인 이성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에 대한 거부감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어. 그래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논하기 전에 사랑을 운명적인 것으로 놓아두었을 때 우리가 놓칠지도 모를 점에 대해 우선 얘기하고 싶어.   ‘운명적’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그 결정이 올바르고 나에게 알맞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 같아. 다 짜여 있는 일인데 내가 뭔가 관여할 바가 없는 거지. 그렇다면 값진 제품을 살 때와 같이 최적의 대상을 잘 가려내고, 비교하고, 평가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능에 대해 학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그래서 그냥 사랑을 운명에 맡기고 살아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이 바로 그 운명의 상대인가 보다 하고 사랑하다가, 혹시 헤어지게 되면 ‘아 그 사람과는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나보다.’ 혹은 ‘운명의 상대가 아니었나보다.’ 하고 사후적으로 깨달은 후 다음에 언제 올지 모를 운명적 상대를 기약 없이 다시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럼 인생의 50~60년을 결정할 일생일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서 자신이 수동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 같아.

 우리가 예외적으로 학습하지 않고도 잘 될 수 있는 것, 혹은 학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 싶어. 사랑은 운명적이기 때문에, 육아는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만 있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고 말이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잘하기 위해 가르쳐지고 학습되어 지는데 유독 이 두 가지만 그렇게 안 되는 걸까?      


◎누군가의 무엇을 좋아하는 것일까? 

 청소년기를 사춘기(思春期)라고도 하잖니. 여러 가지 정의가 있는데 대체로 몸의 생식 기능이 거의 완성되며, 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젊은 시절(13세~16세)로 보는 점은 공통적인 것 같아. 몸이 성적으로 성숙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데 이때 같은 반 친구 철수를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도 있고 아마 친구들이 알게 되면 “영희는 철수를 좋아한대요.♪♬~”하고 놀릴 수도 있을 거야. 이런 시기에 접하게 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경우는 ☞내가 어느 오빠를 좋아한다고 해서 놀릴 사람이 없어 이런 부담이 없고, ☞철수처럼 어린이도 아저씨도 아닌 괴상한 목소리를 내는 불완전한 성숙단계가 아니라 성적으로 완전하게 성숙되어 있고(=훨씬 남자다워 보이고), ☞얼굴도 잘 생기고 몸도 균형 잡혀 있는 데다가, ☞현실의 철수와 같이 이 사이에 고춧가루를 끼고 있거나 땀에 찌든 쉰 냄새를 풍기는 일 없이 항상 말쑥하게 잘 꾸며진 샤방샤방한 모습만 보여주는 상당히 매력적인 상대라고 볼 수 있겠어. 이 오빠들은 얼굴도 잘 생겼는데 노래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하고, 연기도 잘하고, CF속에서는 너무나 달콤하고 너무너무 완벽하고 좋은 거지. 실제 생활에서 좋아하는 상대라면 처음에는 우선 이런 근사한 겉모습에 끌려 호감을 가지게 되어 다가가지만, 그 사람과 이런 저런 일상을 함께 나누며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판단을 지켜보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가겠지. (※참고. 신언서판(身言書判) : 예전에, 인물을 골랐던 네 가지 조건을 이르는 말.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을 이른다.) 하지만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사랑하는 과정에는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서로 말과 생각을 나누는‘교감’의 과정이 차단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노래의 가사나, 연기속의 대사, 인터뷰에서 했던 말,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조합해서 자기의 생각 혹은 상상 속에서 우리 오빠는 이런 성격일거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일거야 하고 자기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하나의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서 그것을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럼 이 경우 우리는 그 아이돌 오빠를 좋아한다고 봐야 할까, 팬들에게 보여지도록 만들어진 이미지를 좋아하는 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아이돌 자체가 아닌 내가 만든 이미지를 좋아한다고 봐야 할까? 이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짝사랑도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어. 내가 멀리서 지켜본 그 사람은 일단 얼굴이 조각처럼 잘생겼고 이러이러한 말과 행동으로 봤을 때 인간성도 좋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난번에 무심코 나에게 던진 말과 그간 내게 했던 행동들을 잠자리에 누워 새벽 3시까지 4시간에 걸쳐 종합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그 오빠도 나를 좋아하는 게 확실한 것 같아. 그래서 오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사랑을 느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며칠 후 봤더니 순희한테도 잘해주고, 영희한테도 잘해주고 아무 여자한테나 친절하게 도와주고 미소를 흘리는 게 분명 바람둥이인 것 같고 평생 나만 보고 살아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2주 동안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설치며 고민한 끝에 내가 오빠를 진정 사랑하고 아낀다면 오빠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오빠를 그냥 보내주는 게 맞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눈물로 내 사랑하는 오빠를 보내 주는 거지. 여자에게는 굉장히 복잡한 심리적 갈등과 격정이 가슴 속을 한바탕 휘젓고 지나갔지만 정작 그 오빠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는 거지. 이런 과정을 겪은 여자는 사랑을 해 본 거라고 볼 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처음 해보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상대로 한 사랑이나, 짝사랑의 경우에는 ‘교감’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의 보이는 겉모습 너머의 실제 됨됨이를 실생활 속에서 ‘교감’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을 배우기에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볼게. 운명적으로 만난 두 남녀는 이내 소위 ‘불타는’, ‘불같은’, ‘열병 같은’ 사랑에 빠져들게 돼. 처음에는 그 사람의 눈을 보며 대화만 나눠도 너무 좋고 그 사람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 빠져드는 것 같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겠는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나와 너무 잘 맞고 말도 잘 통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이 사람이 너무 좋다고만 생각하다가 급기야는 24시간을 늘 함께하고 싶어서 먹고, 놀고, 구경하는 일상을 둘이 항상 함께 하면서 자기가 가진 생각, 경험, 관계를 하나도 빠짐없이 공유하려고 하게 되는 거지. 늦은 밤까지 데이트를 하고, 남자는 집이 의정부인데도 분당에 사는 여자 친구를 매일 데려다 주고 (반대로 여자가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잠들 때까지 핸드폰을 들고서 수도 없이 사랑한다는 문자나 말을 나누면서 말이야. 다음날이 되면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저절로 떠지고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다시 걸어서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문제없던 상대의 뻔한 안부를 다시 묻는데도 자다 깬 상대가 절대 짜증내거나 귀찮아하는 법이 한 번도 없는 거지. 이젠 사랑하는 것을 떠나 그 사람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단계가 되는 거야. 마치 이렇게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을 시작하면 반드시 더 깊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그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인 것처럼 말이야. 상대를 만나 이제까지 느껴본 적 없는 완전한 일체감을 느꼈다거나, 내 반쪽 찾았다거나, 평생내편을 얻었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 한쪽 사람이 좋아하는 마음을 처음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하기로 결정하는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이 좋아지는 데 까지는 그리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처럼 보여. 평소에는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대략 인간성도 좀 보고, 학력도 좀 보고, 경제력도 좀 보고, 성실성도 좀 보고, 사교성도 좀 보고 해서 전체적으로 대략 80점 정도는 넘겨야 일단 만나는 보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오던 사람도, 운명의 상대(자기 생각에)를 만나는 순간, 기존에 생각했던 채점표를 내팽개쳐 버리고, 때로는 그 사람의 수려한 외모에, 때로는 탁월한 패션센스에, 때로는 화려한 말솜씨에, 노래실력에, 부드러운 눈매와 따뜻한 미소에 ‘순식간에’ 빠져들어서, 평소에 그런 분야에 대해 생각해 두었던 배점 이상의 점수를 과도하게 주어서(10점 배점에 50점을 부여) 단숨에 총점이 80점을 넘게 만드는 게 ‘운명적 사랑에 빠져드는’ 방식이 아닌가 싶어. 간단히 말하자면 그 사람의 전체를 살피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기 전에 순식간에 그 사람의 눈빛에 반하거나 목소리에 반하는 식이 되는 거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는 평소에 생각해오던 평가 방식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아마도 제대로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것 같아.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마 그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서’ 만난다고 말할 것 같아. (소비자심리 중에 사람들은 실제로는 TV에서 본 광고모델이 마음에 들거나, 용기의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향이 좋아서 특정 샴푸를 구매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부차적 또는 비합리적 이유보다는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품질이 좋아서’와 같은 핵심적 요소 때문에 구매했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 스스로도 아마 그렇게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빠는 이런 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닌가 하고 생각돼.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은 상대의 많은 부분 중에서 자기 눈에 돋보이고 좋아 보이는 점을 중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게 되는 것 같아. 그 사람의 전체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 부분을 조합해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가지 생활을 함께 하면서 초반에 자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들도 이 사람에게 많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시간이 더 지나면 내가 처음에 봤던 점은 그 사람의 전체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그 사람을 전체로 보았을 때는 나와 잘 맞지 않는 부분 심지어는 싫어하는 부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깨닫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다가 만약 헤어지게 되면 왜 본인은 분명 전체적인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사귀었는데 이런 결과에 도달하게 된 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그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왜 자기한테는 이런 놈들만 걸릴까 하고 한탄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찌되었든 문제는 그 사람이 나의 ‘운명적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지-운명적 상대였다면 원만하게 계속 사랑이 이어졌어야 할 텐데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으니까- 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그 사람과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말이지.

 또 하나 신비는 연애 초기의 자신은 평소의 자신과는 다른 초인적인 인내심과 이해심, 의욕을 보인다는 거야. 약속시간이 지나 30분을 기다려도 화가 나지 않고, 상대가 다소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해명을 듣고 사과만 받으면 금세 이해가 되면서 눈 녹듯 마음이 풀리고, 한번 데이트를 위해 일주일간 검색을 해서 계획을 짜고 예약을 해도 전혀 힘들지 않고, 밤마다 반대방향에 있는 여자 친구네 집에 바래다줘도 힘들지 않는 거지. 여자도 영화에 나오는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처럼 남자의 말 한마디만 믿고도 몇 년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 사람이 하자는 일은 모든 것을 함께 하고, 그의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착한 여자로 다시 태어난 듯한 선량한 마음이 샘솟을 거야. 이러한 초능력이 그 기원이 되는 연애 초반에 상대에게 끌리며 느껴지게 되는 강한 호감과 함께 동반상승작용을 일으켜 더 불같은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 하지만 이 초능력은 시간이 지나고 소위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 오면 아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어. 사랑이 시들해진 후에는 초능력은 온데간데없고 냉정한 이기심만 남는다고 보면 돼. 약속시간에 조그만 늦어도 불같이 화를 내고, 운동복 차림으로 추레하게 데이트 장소에 나와서는 오늘 뭐할 거냐고 오히려 상대에게 되묻고, 간혹 여자친구가 오늘은 그냥 혼자 집에 들어갈 테니 바래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병든 닭 마냥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갑자기 무슨 로또 맞은 사람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없던 의욕이 갑자기 몸속에서 솟아나는 놀라운 변화를 짐짓 억누르고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어금니를 꽉 깨물어 잡아 세우면서 무심한 척 “어.. 그럴래?”를 외치게 되지. 그 상태가 되면 서로 변했다고 하면서 야속해 할 거야. 원래 없던 초능력을 잠깐 썼던 것뿐인데 상대는 초능력 상태일 때부터 만나기 시작했을 뿐이니까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원래 그리 되는 것이 자연스런 변화일지도 모르겠어. 누구라도 사랑이 식은 후에는 연애 초반처럼 행동하는 게 힘이 들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야.

 몇 가지 물음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사랑은 은근한 것 보다는 불같이 빠져드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왜 이렇게 불같은 사랑에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을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사랑의 기술』, 1.사랑은 기술인가? 중에서]

     

 왜 외로웠을까? 아마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인정과 사랑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아. 고차원적인 사랑을 1차원적인 식욕에 비유하면 좀 미안한 일이 될까? 너무 배가 고픈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우리도 너무 배가 고프면 우선 허기를 채우는 게 급선무이니까 어떤 것으로든 우선 빨리 배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야. 음식의 종류가 무엇인지, 재료가 신선한지 그저 그런지, 온도가 알맞은지, 간이 알맞은지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우선 가까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집어넣는 게 우선일거야. 그래야 당장 괴로운 허기를 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배가 조금 고픈 정도라면 어떨까? 잠깐 상을 둘러보고 위에서 말한 음식의 평가기준에 더해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중심으로 배를 채워 나가도 될 거야. 배가 거의 고프지 않지만 식사 시간이 되어 하는 거라면 처음부터 아예 무엇을 먹을지 찬찬히 계획을 짜서 먹을 수도 있겠어. 음식의 맛과 영양을 넘어서 일전에 건강관련 서적에서 본 나는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내 체질’을 감안해서 맛이 좀 덜하더라도 몸에 잘 맞는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야. 오랜 기간 외롭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말할 상대조차 없어서 괴로웠던 한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자기에게 따뜻한 사랑과 행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상대가 나타났는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상태로 앉아 안경테를 추어올리며 ‘어디 어떤 사람인지 찬찬히 한번 뜯어볼까?’하고 여유롭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따뜻한 미소를 띤 채로 내 얘기만 들어줘도 눈물이 줄줄 날 지경인데, 그 안타까운 심정을 억누르고 의심의 눈으로 우선 검증부터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그토록 나에게 간절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왜 변한 것일까? 변한다는 건 상태의 변화가 있다는 말이겠지. 원래 A였는데 B가 되었다는 것처럼 말이야. 연애과정에서 후반에 가면 변했다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 예를 들어 ‘연애 초기-친절&달달한 사람’에서 ‘연애 후기-불친절&무뚝뚝 사람’이라면 맞을 것 같아. 그런데 그 시점을 좀 더 늘여서 나와 만나기 전의 그 사람까지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연애 전-불친절&무뚝뚝한 사람’, ‘연애 초기-친절&달달한 사람’, ‘연애 후기-불친절&무뚝뚝 사람.’ 이렇게 보면 사실 그 사람의 전체 상태에서 변했던 순간은 오히려 연애 초기이고 아마 그 이유는 그 때만 나오는 초능력 때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패턴의 변화가 비슷하게 나타날 것 같은데, 우리가 유독 자신의 연애 상대자에게서만 이런 식의 변화가 일어나지 말고 연애초기의 상태가 지속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에서는 불같은 사랑에 빠지는 강렬한 달콤함만이 나와 있지만, 현실에서는 매번 변해버리고 마는 상대에게 사랑의 배신만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왜 그럴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노력이 필요해. 안 그러면 매번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게 될 수 있으니까.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수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나서 현실 속의 내가 아이언맨이나, 헐크 같은 초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데, 멜로 영화 속의 운명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점에는 왜 그렇게 크게 실망할까? 어차피 두 가지 모두 지어낸 허구일 뿐인데 말이야. 아마도 초능력을 부리는 사람이라곤 이미 속임수라고 알려진 마술사 빼고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원래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는데, 진정한 사랑은 해본 듯도 하고 들어본 듯도 하고 될 것도 같아서 그럴까? 될 듯 말듯하지만 암튼 쉽게 찾기는 어려운 것 정도로 해두자.   

 아빠가 꼭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일구고 개척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이 ‘운명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하고, 나아가 운명적인 것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는 거야.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어서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학습하고 훈련해서 개척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뚜렷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야. 또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청소년기에 한두 번쯤이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교감’이 없는 일방적인 사랑도 사후에 ‘학습 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거야. 그래서 있지도 않은 것이거나 도달하기 힘든 형태의 사랑을 찾다가 ‘환멸’을 느끼는 것 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같은 책처럼 도대체 남자랑 여자는 어떻게 다른 건가 하는 점부터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기를 추천해 주고 싶어.

 그럼 건강한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①부모님의 충분한 사랑. 사랑이 고프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아빠 생각에는 가장 중요하고 출발점이 되는 첫 단추는 부모님(혹은 부모님 이외의 가족으로부터)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은 받았는가 하는 점일 것 같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양을 주는 것이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과 여건이 다르고 아이가 얼마나 독립성이 강한지에 따라 다를 것이기 때문에 한가지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 역시 식욕에 비하자니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데, 예를 들어 영희는 아침에 집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고 해보자. 우연히 먹자골목을 지나치게 되더라도 맛은 있겠지만 당장 배가 고픈 것은 아니니 한 발짝 떨어져서 그걸 바라 볼 수 있을 것 같아. 저건 맛은 좋겠지만 재료의 질보다는 양념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이고, 저건 며칠 전부터 진열되어 있던 것을 아직도 팔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신선도가 좋지 않을 것 같고, 저건 맛도 좋고 재료도 괜찮아서 어쩌다 한번은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먹을 수는 없는 음식이겠구나 생각하며 끝까지 다 둘러본 후에, 만약 돌아오는 길에 이 골목에서 밥을 먹는다면 늘 비슷하고 안정적인 맛을 내는 가정식백반을 먹어야겠다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반면 순희는 아침에 늦잠을 자서 아침을 못 먹고 나왔다고 해 보자. 목적지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잘 할까 궁리하는 것에 앞서 얼른 어디 가서 요기라도 좀 해야겠는데 배고파서 못 참겠네 하면서 길을 가게 될 거야. 먹자골목에 들어선 순희는 ‘세상에 이런 지상천국이 있나!’하면서 정신없이 둘러보겠지.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음식냄새가 마치 낚시 바늘인 양 순희의 코를 꿰어 잡아끄는 대로 이집 저집 기웃거릴 거야. 하지만 아마 먹자골목을 끝까지 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초입에 있는 몇 가게 중에 골라서 우선 급한 대로 허기부터 채우자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할 것 같아. 우선 고픈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니까 그게 제일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인지, 재료가 좋은지, 값이 합리적인지를 다 따져보고 선택할 여유가 없기 십상일거 같아.

 아빠 생각에는 사랑을 찾아 떠나는 먼 인생 여정에서 부모의 사랑은 이 아침밥과 같은 역할이 될 것 같아. 아침을 든든히 먹은 사람은 주변에서 핀잔을 좀 주더라도 이성 짝이 없는 현재의 상태를 불완전하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긴 ‘모쏠(모태쏠로), 혹은 이성친구가 없는 쏠로’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굳이 조급하게 상대를 찾으려고 서두르지 않을 것 같아. 반면 아침을 든든히 먹지 못한 사람은 늘 어딘가 가슴이 헛헛하고 빈 듯해서 그 허전함을 채워줄 내 반쪽, 평생내편을 늘 찾아다니는 중이라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살피는 검증절차를 자기도 모르게 좀 더 간소화하거나 생략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성 짝이 없는 상태나 모쏠에 대해서도 좀 더 사람의 불완전한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연구논문에 따르면 아빠와 친밀도가 높은 여자 자녀일수록 이성과 성관계를 처음 갖게 되는 연령이 늦어진다고 해.       


 아버지와 성인 딸의 관계를 지지하고 격려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성인 여성이 성과 낭만적인 관계(연애 생활)에 관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Timothy Rarick이 이 블로그에서 설명한 대로:     

....  어린 소녀의 성적 발달은, 성적인 결정을 내릴 때의 길잡이 역할로서 바탕이 되는 신경 및 정서적 발달을 크게 앞지를 수 있습니다. (정신적 성숙보다 육체적 성숙이 더 빨리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봐야할 듯함.)     

 아버지의 개입은 조기 성행위, 10대 임신, 데이트 폭력 및 위험한 성행위와 같은 다양한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완충 역할을 제공합니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열린 의사소통, 신뢰, 높은 수준의 접촉을 기반으로 할 때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는 더욱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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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e of the reasons that father and adult daughter relationships should be supported and encouraged is to help young adult women make better decisions concerning sex and romantic relationships. As explained on this blog by Timothy Rarick:     

.... A young girl’s sexual development can significantly outpace her neurological and emotional development—the very resources needed to guide her sexual choices.     

Father involvement provides a buffer to a variety of negative outcomes, such as early sexual initiation, teenage pregnancy, dating violence, and risky sexual behavior. In particular, when father-daughter relationships are founded on open communication, trust, and higher levels of contact, these negative outcomes are further redu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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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5, 2019 

How Fathers Influence Their Daughters’ Romantic Relationships

by D. Scott Sibley, @DSCOTTSIBLEY Katie Granger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는 성관계, 임신, 연애에 대한 너무 큰 기대와 의존 등등 모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골목 초입의 몇 가게의 음식들을 적당히 살펴본 후, 충분치 않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허전한 가슴을, 얼른 이성교재로 채우려고 하는 성급한 마음에서 생기는 일들이 아닐까 싶어. 이런 생각에서 아빠는 하윤이랑 얘기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안아 주고, 뽀뽀도 더 많이 하며 살려고 열심히 하고 있는 건데 하윤이는 어떠니? 싫으니? ㅋㅋ      


②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빠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효소와 기질이라는 용어에 대해 좀 소개해 볼게. ‘효소(enzyme)’는 생물체 내의 화학반응에 관여하여 촉매(간단히 반응을 활성화 시키는 물질이라고 할게.) 역할을 하는 큰 단백질 분자를 말하고, ‘기질(substrate)’은 효소의 촉매 과정에서 효소와 결합하여 반응하는 물질을 말해. 예를 들어 우리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amylase)라는 효소는 탄수화물이라는 기질을 분해하고, 리파아제(lypase)는 지방을 분해하고, 프로티네이즈(proteinase)는 단백질을 분해시킨다고 해. 이렇게 특정 효소는 각각 특정한 기질하고만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런 특성을 ‘기질특이성’이라고 불러.

[다음백과사전, 학습용어사전 생명과학2 | 천재교육 편집부]

  그 다음 설명할 용어는 ‘유도적합 모델(induced fit model)’이야. 효소와 기질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으로 효소와 기질이 결합하는 방식을 살펴보니 효소는 자신과 짝이 되는 기질에 노출되면, 기질과 결합할 수 있도록, 효소의 결합부위에 원래 형태에서 모양을 바꾼 활성부위가 생겨난다는 가설이야.  

 다음 내용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생물] 내용을 좀 가져왔는데 혹시 오히려 이게 더 어려웠니? ^^; 미안. 다시 본 얘기로 돌아가 볼게.

 누군가를 사귀려고 할 때, 제일 먼저 스스로 해보아야 할 질문은 그 사람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부모님은 많이 주셨는데 자신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까-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일 것 같아. 늘 가슴 어딘가에 공허한 느낌이 있고 그 부분이 누군가와의 사랑으로 채워지면 충만감이 느껴질 것 같은지 아닌지 말이야. 굉장히 어렵고 뚜렷하게 수치로 환산하기도 어렵지만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친구 사이 혹은 연애 상대에게 자기가 기대해 왔던 것, 충족되지 않아 불만이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천천히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이 공허감 또는 충만감의 정도에 따라 자신이 만나게 될 연애 상대에게 원하는 ‘사랑의 크기’ 또는 서로간의 ‘결속의 강도’가 결정될 것 같아서 말이야. 만약에 자신에게 어딘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는 면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침밥을 굶은 상태여서 급히 요깃거리를 찾고 있는지, 허겁지겁 빨리 찾아서 먹기 바쁜지, 아니면 그것을 잘 살피면서 찾고 있는지를 남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그 다음은 자신의 성향에 관한 문제일 거야. 대인관계에서 주도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지 그냥 누가 앞서가면 따라가는 게 편한 사람인지, 정치/철학/종교 등에 관해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과 있는 것이 편한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오래 같이 지내도 불편하지 않은지, 시간/돈/일처리/정리 등을 계획적으로 정확하게 말끔히 하는 게 좋은지 너무 틀에 박혀서 피곤하게 살지 않고 그냥 그때그때 편안하게 자유롭게 하는 게 좋은지, 인생 한번 치열하게 사는 게 좋은지 좀 즐기면서 느긋하게 사는 게 좋은지. 당연히 어느 게 더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 성향이 다르게 만날 경우 한 쪽은 속이 터져 하고 한 쪽은 왜 사람을 이렇게 피곤하게 들볶느냐고 할 수 있어서 말이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단 내가 어떤 특징을 가진 어떤 모양의 효소인가(나)를 알아야 나랑 결합할 기질(상대)을 찾아 나설 수 있지 않겠니?     


③그런 나와  맞을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참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행히 살면서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보고 생각도 많이 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좀 알아냈다고 하자. 그럼 이제 나도 상대도 모를 때 보다는 맞는 짝을 찾기가 조금은 쉬워 질 것 같아. 일단 내가 탄수화물 분해 효소인데 지방이나 단백질 중에서 내 짝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되겠지. 일단 탄수화물 중에서 물색을 할 텐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할 때 들여다봤던 항목들로 상대를 한번 들여다보고 일정 기준선을 넘어서면 한번 만나보는 거야. 그런데 위에 말했다시피 막상 만나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다른 면이 보일 수도 있고 좋았던 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겪다보면 그 점이 오히려 별로일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거야. 이런 스타일의 사람은 이러이러한 장점과 단점이 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을 테고. 번거롭겠지만 이 경험을 검증 프로그램에 다시 반영해서 다음번에는 이러이러한 스타일의 사람을 찾기로 하고 그 사람을 저러저러한 방식으로 검증하겠는 식으로 학습 회로를 계속 돌려나가는 거야. 그렇게 반복적으로 해 나가다 보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한번 사귀다가 헤어지게 되어서 그냥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하고 잊어버리는 방식보다는 나에게 맞는 상대를 더 잘 가려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중요한 점은 그래서 하윤이랑 생각과 행동양식이 똑같은 사람을 찾아내서 만나라는 말이 아니라, ‘유도적합 모델’처럼 평소에는 다소 다르게 살아왔지만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생각, 가치, 생활양식이더라도 그것을 큰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기꺼이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개방성과 유연성이 있는 사람이어서, 새로운 변화를 통한 서로간의 결합이 무리 없이 지속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말이야. 단 주의할 점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탄수화물 중에서 그런 개방성/유연성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얘기지 단백질, 지방인데 될 것 같다 싶은 것도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야. ‘초능력 기간’에는 채식주의자가 고기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극적 변화가 가능한 시기이니까 이걸 보고 오해하면 절대 안 돼. 어찌 보면 상대의 변화가 그 초능력 기간을 넘어서까지 유지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구나.     


④그 사람과 어떻게 하면 큰 어려움 없이 교감을 나누고, 신뢰를 쌓고, 사랑을 가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사람마다 개성이 있고 취향이 달라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떤 게 좋겠다고 아빠가 일러주기는 어려울 거 같아.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존중하는 마음’이 있느냐하는 점이라고 생각해. 3.5 사회적 관계에서 했던 호랑이와 토끼가 친구가 된 얘기 있었잖니. 서로 사랑하고 잘 하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이 원하는바’가 아니라면 해주는 사람은 실컷 애쓰고도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야속하고 서운할 테고, 받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계속 받으려니 참 고역일 테고 정작 원하는 바는 매번 받지 못하니 역시 속이 상할 거야. 

 여자라는 사람은 어떤 때에 감동하고 어떤 때에 존중받지 못하다는 마음을 느끼는가? 남자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건가?  그러한 여자 중에 또 우리 영희는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이고, 그 많은 남자 중에 또 우리 철수는 어떤 특징을 지닌 사람인가?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알아가며 학습하려는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은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온 여자 친구에게 바닥에 앉아서 먹는 감자탕집에 가자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 가능성을 보고 몇 번은 더 만나 봐도 괜찮을 것 같아. 

 운명적인 것의 반대말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그 만들기에 참여할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에게 맞는 상대는 어떤 사람일지 잘 알아보고 선택하고,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서로 합심해서 공부나간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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