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잡생각
난
로션을 바르지 않는다.
태어나 지금까지 로션을 발라 본 적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얼굴에 묻는 끈적임이
그렇게 싫을 수 없다.
스킨로션 역시 마찬가지라
알싸한 느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혼 초,
와이프가 관리해야 한다며 남성용 로션을
두어 번 사온 적이 있는데,
사 온 성의를 봐서 한 두 번 바르다 관두니,
그다음부터는 아예 사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름 피부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20대 때는 얼굴에 여드름을 달고 살았는데,
20대 후반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드름이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육아휴직 기간,
매일 자전거 라이딩을 했다.
와이프가 선크림을 바르고 나가라고 이야기했지만
“아~ 괜찮아. 좀 타면 어때?”
하면서 선크림조차 거부하고
한강 라이딩을 즐겼다.
아뿔싸!
내가 스스로를 너무 과신했다.
몇 개월 땡볕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다 보니
내 몸은 건강해졌을지 모르나,
피부는 썩어 들어갔다.
할아버지들에게서나 보는 검버섯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노화에 나도 당혹스럽다.
“여보. 큰일 났어. 피부가 너무 안 좋아졌어
뭐 좀 발라야 하겠는데?”
“그러니깐, 내가 몇 번을 바르라고 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괜한 핀잔만 듣는다.
그날 밤.
누워서 TV를 보는 내 얼굴로
뭔가 차갑고 끈적한 것이 확 와닿는다.
“으헉. 이거 모야?”
“가만있어 봐. 이거 피부에 좋은 거야!”
와이프는 내 얼굴에 뭔지 모를 끈적하고,
시원한 것을 골고루 발라준다.
핀잔을 줬어도,
역시 와이프 밖에 없다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한 1-2주,
누워서 TV를 볼 때마다
와이프는 내 얼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장품 비슷(?) 한 것을 발라줬다.
그 덕에 피부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밤,
와이프와 함께 간단히 맥주를 한다.
갑자기 와이프가 어딘가에서 팩 하나를 들고 온다.
그리고는 팩을 뜯고는 얼굴에 붙인다.
얼굴팩인가 보다.
그런데
팩 안을 손으로 쓱쓱 긁더니
내 얼굴에 바르기 시작한다.
“악! 이거 뭐야?”
“뭐긴 뭐야? 계속 이거 발라줬잖아?”
“뭐? 지금까지 얼굴팩 찌꺼기를 발라준 거야?”
“찌꺼기는 무슨. 이게 엑기스야! 엑기스!
ㅋㅋㅋ”
엑기스는 무슨.
그러면 자기나 바르지.
더 이상 뭐라 말 못 하고,
그냥 눈 감고, 와이프가 발라주는
얼굴팩 찌꺼기를 느낀다.
자기도 웃는 걸 보니,
민망한 건 아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