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치다. 금방 돌았던 골목을 헤쳐나가면 제자리로 돌아오고 어린 시절 상품이 걸린 미로체험도 밖에서 형의 목소리에 따라 탈출구를 이내 찾고 얻을 수 있었으나 다시 되돌아가 다른 친구에게 뺏긴 경험도 있다.
지금도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지도가 없었으면 나는 셀프미아(?)가 됐을 것이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네비를 켜면 데이터가 잠시 안 터져 주춤거릴 때 이내 나는 혼란해한다. 그런데일상또한 주관은 있으나 쉽사리 확신을 갖지 못하고 그렇다고 남들이야긴 귀에 거슬리는 똥고집이였다.
이도저도 아닌 갈대의 순정처럼 나는 불안했고 경험에 대해 극히 폐쇄적이었다.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고 열기도 싫었다. 그동안 열어서 얻은 것은 상처뿐이었으니.
하지만 나를 돌아보며, 이대로 닫아서 얻는 것은 상처뿐이지만 열어서 얻는 것은 그래도 일말의 좋은 게 있으리란 생각에 조금씩 조금씩 기어가다 보니 문의 빈틈으로 공기가 들어오듯 나의 맘속 문은 점점 열어져 갔다.
그동안 있던 쓸데없는 고집과 주관에 대해 내려놓고 나를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만 갔다.
빠루로 아무리 헤집어 놔도 열리지 않던 문이 안에서 열리니 오히려 나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고 나의 아픔을 스스럼없이 공개하자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했다.
물론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낯선 경험으로부터 오는 어색함과 허무함은 언제나 찾아왔고 밤마다 늘쑥날쑥하는 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치만 이것도 내 일상의 일부라고 인정하자 예전보다 굳은 살이 쌓이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마음, 자아상을 기둥으로 상상한다. 아무리 쌓아도 받쳐줄 힘이 없다면 이내 무너지고 만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의 일치로 한자로 기둥 주(柱)가 나무 목과 주인 주가 합쳐진 단어라고 사전에서 보아하니 나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전한 건물을 튼튼히 짓고자 한다면 일반적으로 기둥은 필수요소이다. 나 또한 주관과 방향은 있으나 튼튼하지 못했기에 물렁한 기둥 아닌 기둥이 되어 떠받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기둥으로 바꿔 끼기에는 건물 전체가 헐어질 생각에 무서워 쉽사리 그러지 못했다.
그렇지만 요 근래 기둥을 바꾸는 작업이 물렁한 기둥이 10개라면 9개는 일단 내버려 두고 1개는 튼튼한 걸로 바꿔나가려고 하니 조금씩 건물의 형태가 잡혀가는 중인 거 같아 성취감 내지는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
나는 누구나 주관이라는 각자만의 기둥이 필요하다고 본다. 너무 심한 똥고집이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기둥이 불안하기에 이내 걸어 잠근 것일 수도 있다. 가끔은 경청과 때로는 쓴 약처럼 느껴지는 피드백과 부당한 평가가 있을 수는 있으나 결국엔 기둥을 세우고 바꿔나가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저택을 짓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에 말 그대로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갖추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