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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호 Aug 12. 2024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여정

삶은 수많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은 성공을, 어떤 선택은 실패를 가져오지만, 모든 선택은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최근 두 번의 산행에서, 나는 선택과 결단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난주, 큰재부터 신의터재까지 이어지는 11구간 산행을 계획하면서 일기예보를 확인했더니 비가 온다고 했다. 우의를 넣었다 뺐다 하다가, 배낭이 무거워도 비에 대비해 우의를 챙기기로 했다. 다행히 산행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안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이번 12구간 산행을 준비하면서 전날 배낭을 꾸렸지만, 아침에 출발할지 망설였다. 최근 독감에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백두대간 완주를 위해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단체로 하는 백두대간 산행에서 빠지면 이동이 불편해 이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빠지지 않기로 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허리다. 이번 산행은 신의터재에서 시작해 무지개산과 윤지미산을 지나 화령재, 봉황산, 비재, 못재를 거쳐 갈령으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총 24.56킬로미터의 도상거리에 봉우리와 재가 많아 힘든 구간이다.     

산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은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연시는 상주 곶감의 맛을 새삼 깨닫게 했다. 윤지미산을 지나 화령재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봉황이 날개를 쫙 펼친 듯한 봉황산까지 4.6킬로미터를 오르며, 처음에는 산이 작게 느껴졌지만, 점점 산이 커지고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뭇잎이 떨어져 길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늦가을 산은 거짓 없이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추워지면 옷을 껴입고 자신을 감춘다. 늦가을 산은 길을 잃기 쉽지만, 상주에는 백두대간 안내 표시판이 잘 정돈되어 있어 길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을의 깊이를 더해줬다. 봉황산 정상에서 갈령삼거리까지는 7킬로미터를 내려가야 했다. 함께 걸었던 동료가 중도에 빠져나가자, 후미를 맡고 있는 나는 더 큰 부담감을 느꼈다. 멀리 속리산이 보였다.     

산은 계속해서 나를 시험했다. 비재에서 가파른 산을 오르며, 아픈 몸으로 산행을 결심한 내 선택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갈령삼거리 표지판이 보이자, 희망이 생겼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랜턴을 켜고 길을 찾아 내려갔다.     

올해 목표는 풀코스를 여덟 번 완주하는 것이다. 2002년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42.195킬로미터를 2004년 한 번, 2005년 한 번, 2006년 두 번, 2007년 두 번, 2008년 다섯 번, 2009년 여덟 번 완주했다. 주변에서는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돌이켜 보면 과정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무릎과 발목, 발가락까지 부상을 겪었지만, 나는 견뎌냈다. 속도보다 올바른 방향과 지속적인 노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산과 길은 내게 멘토 같은 존재다. 길을 걷고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매력을 느낀다. 내 옆에 있는 이판사판 님과 꼬깨비 님은 산을 좋아한다. 마라톤에 도전해도 충분할 것 같다고 말해도, 그들은 달리기보다는 오직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이판사판 님은 몇 달 전에 백두대간 산행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왜 좋은지 묻더니, 지금은 산에 푹 빠져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책,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가 떠올랐다. 사십 대 중반의 폰더는 직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회사가 부도나면서 어려움이 닥치자,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역사 여행을 통해 폰더는 솔로몬, 링컨, 트루먼 대통령, 안네 프랑크, 콜럼버스, 체임벌린, 가브리엘 등 위인들을 만나 삶의 희망을 찾는다.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며, 나는 새벽을 깨우며 그를 만났다. 앤디 앤드루스는 『폰더 씨의 위대한 결정』에서 ‘역경은 위대함으로 가는 예비학교’라고 했다. 이 책은 내 삶을 내 의지로 바꿔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10월, 7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하며, 남은 삶의 찬란함을 위해 신발장을 비워냈다.    

 

              신발장을 비워내며     

                                                                                 최경호

뾰족구두도 단화도 털 부츠도 실내화도 조깅화도 등산화도 장화도 샌들도 

신발장 속에서 겹겹이 무동을 타고 있었다     

진흙이 묻어있고 땀 냄새도 나고 비에 젖고 토악질로 분탕질하고 

한쪽이 닳아 낡은 것은 걸음걸이를 절뚝이게 하고 

새것은 낯설어 버둥거리게 하였지만  

신발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한 채 저마다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궁리 끝에 

찬란한 生을 위해 신발장을 비워냈다     


드디어 갈령삼거리가 보인다는 환호가 들렸다. 힘을 내어 달려갔다. 갈령삼거리 표지판이 선명하게 서 있었다. 어둠이 산을 덮었다. 랜턴이 없는 동료들은 조심스레 길을 찾아갔다. 멀리서 “안산”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내려간 이들이 후미의 일행을 찾는 목소리였다. 10시간 넘게 산을 걸으며 몸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오늘의 산행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삶의 선택과 결단도 이와 같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백두대간 완주를 향한 나의 결단은 삶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해주고 있다. (12차, 신의터재 - 봉황산 - 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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