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을 보았을 때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왔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파온 적은 또 언제였는가 하면 까마득 하다. 언제 가슴이 아팠었을까 또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정확한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알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척 해야만 하는 내 자신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 마냥. 사랑에 빠져본 이들은 가슴이 시리고 콕콕 쑤시듯 아프다는 것을 안다. 물론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아픈 사랑때문은 아니겠지만 같은 통증이라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은 같은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겠지.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누군가에겐 정말로 사랑이겠고. 누군가에겐 물질적 욕구이겠고. 누군가에겐 무엇조차 없을 수 있다. 이런 고민을 넉넉히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써내려가는 내가 진정 이 고민을 하는 주체인지 모르겠어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문장이 주는 흡입력에 대해 믿는 편이다. 미신과도 같이. 누군가를 시리게 아프게 만든 문장, 한적한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어지는 햇살, 이른 새벽 들려오는 물까치 소리, 형체도 알아볼 수 없지만 무언가 느껴지는 추상화 등등.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임에도 나와는 어떤 끈도 실도 연결되지 않은 것만 같아도 그것에 들어가는 힘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나의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으로 사는가.
젊은 시절이라하면 너무 염치 없겠지만 내게 젊은 시절은 의무교육시기와 대학교시절이다. 그 젊은 시절. 아무것도 모르지만 다 아는 척을 하던, 혈기가 왕성하던 그 시절. 그땐 무엇으로 사는지 아는 것만 같았다. 그때보다 더 늙은 내가 당시 나의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분명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있었고 그래서 당당했다. 허나 더 늙어진 지금. 정말로 내 삶의 방향을 잘 모르겠다.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디에도 보여줄 수가 없다. 젊은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정신적으로 성숙되었으며 삶의 가치는 더 점잖음에도 분명 나는 말하기 너무도 어렵다.
누군가는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알까.
그래서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알까. 아니면 나와 똑같이 명쾌하게 알지 못할까. 이 전전긍긍함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하루종일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이 문장.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래서 점심을 먹으며 불안감까지 들었다. 그래서 요즘 잘 쓰지 않던 일기까지 쓰게 되었다. 불안이라는 제목으로. 그 글의 결론은 불안하기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보니 조금 의아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내가 그 어떤 것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아름다울까. 날씨는 날씨의 속성에 그쳐 피크닉을 가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테다. 이른 새벽에 새소리를 들어도 그 기분좋음을 느낄 수 없다. 새가 울어 재끼는 것일뿐이니. 유명화가의 그림은 또 뭐람. 저것은 파랑색 물감, 저것은 노랑색 물감, 그리고 그옆엔 그것을 섞어놓았을 뿐인데.
무엇으로 살아갈까.
이토록 알지못함의 미학에 빠진 내가 조금은 우습지만 나름 알찬 대답을 얻었다.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출근길에 보는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겠지. 자동차가 빼곡이 내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세상을 이루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나 역시 삶을 잘 이어나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아내와 날씨가 좋아 아이가 좋아하는 분홍색 피크닉 매트와 작은 간이의자를 챙겨 한시간즈음 자동차를 몰아 피크닉을 하는 것도. 그 공간에서 책을 보는 순간에도. 잠시 아내와 햇빛에 눈이부셔 눈을 감은 것인지 잠시 나른해져 잠을 자고 싶어진 것인지 모르겠는 눈감음에도. 분명 나는 모르니까 아름다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불안과 무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나보다.
불안의 바다에서 거칠어 보이지만 부드러운 파도의 거품속에서 살아가고 있나보다.
새하얀 무지의 숲에서 스스로의 색을 칠해나아가며 살아가고 있나보다.
불안하기에 삶이고
무지하기에 삶을 살아가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말곤
내가 사실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