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동무
햇볕이 유난히 밝은 아침이다.
오늘은 왠지 특별한 일이 생길것만 같다.
8월이지만 아침 기온은 그리 덥지 않다. 유모차 없이도 함께 산책할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 요즘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거울 앞에 섰다.
머리꼭지가 내 무릎보다 조금 높지만, 두 발로 땅바닥을 꽉 누르고 어깨를 펴고 선 모습이 나름 늠름하다.
"한 바퀴 돌고 올까?"
"응!"
퍼즐 맞추기를 가르쳤더니 30조각 정도는 금방 맞추고는
"쟌!"하고 손뼉을 친다.
나도 어렸을 때 지도 퍼즐, 로보트 퍼즐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맞췄는데, 볼수록 그림 그리고 퍼즐 맞추고 손으로 꼬물딱 거리는게 나를 많이 닮은것 같다.
새로운 퍼즐을 사서 집에 오는 길.
왠지 큰 도로쪽 길로 가고 싶어졌다. 조금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날씨도 좋고, 한산한 거리를 걷는 기분이 좋은날이었다.
"우리 저 길로 갈까?"
"응"
"아유~ 우리 아기 잘 걷네"
막대 사탕을 빨아먹으면서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며 보조개까지 쏙 넣고 웃는 모습이
'어때? 나 너무 사랑스럽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오늘은 왠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아무 이유없이 그런 날이 있다.
특별한 기분이 들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도 있다.
주말 아침이라 음식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조용하고 한산했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우리 둘 뿐이었다.
기름때가 잔뜩 낀 양고기 집 테라스 난간 아래 노랗고 작은 것이 눈에 띄었다. 방부목의 누런 빛깔과는 확연히 다른 보송보송한 노란 존재
바퀴 벌레는 아니겠지?
"고양이다"
"어? 엄마! 고양이"
"잠깐만"
웅크리고 앉은 노란 주홍빛의 아기고양이는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도 작았다. 양쪽 눈에 까맣게 곱이 끼어 있었다.
새끼가 병이 들면 어미고양이가 포기한다는데 버려진걸까?
"집에 가서 수건 가져오자"
걸음을 서둘렀다. 그 사이에 사라질지도 몰라.
아기 고양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자, 가만 있어봐. 도와줄게"
아기 고양이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며 도망치려 했다.
까딱하면 놓칠뻔했지만 다행히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게슴츠레한 게 눈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너무 작아서 수건 안에 들어있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게도 부피도 느껴지지 않지만 심장 박동만은 우렁차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생후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는데 눈병이 심각했다. 그래도 약먹으면 좋아진다며 영양제와 항생제 주사를 두 대 맞고 약을 처방 받아 집으로 왔다.
액체로 된 약을 눈동자에 떨어뜨려넣고 수건으로 닦아내도 눈꺼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검은 곱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직감적으로 자는 곳과 배설하는 곳을 구분한다. 준비없이 맞이한 아기 고양이를 위해 화장실과 잘 곳을 만들었다. 작은 고양이는 찻잔에 담아준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고 작은 수건을 깔아둔 하늘색 플라스틱 장난감 배에 들어가 잠을 잤다. 잠만 자나 들여다보니 어느새 작은 상자로 만든 화장실에서 쉬를 한 흔적도 있었다.
"240그램이야. 몸무게가. 아유 작아라"
조리용 저울로 잰 몸무게는 겨우 240그램이었다.
모래놀이를 하는 장난감 배가 넉넉할 만큼 작은 아기 고양이는 우유로 배를 빵빵하게 불리고 자고 먹고 자고 먹었다.
아이는 곁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엄마, 따뜻해"
"야옹이가 혀를"
핥는 시늉을 하며, "했어"
"그랬어? 너가 좋은가 보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음,,, 주황색이니까 샤샤"
"샤샤? 주주, 릴리, 로샤, 아이린, 샤샤?"
"응. 샤샤"
샤샤는 열심히 먹고 잤다. 풍선처럼 부푼 분홍빛 배를 드러내고 뒹굴뒹굴 하며 자고 먹고 그러는 사이 눈에 낀 검은 때도 모두 사라지고 말갛고 예쁜 얼굴을 드러냈다. 샤샤는 아이가 낮잠에 들면 가랑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저도 잠을 잤다. 가늘고 짧은 팔다리가 잔뜩 부풀어오른 복어처럼 빵빵한 몸통에서 삐쭉 삐져나온것만 같았다.
밤이면 나는 일찍 침대에 누웠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자. 밤은 눈을 감고 잠이 들 시간이야.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고요한 밤 시간이 아까워서 잠을 참고 뜨개질이나 바느질이라도 하면서 잠을 미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도 심심하지도 시간이 아깝지도 않았다.
오른손에 포동포동한 아이의 손과 발이 잡히고, 왼쪽 겨드랑이 안으로는 샤샤가 골골대며 웅크리고 있다.
양 쪽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이 손 끝에서 가슴으로 뭉글뭉글하게 밀려 들어왔다. 나는 따뜻한 공기로 채워져서 조만간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가 될 것만 같았다. 천정은 점 점 높아지고 침대에서 몸이 둥둥 떠오를것만 같은 나른한 기분.
밤은 길고 매우 춥다.
뾰족한 지붕 낮은 건물. 그림 같이 예쁜 집들은 한국과 달리 콘크리트가 아니라 나무로만 짓는다고 했다. 입체퍼즐처럼 나무를 압축해서 만든 벽면을 조립하듯 집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바람이 불면 나무 틈 사이로 들어온 얼음장같은 냉기가 집안을 휘돌아나가면서 삐거덕 삐거덕 구조물을 흔들어 놓았다. 나무 바닥에 카펫을 깔아 냉기를 막았지만 벽을 타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는 라디에이터를 하루종일 틀어 놓아도 훈훈해지지 않았다.
밖에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집안 기온.
낮에는 그래도 오들오들 떨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길고 추운 밤을 보내고 나면 잠을 잔 것인지 밤새 깨어있었던 것인지 오히려 정신이 맑고 또렷했다.
한국에서는 더워서 한 번도 입히지 않았던 두꺼운 보온 잠옷을 아이에게 매일 밤 입혀서 재웠다. 애벌래 모양으로 얼굴과 팔만 내놓고 지퍼를 닫으면 체온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지퍼를 열고 보온 잠옷 속에서 아이를 꺼내면 온돌방의 온기처럼 그 안의 온도가 따끈따끈해서 한동안 손을 넣은 채로 있기도 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나는 깜깜한 천정과 창밖을 바라봤다.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었고, 온전히 나의 생각과 의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잠이 들지 못하기도 했지만 막막한 현실로 인해 잠이 들지 못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기 오는게 아니었는데.
그들 말대로 나만 참으면 모두 괜찮은 걸까?
날 정신병원에 보낸다고 한 말이 진심일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잘 닦아놓은 흙덩어리처럼 머릿속이 미끄럽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자야지.
조금이라도 자야되는데.
그냥 자자. 아무것도 모르겠어.
창문 유리로 들어오는 냉기로 코가 시리고, 발은 차가웠다. 기모 잠옷을 입고 수면양말도 신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할만큼 추웠다. 그럴수록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거의 매일 밤새 눈만 감고 있는것 같았다.
그럴수록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자주 찾아왔다.
피가 식어가는 듯이 온 몸이 차가워지고 굳어가는 듯한 느낌, 온 몸이 떨리고 아무리 몸을 문질러도 체온이 올라가지 않는 오한이었다.
산후 조리때 처음 겪은 오한은 계절에 관계없이 몸이 조금이라도 차가워지면 시작되었다. 피가 식고 체온이 내려가면서 근육이 뻣뻣해지는 고통. 옷을 덧입고 따뜻한 방바닥이나 찜질팩을 안으면 금방 회복되었지만 체온이 회복되면서 근육이 유연해질때까지 몸을 옥죄어 오는 고통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공항에 내려 이 집에 도착한 이후, 그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기대와 애틋한 감정은 모두 사라졌다. 나는 살기 위해 그를 불렀고, 그의 표정을 살피고, 이전처럼 대하려고 애썼다.
살아가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지금도 살기 위해 그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윤재씨. 자?"
대답이 없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것이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것 같은데.
"윤재씨. 나 몸이 너무 아파. 오한이 오나봐. 나 좀 안아 줘. 추워서 그래"
귀찮은 듯 눈을 살짝 뜨고 쳐다본다. 아무 대답도 없다.
어쩔 수 없다. 몸이 데워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그의 팔 안으로 들어갔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그의 체온으로 몸이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이 방에서 따뜻한 것이라고는 그와 아이 뿐이다.
아이는 나에게 체온을 나눠주기에 너무나 작다.
너의 품이 그리워서 안긴 게 아니야.
그저 피를 데워 살아나기 위해서야.
따뜻한 것은 그의 몸 뿐이었다.
근육이 풀어지고 오한이 사라져서 나는 다시 아이옆으로 와서 누웠다.
우리는 너만 믿고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너는 우리를 원망하고, 또다시 네 엄마와 함께 나를 모욕하고 있어.
내가 언제까지 네 옆에서 버틸 수 있을까?
우리의 결말은 무엇일까?
법적으로 부부라는 권리 하나로 네 말대로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고 내 아이는 새엄마 밑에서 자라는 것일까?
내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
다른 방법이 있을까?
어쨌든 너를 원망해.
네가 미워.
"너 제왕절개한 것도 아기 낳고 아픈 것도 다 네 잘못이야. 네 죄라고"
말하는 너의 얼굴을 벗겨 봤어야 하는데.
어떤게 가면인지.
너의 엄마가 내뱉는 표독스러운 저주를 끝까지 참으며 울던 너를 외면했어야 했는데,
그런 네가 불쌍하고 보호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
너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이게 진짜 였던 건가?
신기하게도
따뜻한 온돌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한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한 손에 아이의 보드럽고 따뜻한 손을, 다른 한 쪽엔 작고 따뜻한 털뭉치가 만들어내는 진동을 느끼면서 잠이 드는 밤은 포근하고 행복하고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사랑으로 포근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