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나이대로 아이를 보아야 잘 성장할 수 있다.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는 시대별로 많은 변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그 변화가 피부로 다가온다. 특히 1학년 아이들을 맡으면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와 육아 방법의 변화가 크게 느껴져서 나 역시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고민을 한다. 고여있다가는 썩기 마련이기 때문에 변화의 물결을 느끼면서 중심을 잡고자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 부모 입장 또는 아이 입장에서는 믿기 어렵겠지만 한때 영유아는 단순히 어른의 소유물로 여겨졌다. 또는 집안의 작은 노동자로 역할을 요구받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아동의 권리는 급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한동안은 존중이 지나쳐서 아이를 작은 성인으로 즉, 어른의 축소판으로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부모는 그리고 교사는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현시점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사실 많은 존중을 받는 한편, 마땅히 누려야 할 "어린이"라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서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는 그냥 “아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작은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 작은 어른이라 생각하면 존중은 받을 수 있겠지만 그 나이에 누려야 하는 어린이다움은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나이에 따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요구해야 할 사회적 태도와 의무의 무게감도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에 따라 지켜주어야 하는 아이의 세계가 있다. 아이를 그 나이 아이로 보아야 우리 아이가 아이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또 균형 있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나도 많은 시행착오가 겪었다. 말을 잘 듣는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가 이해한다고 믿으면서 한참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기를 잘했다.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아이였기에 대접해주면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많은 태도를 갖추길 은근히 바랐다. 그 은근함은 때론 압박으로 다가갔기에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 때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만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고 동하지 않아요. 그래서 행동으로 옮길 수 없어요."
그때는 그 말이 반항의 시작이라 느꼈다. 아니, 머리로 이해가 되면 할 수 있지 않은가 하면서 답답해서 더 닦달했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나에게 어깃장을 놓는 것이라 생각해 더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아이가 크면서 많은 시간 동안 방황하다가 한참 후에 알았다. 독서를 많이 해서 이해력이 좋을 수는 있지만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무겁고 턱없이 어려웠다는 것을 말이다. 작은 어른으로 대하면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을 행하기까지 하라고 요구하는 내가 얼마나 독단적인 사람인가에 대해 알고 나니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은, 그때 응당 누려야 하는 아이다움을 나는 침범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 컸다고 생각될 때도 우리 아이가 아직 그 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잘하는 아이일수록, 어른의 요구에 따라 잘 움직이는 아이일수록 깊이 보면서 그 나이의 아이를 찾아내서 그 세계를 지켜주어야 한다.
어릴수록 아이는 단순하게 사고한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혼나는 일이더라도 쉽게 인정하고 혼나고 나서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안기는 것이 맞는 행동이다. 혼나지 않기 위해 복잡하게 생각을 한다면 사실 우리 아이의 마음은 뭔가 복잡하고 불편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어른인 부모나 교사가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복잡한 사고를 하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그 나이대의 아이로 바라보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이는 어릴수록 많은 잔소리와 걱정을 뒤로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뛰어다니며, 질서를 쉽게 어기기도 하며 눈치 없이 장난을 많이 한다. 반복되는 잘못에 우리 아이는 언제 철이 들려나, 언제쯤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지 한다면 이미 아이를 그 나이로 보지 않기에 마음이 답답한 것일 수 있다. 아이를 아이 나이대로 보고 그 나이에는 그럴 수 있음을 느낀다면 사실 답답하지는 않다.
반면 우리 아이는 벌써 “그 나이”일 수 있다.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나이에 맞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 학습적인 부분이 아니라 생활 면에서 홀로 서야 한다. 스스로 밥 먹고 알아서 씻는지, 집안일 한 가지는 책임지고 하는지, 단추를 잘 잠그는지, 옷 정리를 잘하는지 혹은 어린아이처럼 대하면서 다 해주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야 한다. 아직은 어리다고 부모가 어른이 생활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은지도 봐야 한다. 그런 경우, 머리가 클 수 있어도 몸의 세부적인 성장이 느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아이가 점점 더 독립적으로 주도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등을 떠밀어주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꾸 혼자 해보게 한다면 스스로 하고자 하는 힘은 더 길러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실 어른인 부모의 기준에 맞추어서 성장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습적인 면이나 생활적인 면에서 아이를 그 나이의 아이로 바라보는 기준이 같다면 좋겠지만 사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살인데 아직도 안 되는 것일까?' 또는 '아직 어린데 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황에 따른 또는 어른의 편의에 의한 변동 가능한 이중잣대는 아이의 고른 성장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8살이라면 정말 8살로 봐주어야 한다. 그래야 8살 아이가 그 아이 마음에 남아서 외로워하지 않는다. 삶의 모든 면에서 균형적으로 아이를 그 나이대로 생각해주지 않거나 바라봐주지 않으면 그 나이대의 아이는 그대로 자라지 못한 채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지금의 자신의 나이를 누리면서 독립적으로 혼자 서기 위해서는 어른의 균형적인 잣대, 아이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그 나이의 아이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정말 중요하다. 나에게 오늘도 묻는다.
'당신, 아이를 그 나이대로 보고 인정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