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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샤?, 일본 기생?”

“아니 라니까… 커피라니까?”

by DKNY JD



오래된 맷돌 같은 커피 분쇄기를 수십 년째 사용한다. 20년 전 미국에서 지인이 선물한 분쇄기다.


얼음 가는 빙수 기계처럼 투박하기 짝이 없지만 잘 갈려서, 그리고 마치 맷돌을 이용해 콩국물을 내시던 외할머니를 추억에서 소환시키는 이상한 마법이 있는 탓에, 불편해도 장기간 사용해 온 최애 기계 가운데 하나다.


그게 오늘 사달이 나고 말았다. 커피를 가는 데 톱니바퀴가 삐거덕삐거덕하는 소리를 내더니, 순간 뚝하고 부러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던 차에 핸펀에서 띵똥하고 문자 도착 음이 들린다.


우체국 배달 문자다.


“ 집 앞에 소포 비대면으로 남겨 놓고 갑니다”다.


문을 여니 자그마한 박스가 하나 놓여 있다.


베프가 보낸 커피다.


얼마나 반가운지…


동봉한 메모가 더 감동적이다.


“ 좋아하는 게이샤 커피 에요. 생산량이 적어 어렵사리 구했으니 맛있게 드세요.”


커피 분쇄기가 우두둑하고 부러지더니, 바로 최고급 커피가 배달되어 온다?


무슨 장난도 아니고 ,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 암튼 기분 짱이다!


“꿩 대신 닭”이 순간 떠오른다.


분쇄기 망가졌다고 이 귀한 커피 못 마실 소냐? 일종에 오기가 발동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게 지퍼 백과 망치다. 지퍼 백에 최고급 커피 알을 한 움큼 집어넣고, 밀폐시킨 후 망치로 내리쳐 본다. 거칠지만 분쇄는 된다. 입자가 투박하고 굵어서 그렇지 , 커피 내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Cerro Azul 농장 커피다.


그 유명하다는 “세로 아줄” 농장에서 생산한 원두였다.


자못 흥분된다.


내려서 마셔보니 전문가 문턱에는 못 가지만 “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은 끓인다”라고

, 블랙베리, 리치, 헤이즐넛 등의 과일 맛이 혼용되어 있음을 느낀다.


잠시 게이샤 커피 홍보대사를 자처해 본다.


게이샤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의 반응은 '망고 향이 주도적이다' '딸기 향과 체리 향기를 연상시킨다' '질 좋은 얼그레이가 떠오른다'가 대세다.


와인 맛과 비슷한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게이샤 커피의 향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장미와 자몽, 복숭아 같은 향미들이 도드라진다. 오랜 기간 인류가 선호해 온 향미들이다. 질 좋은 장미 향은 커피의 우아함을 빛내고, 자몽의 산미는 샴페인과 같은 청량함, 복숭아는 달콤한 아이스 와인의 애프터 테이스트( after taste)를 연상시킨다. 이 외에도 질감과 밸런스, 후미까지 흔들림 없다”


게이샤 커피를 “완벽 자체의 커피” 라면서 이 같은 평가, 아니 찬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1파운드(435g) 경매 가격이 1000천 달러를 돌파,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프리미엄 중의 프리미엄 커피가 게이샤다.


말이 1000달러지,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제공될 때는 도소매 마진은 물론, 커피 자체의 프리미엄 값도 얹어져 파운드당 3000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그러니 커피 한잔에 30-40달러는 기본이다.


게이샤 커피의 기원은 1930년 영국인 리처드 웨일리가 에티오피아 고리 게이샤(게샤) 숲에서 커피 묘목을 발견한 데서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원종과 향미가 유사하지만 형질이 다른 게이샤 품종은 1950년도 코스타리카 열대 농업 연구센터(CATIE)를 거쳐 1960년도 보케테 농업 사절단과 함께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으로 전달되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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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학 생물학과 교수 출신 에스메랄다 농장주 프라이스 피터슨이 2004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 커피 경연대회에 게이샤를 출품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


“나는 지금 신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유명한 표현과 함께 커핑(Cupping·커피를 평가하는 절차) 역사상 최초로 만점이 나왔고,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게이샤 커피 덕후가 주는 팁은 다음과 같다.


“게이샤 커피는 에스프레소, 핸드드립, 밀크커피 모두 맛있지만 커핑(Cupping)과 유사한 프렌치프레스 방식이 향미와 밸런스를 즐기기에 가장 좋다.


커피 20g 정도를 넣고 온수(약 95도) 300㎜를 따른 뒤 4분 후쯤 마시면 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재배돼 레바논을 거쳐 파나마에 닻을 내렸던 게이샤 커피콩은 이제 멕시코, 콜롬비아는 물론 중남미 국가에서 이민 생활(?)을 즐기고 있다.


커피 하면 블루 마운틴, 루왁, 예가체프 등으로 대별되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게이샤가 대세다.


일본 게이샤( 기생)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동명이인 파나마 커피 게이샤 역시, 새 품종에 밀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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