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듣지않는 남자, 지도를읽지못하는 여자] 1/4

함께 책 읽기 ⑱ - 말않남 지못녀, 앨런 피즈 / 바바라 피즈

by 정채환

■ 읽게 된 계기

다양한 인생의 지혜를 알려 주셨던 회사 선배분이 추천해 주신 책이다. 아내와 딸 그리고 할머니까지 세 명의 여자와 근 20년간 함께 살아와서 '이제는 저도 거의 여자나 마찬가지'라고 우스개로 스스로를 소개하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부분,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남녀가 달라도 참 다르고 그런 사실은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접하게 되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 감상 및 추천

"나는 내 여친(우리 집사람)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

"글쎄 우리 남친(남편)이 이렇게 저렇게 말(행동)한 거 있지." "어머머, 세상에 웬~일이니. 미친 거 아니니?"

우리들에게 참 익숙한 말들이다.


▶ 정말 맛있는, 감자탕 vs 베이글

[하윤이에게 알려 주고 싶은 이야기] <3.5 사회적 능력>에서 호랑이와 토끼가 서로 친구가 된 얘기로 설명했었다. (https://brunch.co.kr/@2f5d6d1cad1247c/9) 새로이 친구가 된 호랑이가 애써 잡아다 준 사슴을 토끼가 먹을 리 없고, 토끼가 어렵사리 골라다 준 연한 새순을 호랑이가 즐길 리 없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전에, '그/그녀도 나 같으려니' 하고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다.

고기와 야채와 국물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감자탕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와 딸이 이해되지 않았다. 쫀득한 식감에 씹을수록 고소한 베이글 맛을 왜 모르냐며 그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크림이나 팥이나 꿀이 들어있으면서 부드럽고 달고 맛있는 빵도 많은데, 굳이 속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식감은 마치 종이 박스를 씹는 것 같은 그 빵을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해도 나는 다시 먹고 싶지 않았다.

나와 다른 그/그녀의 사고방식, 생활양식, 기호 등을 이상하게만 여기는 것이다.


▶ 음식 기호만 다를까?

아내는 쥴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영화, 멜로 드리마를 좋아한다.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중간에 옆자리에 앉으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야" 하면서 이 사람은 누구, 저 사람은 누구, A와 B는 무슨 관계, C와 D 사이에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등등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사건을 (요청하지 않았으나) 소상히 설명해 준다. 딸아이는 날 보고 싸우고 사람 죽이는 영화 좀 그만 보라고 한다.

지루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해도 매번 들켜서, 뾰로통해져 돌아와서는 "자기랑 앞으로 쇼핑 안 가."라고 짜증 내던 아내. 박물관 구경이나 놀이기구 탑승을 마치고 나오면 붙어 있는 기념품 점에서 이것저것 다 살펴보고 만져보고 지나가길래 "너 그거 살거니?"라고 물으니 "아니 그냥 구경하는 건데요. 왜요?"라고 의아해하며 대답하던 딸.

2박 3일 정도의 여행이라면 나는 30분 내에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을 쌀 수 있지만, 두 여자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옷을 다 꺼내온 건지 싶게 옷을 늘어놓고, 첫날은 날씨가 어떻고 기온이 어떠니 이걸 입고, 저걸 신고, 이걸 쓰고를 자정이 지난 시간까지 한다. 옆에는 내가 꺼내온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서 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와 존중하는 마음

서로 사랑하고 잘하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면 해주는 사람은 실컷 애쓰고도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가 야속하고 서운할 테고, 받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계속 받으려니 참 고역인 데다 정작 원하는 바는 매번 받지 못하니 역시 속이 상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공통된 기본 요소로 보호, 책임, 지식, 존경을 꼽았다.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그/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은 공허하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라고 했다. 그/그녀를 보면 좋고 설레는 내 마음에 풍덩 빠지는 것 말고, 상대를 찬찬히 잘 살피고 더 깊이 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수용하기로 결심이 섰다면 나와 다른 상대의 생각, 생활방식, 취향,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 미리 잘 알았더라면

좁히기 힘든 간극을 가진 사람과 그걸 좁혀보겠다고 힘들게 씨름하고,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소모적인 시간을 좀 덜 가져도 됐을 것 같다. 왜 내 남자는 이다지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좀 덜 섭섭해 해도 됐을 것 같다. 어차피 같이 오래 살아야 할 부부끼리 돌이킬 수 없이 깊은 상처를 주고 서로 포기하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서로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냥 참고 : MBTI에서 J와 P.

만약 결혼을 생각하는 사이라면 각자의 MBTI에서 마지막이 J인지 P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부부관계를 통상 '우호적인 파트너' 관계라고 평가하는데, 결혼을 해보면 이 삶은 연애와 달리 다양한 과업을 공동으로 수행/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임신/출산/육아, 교육, 재테크, 이사, 손님 치르기부터 작게는 매일매일의 식사, 청소, 빨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까지 거의 모든 게 같이 힘을 합쳐서 해야 할 일들이다. 이것은 마치 2인조 조별 과제를 함께할 파트너를 뽑는 것이었는데 잘못 알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조별 과제 파트너를 고를 때 잘생기고 예쁜 사랑하는 사람을 고르지는 않지 않나. 조별 과제에서는 J가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큰 데, 부부간에는 J가 좋다 P가 좋다 보다 나를 중심으로 이 방면의 특성 차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을 고르는 편이 갈등의 가능성을 많이 줄여주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극 J와 극 P는 다툴 일이 많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 문제는 1시까지 가야 하는 결혼식장에 도착하기 위해 몇 시에 집을 나설 것이냐, 밥상을 치우고 디저트를 먹을 것이냐 그릇을 살짝 옆으로 밀어놓고 먹을 것이냐, 여행 다녀온 가방을 언제 풀 것이냐 등 셀 수 없이 많은 순간에, 끊임 없이 발생한다.


▶ 한 끼 못 먹을 것도 없다.

왜 이런 걸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억지로 같이 하는 건 몹시 괴로운 일이지만, '내 여친(남친)이 그렇게 원한다는데' 혹은 '내 딸(아내)이 저렇게 좋다는데' 하고 생각하면 또 사실 못 할 것도 없다. 그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면 나에게도 딱히 나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흐뭇한 일이다. 여전히 즐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브런치 먹자면 브런치도 먹고, 베이글도 먹고, 크림파스타도 먹을 수 있다.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은 막상 해보니 적성에 상당히 맞는다는 것을 진작부터 깨달았다.

그(그녀)도 나에게 그러듯이 즐거운 일이다, 양보하는 일이다 생각하고 하면 또 할만하다. 사랑하고, 함께 산다는 것은 이해하고 양보하는 일이다.

그게 너무 힘들면 헤어지거나 혼자 사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다.


이 책은 너무나도 다른 남녀가 왜 그리도 다른지를, 진화 과정에서의 성역할과 뇌과학과 호르몬 등을 가지고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세부적인 예시와 상황 묘사가 이건 정말 내 얘긴가 싶을 정도로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잘 읽어가다가 결론 부분이 심하게 시대에 동떨어진 것 같아 찾아보니 첫 출간이 1998년이었던 것이다. 책 초반부터 줄기차게 얘기해 온 '현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의 오늘이었던 것이다. 결론 전체를 읽으면서 들었던 석연찮은 기분은 너그럽게 날려버리고, 일부분만 남겨 요약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 존 그레이

: 사랑/연애 분야의 입문서로 다른 책들을 읽기 전에 먼저 읽도록 오랜 기간 많은 친구, 후배들에게 추천해 왔던 책이다. 일단 '서로 매우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이라는 점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같은 지구상의 인류가 아니라 서로 각각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끼리 만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제목을 잡은 듯 보이고 그것이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첫째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둘째 어떻게 다른 지를 알아가려고 노력할 때, 서로 간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오해와 섭섭함, 불만이 줄어드는 보다 슬기로운 연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이번에 소개하는 [말않남 지못녀], [섹스의 진화], [이기적 유전자]가 육체적, 동물적, 호르몬적, 뇌과학적, 유전적 목적 등의 비정신적 관점에서 사랑과 연애를 다룬 책들이라면, 이 책은 다분히 정신적 관점에서 사랑을 다룬 책이다. 의존적, 수동적 인간이 되어서는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점, 참다운 사랑의 의미, 속성, 실천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위 책들과 함께 읽으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함께 책 읽기 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참고

https://brunch.co.kr/@2f5d6d1cad1247c/20


▶ [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

: [사랑의 기술]이 운명과 감정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사랑에 기술과 훈련의 개념을 도입했다면, 이 책은 그것을 인간의 동물적 특성과 본능의 관점에서 풀었다고 볼 수 있다. '7. 섹스어필의 진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고자 하는 목적' 관점에서 성을 다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읽으면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다움'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잠깐 들 수도 있겠다.

[함께 책 읽기 ⑪ - 제레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 참고

https://brunch.co.kr/@2f5d6d1cad1247c/43


▶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 모든 개체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고 유전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진화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섹스의 진화]와 함께 읽으면 동물과 구분되는 순수한 '인간다움'이란 어느 부분이며 과연 그것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유전자(gene)에 의해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에 대비해, 문화적으로 전승되는 요소들을 밈(meme)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는데, 어느 날 TV를 보니 예능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자연스럽게 두루 사용하고 있어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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