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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여금 Feb 19. 2024

벚꽃처럼 내려앉다

First love_

Photo by. 하여금 Travel 2010 @ Boston in U.S.A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첫 키스는요??”


학창 시절. 무엇이 그리 궁금했던 걸까.

교생 선생님이나 새로운 신입 선생님이 오시면 꼭 한 번쯤은 물었던 이야기.


호기심 충만한 사춘기.

막연한 동경과 설렘. 꿈과 희망 그리고 로망. 세상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의 축약어가 첫사랑이었을까.



첫사랑


그런 식상하고 흔한 이름 말고, 어떤 특별하고 멋있는 수식어를 붙여 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첫사랑을 더 첫사랑답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세상에 없었다.


그냥 그 단어 자체로 충분하고 충만하다.



1999년 2월.


서울 홍제동에 살던 나는 경기권 2년제 대학 실내건축과에 입학했다. 입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나와는 전혀 다른 [인싸] 성향의 미영을 만났고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미영의(가명) 집은 경복궁역이었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운 좋게도 그녀와 함께 일수 있어 더욱 풍요로운 대학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에 참 다행이고 행복했다는 생각을 한다.


"너 80년생? 난 빠른 이긴 한데.. 동갑이니까 그냥 친구 하자!"

라고 미영은 제안했고 나도 수긍했다. 나중에 사귀게 된 80년생 친구들도 언니나 누나라는 호칭대신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미영과 나는 같은 고등학교의 같은 디자인과 직속 선후배였단 걸 알게 되었고, 조금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하하.

그래도 꼭 붙어 다니는 우리 반의 단짝임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나는 내내 맘에 걸리고 불편했던 건지, 술에 거나하게 취하면 꼭 "언니~언니 사랑해!"하고 술주정을 해대곤 했단다.

그 말이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참.


어쨌든 3월. 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가면 꼭 동아리 활동을 해보고 싶었던 우리는, 무작정 가장 만만해 보이고 무난해 보였던 "영화동아리"에 찾아갔다.


동아리의 취지라거나 활동 내용등은 모르겠다. 그냥 종종 동아리방에 찾아갔고, 저녁이 되면 다 함께 술을 마셨다. 그렇게 마시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 차가 끊기면, 동아리 방에서 추위를 달래려는 수단으로 테이블 아래 부루스타를 켠 채 눈을 잠시 붙이고 수업에 들어갔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하루하루 신입생의 낭만을 지식 아닌 술로 채워가던 어느 날이던가.


실내건축과 전체 O.M.T 공지가 떴다.



출발


미영이 있어 함께 밥 먹고, 과제하고, 수업과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나름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곤 있었지만, 아직 같은 반에 어떤 동기들이 있는지 다 파악하지도 못했고 서먹서먹했던 와중에 OMT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다.


“우리 제로 게임 할래?!”

관광버스를 대절해 강원도 낙산으로 향하던 중 우리 자리 근처의 누군가가 게임을 제안했고, 예닐곱 명이 함께 모여 제로게임을 시작했다.

돌아가며 하나, 둘, 셋… 제로의 숫자를 외쳤고 팔목이 벌게지고 부어오르도록 우린 지칠 줄 몰랐다.


나를 가까이서 다정하게 대해주는 남자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고, 여중에 여고까지 나왔던 나는 남자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팔목을 잡는 것조차 어색해 그들에게 벌칙인 팔목을 때리면서도 왼손을 두어야 할 곳을 차마 찾지 못했었다.

참으로 순수했던 영혼 같으니.


어쨌든 낙산에 도착했고, 강당에서 OMT의 시작을 알리는 간단한 개회사와 함께, 1학년 신입생 A, B, C, D반을 골고루 섞어놓은 조별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곳엔 제로 게임을 함께 했던 선희, 태준, 그리고 바로 그 아이. 기윤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똑같이 게임을 하며 술을 마셨고, 다른 방으로 흩어진 같은 반 친한 친구들을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고.. 는 무슨. 고삐 풀린 망아지들의 집합소 마냥 먹고 먹고, 또 마시고..

정신줄 놓는 하루가 지났고 다음날은 1학년과 2학년 선배들을 함께 섞어놓은 조별 방으로 다시 흩어졌다.


그간 정도 들었고, 1학년인 우리끼리 계속 같은 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새로운 조에 들어가 이런저런 멤버십 트레이닝을 위한, 게임들도 하고 조별 이름도 정하고, 한 명을 정해 여장 남자 분장을 해서 조별로 대회도 하는_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제 "합법적으로" 마셔 댈 수 있는 술의 영향이 한몫했겠지.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 나에게 20대, 아니 평생을 흔들어 놓을 만한 어떠한 사랑이 펼쳐질 거라는 것을.



O.M.T를 다녀온 후 우리 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서로서로 친해진 무리들이 생겨났고 미영은 우리 과의 전통 있는 공식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동아리는 개인이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2학년 선배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것 같은 소위말해 [인싸력] 강한 신입생들을 한 명씩 [픽]해서 추천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였다.


분위기도 변해 있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수업의 과제들도 우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건축제도 같은 실기 과제들과 교양과목들의 리포트 제출까지. 하루가 모자랐고 우리는 밤새 모여 과제를 했다.


나는 그 무렵 고 1 때 했던 고민들과 같은 고민들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 길이 나에게 맞는가.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빠듯한 살림에 괜히 등록금이나 실기수업에 필요한 많은 재료비만 날려먹는 건 아닌지.. 아무도 시키지 않는 걱정을 혼자 하고 있는 나였다.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불신도 컸고 상의할만한 마땅한 사람도 없었기에 그런 고민들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짓눌렀던 것 같다. 아무튼 또다시 방황 아닌 작은 방황을 하며 학교에 한동안 나가지 않거나 느지막이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허비했다. 당연히 과제도 밀렸고, 학점도 바닥났다.



벚꽃이 아름답게 휘날리던 봄,

그리고 봄비 내리던 4월 어느 날.


결과적으로 어떤 생각이 나를 붙잡았는지는 몰라도, 작은 방황을 끝내고 대학 과정은 일단 무사히 끝내 보리라 마음먹었다. 출결에 신경 쓰고 과제에 다시 매달렸다.

그 무렵부턴가.. 함께 버스 안에서 제로 게임을 하고 O.M.T에서 같은 조였던 기윤이 종종 내 자리로 와 말을 걸었다.


"어 오늘은 학교 왔네?"
"과제는 했어? 오올~"


무척이나 싱겁게 한 마디씩 붙이곤 친구들에게 돌아가곤 했다.

앞서 얘기했지만, 남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씩 웃거나 단답으로 대답하곤 했었기에 대화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윤은 외모도 꽤나 잘 생기고 인기도 많아서 O.M.T에 다녀온 후 선배에게 고백받기도 하고, 다른 과 학생들과 미팅을 한다거나, 우리 반 동기와 커플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귄 후 머지않아 그 여학생의 과제를 도와주다 기윤이 실수로 커피를 쏟았고, 그녀가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을 끝으로 관계가 깨어졌음을 듣긴 했지만.


어쨌든 수업이 끝나면 미영을 비롯해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 맘 맞는 친구들 몇 명이 더해져 학교 앞 호프집에서 한잔 하는 날이 잦아졌다. 거기엔 기윤, 그리고 그와 단짝이었던 기민, 태준, 준이 등의 무리도 있었는데..


그러던 중 갑자기 사건이 생겨나고 말았다.



기윤과 단짝이던 기민이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기윤은 키가 크고, 키가 크고, 키카 컸다. 사실 그때까지 그는 나에게 우리 반 남자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무척 당황스러웠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둘러대며 거절을 했었는데, 그걸 모두에게 얘기해 버린 거다. 그의 성격은 조금은 덜 신중하고 허세가 있는, 소위 말해 고등학교 때까지 [날라리]라고 불릴만한 아이였고, 나를 좋아하리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말없고 얌전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동기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지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나의 이상형을 묻기에


“음.. 나는 연하나 동갑보다 오빠들이 좋아. 뭔가 배울 게 있는 사람“


별생각 없이 답했으나 그건 사실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나의 이상형은 배울 게 있고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대답과 추측은 어느새 변곡되어 반의 몇몇 [오빠] 사람들로 특정되어 후보선상에 오른 듯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 내가 나서서 아니라고!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교탁에 나가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거절했음에도 가끔씩 기민에게 호출이 왔고(그 시절 이미 많은 친구들이 PCS 핸드폰을 갖고 있었으나 나는 그때까지 삐삐를 썼다) 종종 통화를 했다. 태어나 처음 받아본 이성의 관심이 어색하고 낯설면서도 완전히 싫었다면 거짓말이었겠지.


사실 처음이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깐!


점점 써내려 갈수록 이게 맞나 싶은 [현타]가 몰려왔다.

이런 식으로 쓰다가는 책 한 권 분량도 나오겠다 싶고 그렇다고 요약하기엔 내 인생의 큰 부분이었던 사건이라 새록새록 떠오르는 설렘의 기억들을 묻어버리기엔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 챕터는 좀 더 다듬고 풀어서 나중에 새로운 브런치북에 소설 형태를 빌어 발행해 볼까 한다.

마무리가 너무 갑작스럽고 요상망측 하지만..



물론 기대하실 독자님들은 없으시겠지만, 저의 첫사랑이야기는 훗날 다시 마무리 지어보겠습니다. :)



P.S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 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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