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가족 22 - 찌꺼기

중년 남자의 잡생각

by B 밀


로션을 바르지 않는다.

태어나 지금까지 로션을 발라 본 적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얼굴에 묻는 끈적임이

그렇게 싫을 수 없다.

스킨로션 역시 마찬가지라

알싸한 느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혼 초,

와이프가 관리해야 한다며 남성용 로션을

두어 번 사온 적이 있는데,

사 온 성의를 봐서 한 두 번 바르다 관두니,

그다음부터는 아예 사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름 피부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20대 때는 얼굴에 여드름을 달고 살았는데,

20대 후반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드름이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육아휴직 기간,

매일 자전거 라이딩을 했다.

와이프가 선크림을 바르고 나가라고 이야기했지만


“아~ 괜찮아. 좀 타면 어때?”


하면서 선크림조차 거부하고

한강 라이딩을 즐겼다.



아뿔싸!



내가 스스로를 너무 과신했다.


몇 개월 땡볕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다 보니

내 몸은 건강해졌을지 모르나,

피부는 썩어 들어갔다.


할아버지들에게서나 보는 검버섯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노화에 나도 당혹스럽다.




“여보. 큰일 났어. 피부가 너무 안 좋아졌어

뭐 좀 발라야 하겠는데?”


“그러니깐, 내가 몇 번을 바르라고 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괜한 핀잔만 듣는다.




그날 밤.


누워서 TV를 보는 내 얼굴로

뭔가 차갑고 끈적한 것이 확 와닿는다.


“으헉. 이거 모야?”


“가만있어 봐. 이거 피부에 좋은 거야!”


와이프는 내 얼굴에 뭔지 모를 끈적하고,

시원한 것을 골고루 발라준다.



핀잔을 줬어도,

역시 와이프 밖에 없다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한 1-2주,

누워서 TV를 볼 때마다

와이프는 내 얼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장품 비슷(?) 한 것을 발라줬다.


그 덕에 피부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밤,

와이프와 함께 간단히 맥주를 한다.

갑자기 와이프가 어딘가에서 팩 하나를 들고 온다.


그리고는 팩을 뜯고는 얼굴에 붙인다.


얼굴팩인가 보다.



그런데

팩 안을 손으로 쓱쓱 긁더니

내 얼굴에 바르기 시작한다.


“악! 이거 뭐야?”


“뭐긴 뭐야? 계속 이거 발라줬잖아?”


“뭐? 지금까지 얼굴팩 찌꺼기를 발라준 거야?”


“찌꺼기는 무슨. 이게 엑기스야! 엑기스!

ㅋㅋㅋ”



엑기스는 무슨.

그러면 자기나 바르지.



더 이상 뭐라 말 못 하고,

그냥 눈 감고, 와이프가 발라주는

얼굴팩 찌꺼기를 느낀다.



자기도 웃는 걸 보니,

민망한 건 아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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